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좋을까, 집에서 키우는 게 좋을까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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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김현철 지음/김영사
292쪽|1만7800원
김현철 지음/김영사
292쪽|1만7800원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은 반가운 책이다. 원론 수준의 경제학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 원론을 짜깁기한 수준의 초보적인 책은 그동안 너무 많이 출간됐다. 이 책은 다르다. 국내외 다양한 현안에 대한 실증 연구를 가득 담고 있다.
저자는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다. 그는 원래 의사였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공중보건의 시절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많이 만났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자가 됐다. 연세대 경제학부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교수로 일하다 홍콩과기대로 자리를 옮겼다.
정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경제학이다. 처음 시도하는 것은 데이터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성과를 측정하고 정책이 효과가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1970~80년대 유럽에서는 어린이집이 대폭 늘었다. 이전에 대부분 가정에서 자랐던 영·유아들이 보육시설에서 조기교육을 받게 됐다. 노르웨이에선 1970년 이전 3~6세의 어린이집 등원율이 5%도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르자 60%를 웃돌았다.
경제학자들은 어린이집 등원율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을 25년 넘게 추적 조사했다. 어린이집이 많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 아이들보다 어른이 되었을 때 교육 연한, 대학 진학률, 소득이 모두 높았다.
노르웨이의 연구 결과만 본다면 엄마는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영·유아 교육을 받으니 모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1990~2000년대 들어 노르웨이 등 유럽에선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볼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98년 노르웨이 정부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주는 현금 지원을 확대했다. 이로 인해 많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뒀다. 다시 경제학자들은 정책 효과를 조사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 상충하는 두 연구 결과에 대해선 이런 해석을 내렸다. 집에서 제대로 된 돌봄이 어려운 저소득 가정에는 어린이집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의 돌봄을 받는 편이 나았다. 즉, 각 가정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결정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어린이집에 보내느냐, 집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지원금 차이가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만 2세 이상 유아의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금은 월 최대 54만6000원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주는 양육 수당은 10만원에 불과했다. 저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고 했다.
2023년 한국은 ‘영아 수당’을 ‘부모 급여’로 전환하며 이를 시정했다. 어린이집 등원 여부와 상관없이 만 0세는 월 70만원, 만 1세는 월 35만원을 지급받는다.
저자는 2017년 도입한 ‘문재인 케어’에 대해선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이 정책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했다. 건강보험이 더 많은 돈을 내고, 환자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를 낮추는 게 핵심이다. 가령 종합병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을 때 이전에는 평균 48만원을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했다. 문재인 케어 도입 후엔 15만원만 내면 된다.
연간 7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 가량 흑자였던 건강보험 수지는 2019년 2조80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그만큼 국민 건강이 좋아졌다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그렇지도 않았다. 결국 2023년 들어 일부 MRI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취소됐다.
책은 한국의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공공 의대 및 지역 의사 정책이 왜 성공하기 어려운지, 주 4일제 도입이 가능한 것인지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책에 실린 연구 결과와 저자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각종 이슈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소셜미디어나 정치인의 근거 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저자는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다. 그는 원래 의사였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공중보건의 시절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많이 만났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자가 됐다. 연세대 경제학부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교수로 일하다 홍콩과기대로 자리를 옮겼다.
정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경제학이다. 처음 시도하는 것은 데이터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성과를 측정하고 정책이 효과가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1970~80년대 유럽에서는 어린이집이 대폭 늘었다. 이전에 대부분 가정에서 자랐던 영·유아들이 보육시설에서 조기교육을 받게 됐다. 노르웨이에선 1970년 이전 3~6세의 어린이집 등원율이 5%도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르자 60%를 웃돌았다.
경제학자들은 어린이집 등원율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을 25년 넘게 추적 조사했다. 어린이집이 많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 아이들보다 어른이 되었을 때 교육 연한, 대학 진학률, 소득이 모두 높았다.
노르웨이의 연구 결과만 본다면 엄마는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영·유아 교육을 받으니 모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1990~2000년대 들어 노르웨이 등 유럽에선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볼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98년 노르웨이 정부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주는 현금 지원을 확대했다. 이로 인해 많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뒀다. 다시 경제학자들은 정책 효과를 조사했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 상충하는 두 연구 결과에 대해선 이런 해석을 내렸다. 집에서 제대로 된 돌봄이 어려운 저소득 가정에는 어린이집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의 돌봄을 받는 편이 나았다. 즉, 각 가정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결정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어린이집에 보내느냐, 집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지원금 차이가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만 2세 이상 유아의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금은 월 최대 54만6000원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 주는 양육 수당은 10만원에 불과했다. 저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고 했다.
2023년 한국은 ‘영아 수당’을 ‘부모 급여’로 전환하며 이를 시정했다. 어린이집 등원 여부와 상관없이 만 0세는 월 70만원, 만 1세는 월 35만원을 지급받는다.
저자는 2017년 도입한 ‘문재인 케어’에 대해선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이 정책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했다. 건강보험이 더 많은 돈을 내고, 환자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를 낮추는 게 핵심이다. 가령 종합병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을 때 이전에는 평균 48만원을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했다. 문재인 케어 도입 후엔 15만원만 내면 된다.
연간 7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 가량 흑자였던 건강보험 수지는 2019년 2조80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그만큼 국민 건강이 좋아졌다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그렇지도 않았다. 결국 2023년 들어 일부 MRI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취소됐다.
책은 한국의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공공 의대 및 지역 의사 정책이 왜 성공하기 어려운지, 주 4일제 도입이 가능한 것인지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책에 실린 연구 결과와 저자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각종 이슈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소셜미디어나 정치인의 근거 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