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덕선이에겐 쓸 수 없는 '개딸'…필요하지만 버거운 그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아따 가시나. 도사견이여 도사견. 저것은 타이슨과 물어뜯기 대회를 해도 이길 것이네"
-응답하라 1997에서 성동일이 딸 성시연(정은지 역)에게 한 말
-응답하라 1997에서 성동일이 딸 성시연(정은지 역)에게 한 말
성동일은 아마 '원조 개딸' 정은지나 혜리를 만나도 '개딸'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원래는 그저 부모한테 지지 않는 딸의 모습에서 만든 애칭이지만, 이제는 너무나 정치적인 단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개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을 가리킨다. 개혁의 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면서 이 대표 지지자들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처음에는 어감 때문에 언론에서도 사용을 꺼렸다. 필자 또한 기사에 개딸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이 대표 지지자에게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이 대표를 그렇게 열렬하게 지지하는 개딸들은 오늘날 이 대표를 만든 이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 대표는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9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 장래 대통령감을 조사했는데 이 대표가 19%로 2위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제치고 1위에 이름을 올렸다. 3개월에 한 번꼴로 실시되는 이 조사에서 이 대표가 1위를 하는 건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내내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포함한 민주당 지지층의 압도적인 지지 때문이다. 다른 야권 인사들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율은 1~4% 정도뿐인데 이 대표는 45%나 된다. 2위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4%)와는 40%포인트가 넘는 격차다.
그런데 이 대표를 향한 성향 중도의 지지율은 19%에 그친다. 한 장관의 10%의 2배가량이긴 하지만 정치 경력 등을 감안한 저조한 대목이다.
그 다음 주에 한국갤럽은 정계 주요 인물 호감도 조사를 했는데 이 대표의 호감도는 29%로 2017년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호감도는 61%로 역대 2번째로 높은 비호감도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현재 오를 조짐이 안 보인다. 여의도 안팎에서 가장 많이 참고하는 지표 중 하나인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30%대 초반 박스권에 갇혀 있다. 민주당 지지율에는 순수하게 이재명 대표를 좋아하는 이들, 민주당을 좋아하는 이들, 윤석열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 국민의힘을 안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30%대 중반에서 횡보하고 부정 평가가 50% 중후반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감안하면 민주당 지지율이 더 높아질 여력도 있을 텐데 그러질 못하는 것도 이 대표 비호감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대표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비호감도가 92%나 나타난 데 이어 중도층도 61%나 비호감이라고 응답한 점이다. 한 장관을 향한 비호감도는 민주당 지지층이 80%, 무당층이 52%인데 이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진영에 속한 사람들을 흡수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개딸이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에 지지를 보내는 순간 결국 개딸과 함께 연대를 하게 되는 셈인데, 현재까지 개딸들이 보여준 거친 언행에 민주당에 선뜻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딸들은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 비명계를 '수박'(겉과 속이 다름)이라고 부르면서 수위 높은 언행들을 펼쳐왔다. 이 대표가 단식 농성 중일 때 국회에서 '흉기 난동'을 부리다 제지당한 개딸도 나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당 내에서도 개딸과 결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이 대표는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영향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들이 차라리 무당층으로 남으면서 각 양당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정치학에는 중위투표자 정리(Medium Voter Theory)라는 이론이 있다.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중도성향에 가까운 공약을 내놓거나 중도 색채의 노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가 보수 같은, 보수가 진보 같은 노선을 보이면서 애매한 인상을 주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최근 대선들에서 보면 큰 틀에선 다른 점이 많지만 세부적으로는 서로서로 공약을 참고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뒤에는 그런 셈법들이 존재한다. 지난 대선에 이어 내년 총선도 박빙의 승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들이 있다. 통상 선거 1년 전 민심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경향성이 있는데, 현재 총선이 200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여야 지지율이 박빙인 까닭이다. 무당층 흡수를 위해선 한쪽으로 쏠리면 내년 총선이 그만큼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의 이 대표와 민주당의 지지율을 떠받쳐주고 있는 개딸들이 이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 후 수박 색출에 열을 올리면서 민주당 의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자신의 명패가 보이도록 '부결 인증샷'을 올리거나 다른 의원의 가결을 폭로까지 하고 있다.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에게 망할 것이라던 세네카는 이런 말도 했다. 민중을 따르기만 하면 민중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말이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불분명한 세네카의 명언은 그만큼 균형이 중요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개딸들을 거슬러야할까? 아니면 따라야할까? 이 대표가 당 대표가 된 후 계속 따라온 물음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