괴롭힘 피해자를 위한 '딱 하나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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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조상욱 변호사의 '오피스빌런 리포트'
조상욱 변호사의 '오피스빌런 리포트'
올 들어 고용노동부는 J농협, K사, T사에 이어 최근 9월 S축협까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물의를 빚은 4개 사업장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이들 사업장에서 신발과 몽둥이를 이용한 폭행, 상습적 막말( “욕 처먹고 싶으면 저한테 오세요, 얼마든지 욕 처 해줄테니”), 사적 심부름(임원 전용 화장실 비데 청소) 등 가해자의 다양한 문제 행태가 널리 알려졌다. 그 행태의 부적절한 정도가 상식을 크게 벗어난 만큼, 해당 사업장의 근무조건 악화는 물론 피해직원들의 정신적 고통도 극심했을 것이다.
이렇듯 기업에는 상습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하는 직원이 있다. 이런 직원은 오피스 빌런(윤리의식과 인격상 결함으로 인해 기업 경영상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단연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반대편에는 고통 받는 피해직원들이 있다. 이 피해직원들은 심각한 자존감 상실, 고립감, 무력감 등을 경험한다. 그 결과 기업 및 동료에 대한 신뢰와 업무 의욕을 상실하고,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겪거나, 외로움에 좌절하여 스스로 퇴사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 등 극단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기업을 주로 자문하는 노동변호사여서 피해직원들을 직접 의뢰인으로 자문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조사 과정이나 징계, 분쟁 등 후속 절차에서 피해직원들을 면담하는 일은 자주 있다. 그리고 이 때 이들의 고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예컨대, 피해직원들은 면담 말미에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함께 무력감을 호소하는 때가 많다. 어떤 이는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한다. 정신적 트라우마로 전문 상담을 받거나 불면증으로 약을 복용하는 사실, 퇴사를 고민하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어떤 피해직원이 필자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면담이 끝날 즈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딱 하나만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나는 기업을 위해 공정하게 조사할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 그 요청에 응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 때 내 조언은 어떠해야 할까?
나는 이들에게 당장 피해자로서 취할 조치에 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녹취나 동료직원 진술서 같이 증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법,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형사고소시 챙길 사항, 노동청 진정 요령, 의사로부터 진단서를 받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비록 상상이긴 하지만) 피해직원이 필자에게 요청한 것은 '딱 한 가지만 조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경우라면, 그런 세세하고 구체적인 사항보다는 피해직원이 이 비상한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갈 때 필요한 기본자세에 관하여 조언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직원의 기본자세는 무엇인가?
지금이라면 나는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공적으로 인정 받겠다는 지금의 각오, 용기, 투쟁심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인정을 받는 것을 "이긴다"(win)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 마디로 "피해직원은 우선 이기기 위해, 어렵지만 온 힘과 궁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그러한 기본자세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본인의 정당성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야기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존감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기업의 떳떳한 구성원으로서 존재 가치를 부정당했다. 이런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따뜻한 위안이 아니라 그 피해직원이 '이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직원은 결과를 미리 알 길이 없는 신고 후 조사와 지리한 절차를 밟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느니 덮어 두자, 포기하자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가해자는 으레 뻔한 사실조차 부인하면서 맞신고를 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기 마련이다. 자기성찰이 약한 상습적 가해자가 통상 보이는 행태다. 현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입증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애써 대응을 하더라도 그 결과가 흡족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신적 손해배상액은 아쉽게도 소소하다. 하급심 판결을 분석해 보니 괴롭힘 행위로 인해 피해직원이 사망한 사건이 아닌 이상 위자료는 100만~1000만원 범위 내에서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분석도 있다(강문혁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 위자료 산정에 관한 최근 하급심 판례 분석” 노동법률 5월호). 직장 내 괴롭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만약 진정한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개과천선해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유감스럽지만, 좀처럼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본인에게 가해진 위해가 부당한 것임을 일단 기업과 당국으로부터 공적으로 확인 받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 받은 자존심, 위축된 자아의 회복이 시작될 기틀이 마련된다. 이것은 경제적 보상이나 상대적 가치 문제가 아니다. 인격적 자존과 절대적 가치 문제다.
예컨대, 피해직원들은 신고 이후의 감정적 동요, 갈등을 버티기 어려워 퇴사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진(眞)피해자가 퇴사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두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진 피해자라면 이들은 보살핌의 대상이고, 그 정당한 권리를 회복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누군가 퇴사를 해야 한다면, 그것이 자진 퇴사가 되건 징계해고 결과이건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기본자세가 확립되면, 피해직원들에게는 본인이 취해야 할 후속 조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노동위원회, 법원, 노동청까지 확대될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해서, 할 수 있는 한 채증을 확실하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상 기업은 피해직원들과 신고자의 조력자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이 우군(友軍)이 될 수 있도록 본인 피해를 충분히 알리고 소통한다. 가해자 반발은 당연한 것이니, 분쟁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인내심을 가진다. 이것은 모두 이기기 위한 준비다.
