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27일 새벽 기각됐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 대표는 즉시 석방된다. 기사회생에 성공한 이 대표는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해온 기존 입장을 강화하면서 당내 입지 재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이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이날 오전 2시 24분께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서울구치소 앞에 모인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이 대표의 이름을 연호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페이스북 등에서 "정의는 살아있다"(전용기), "기각!"(고민정), "기각입니다. 모두 함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눈물이 납니다"(한준호), "얼싸안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박홍근), "168명보다 1명의 판사가 더 큰일을 했다"(김용민) 등 연신 반색했다.

영장을 기각한 유 부장판사는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백현동 개발사업에 대해선 "공사의 사업참여 배제 부분은 피의자의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이에 관한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시점에서 사실관계 내지 법리적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선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유 부장판사는 검찰이 강조한 '증거인멸 염려'에 대해서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대북송금의 경우,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하여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나,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 이화영의 기존 수사기관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진술의 변화는 결국 진술 신빙성 여부의 판단 영역인 점, 별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피의자의 상황 및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유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10시 7분부터 오후 7시 23분까지 약 9시간 20분에 걸쳐 심문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백현동 민간 사업자에게 인허가상 특혜를 몰아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북한에 지급해야 할 방북비용 등 총 800만달러를 쌍방울그룹에 대납하게 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검사 사칭' 의혹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증인에게 위증을 교사한 혐의(위증교사)를 받는다.

이날 심사에서 검찰은 백현동 의혹과 대북 송금 의혹을 각각 '권력형 토착비리 사건', '후진적 정경유착 사건'으로 규정했다. 기본적인 혐의 소명을 주장한 뒤 이번 심문의 최대 쟁점인 '증거인멸 염려'를 내세워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영장심사를 위해 500장 분량의 PPT 자료를 준비했다.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만 약 1500쪽에 달했다. 이 대표 측은 백현동 의혹의 로비스트로 지목된 김인섭씨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의 유착을 전면 부인하며 검찰이 제시한 혐의 사실 자체가 허구라고 맞섰다. 검찰이 주장한 구속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 대표가 그간 검찰 소환조사에 응하며 수사에 협조해온 점, 제1야당 대표인 점 등을 들어 도주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에 이 대표 구속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검찰은 수사 정당성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취지로 당장 이날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추석 연휴 이후 이 대표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