물론, 나는 피해직원들이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이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처한 사정과 나름의 결심으로 예외적으로 다른 방향을 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직원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동은 역으로 무분별한 법적 조치가 되어, 그 피해직원들이 오히려 오피스빌런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유연함, 자제와 중용은 필요하다. 그런 제약 하에서 피해자는 먼저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피해직원들이 이렇게 이기기로 결심한다면 그 고된 여정을 도와야 한다. 단, 기업이 무조건 피해직원들 편에 서서 그 대리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이 길어지고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업은 공정함을 유지하고, 신속하게, 2차 피해 방지를 위하여 비밀보장에 유의하면서, 철저한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진 피해자인 피해직원들을 이기게 하겠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들이 이기는 길이 열린다. 그것이 기업의 역할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
이렇듯 기업에는 상습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하는 직원이 있다. 이런 직원은 오피스 빌런(윤리의식과 인격상 결함으로 인해 기업 경영상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단연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반대편에는 고통 받는 피해직원들이 있다. 이 피해직원들은 심각한 자존감 상실, 고립감, 무력감 등을 경험한다. 그 결과 기업 및 동료에 대한 신뢰와 업무 의욕을 상실하고,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겪거나, 외로움에 좌절하여 스스로 퇴사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 등 극단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기업을 주로 자문하는 노동변호사여서 피해직원들을 직접 의뢰인으로 자문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조사 과정이나 징계, 분쟁 등 후속 절차에서 피해직원들을 면담하는 일은 자주 있다. 그리고 이 때 이들의 고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예컨대, 피해직원들은 면담 말미에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함께 무력감을 호소하는 때가 많다. 어떤 이는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한다. 정신적 트라우마로 전문 상담을 받거나 불면증으로 약을 복용하는 사실, 퇴사를 고민하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어떤 피해직원이 필자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면담이 끝날 즈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딱 하나만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나는 기업을 위해 공정하게 조사할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 그 요청에 응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 때 내 조언은 어떠해야 할까?
나는 이들에게 당장 피해자로서 취할 조치에 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녹취나 동료직원 진술서 같이 증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법,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형사고소시 챙길 사항, 노동청 진정 요령, 의사로부터 진단서를 받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비록 상상이긴 하지만) 피해직원이 필자에게 요청한 것은 '딱 한 가지만 조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경우라면, 그런 세세하고 구체적인 사항보다는 피해직원이 이 비상한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갈 때 필요한 기본자세에 관하여 조언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직원의 기본자세는 무엇인가?
지금이라면 나는 이렇게 조언할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공적으로 인정 받겠다는 지금의 각오, 용기, 투쟁심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인정을 받는 것을 "이긴다"(win)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 마디로 "피해직원은 우선 이기기 위해, 어렵지만 온 힘과 궁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그러한 기본자세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본인의 정당성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야기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존감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기업의 떳떳한 구성원으로서 존재 가치를 부정당했다. 이런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따뜻한 위안이 아니라 그 피해직원이 '이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직원은 결과를 미리 알 길이 없는 신고 후 조사와 지리한 절차를 밟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느니 덮어 두자, 포기하자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가해자는 으레 뻔한 사실조차 부인하면서 맞신고를 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기 마련이다. 자기성찰이 약한 상습적 가해자가 통상 보이는 행태다. 현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입증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애써 대응을 하더라도 그 결과가 흡족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신적 손해배상액은 아쉽게도 소소하다. 하급심 판결을 분석해 보니 괴롭힘 행위로 인해 피해직원이 사망한 사건이 아닌 이상 위자료는 100만~1000만원 범위 내에서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분석도 있다(강문혁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 위자료 산정에 관한 최근 하급심 판례 분석” 노동법률 5월호). 직장 내 괴롭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만약 진정한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개과천선해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유감스럽지만, 좀처럼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본인에게 가해진 위해가 부당한 것임을 일단 기업과 당국으로부터 공적으로 확인 받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 받은 자존심, 위축된 자아의 회복이 시작될 기틀이 마련된다. 이것은 경제적 보상이나 상대적 가치 문제가 아니다. 인격적 자존과 절대적 가치 문제다.
예컨대, 피해직원들은 신고 이후의 감정적 동요, 갈등을 버티기 어려워 퇴사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진(眞)피해자가 퇴사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두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진 피해자라면 이들은 보살핌의 대상이고, 그 정당한 권리를 회복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누군가 퇴사를 해야 한다면, 그것이 자진 퇴사가 되건 징계해고 결과이건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기본자세가 확립되면, 피해직원들에게는 본인이 취해야 할 후속 조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노동위원회, 법원, 노동청까지 확대될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해서, 할 수 있는 한 채증을 확실하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상 기업은 피해직원들과 신고자의 조력자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이 우군(友軍)이 될 수 있도록 본인 피해를 충분히 알리고 소통한다. 가해자 반발은 당연한 것이니, 분쟁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인내심을 가진다. 이것은 모두 이기기 위한 준비다.
물론, 나는 피해직원들이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이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처한 사정과 나름의 결심으로 예외적으로 다른 방향을 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직원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동은 역으로 무분별한 법적 조치가 되어, 그 피해직원들이 오히려 오피스빌런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유연함, 자제와 중용은 필요하다. 그런 제약 하에서 피해자는 먼저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피해직원들이 이렇게 이기기로 결심한다면 그 고된 여정을 도와야 한다. 단, 기업이 무조건 피해직원들 편에 서서 그 대리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이 길어지고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업은 공정함을 유지하고, 신속하게, 2차 피해 방지를 위하여 비밀보장에 유의하면서, 철저한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진 피해자인 피해직원들을 이기게 하겠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들이 이기는 길이 열린다. 그것이 기업의 역할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