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급부상에…美, 자유무역 대신 큰 정부·보호주의로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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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뉴 워싱턴 컨센서스' 시대
경제·안보 합쳐 동맹국 블록 형성
IRA 등 시행…자국 산업 살리기
국채 매수세 줄고 '부자 증세' 한계
재정 부담에 장기 유지 어려울 듯
경제·안보 합쳐 동맹국 블록 형성
IRA 등 시행…자국 산업 살리기
국채 매수세 줄고 '부자 증세' 한계
재정 부담에 장기 유지 어려울 듯
“파르테논 신전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아방가르드 시대다.”
지난 4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참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새 경제 리더십’에 관해 연설했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차이나 쇼크’ 영향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시장을 최고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중국의 부상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고백이었다. 동시에 이른바 1990년대부터 세계를 풍미해온 미국식 국제 경제체제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반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철학을 ‘뉴 워싱턴 컨센서스’로 명명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중남미 개발도상국에 처음 적용됐다. 요체는 작은 정부다. 정부 역할은 치안과 국방 정도로 최소화하고 민간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겼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두 번째 특징은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다. 이론적 배경은 비교우위론이다. 각국이 보유한 가장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맞바꾸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윈-윈’ 무역이론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30여 년 만에 철퇴를 맞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분열된 세계에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를 구축해 수억 명의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면서도 “수십 년간 이런 기반에 균열이 생겼고, 그 변화로 인해 오히려 미국인과 지역사회가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제조업과 중산층의 붕괴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과오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 내 산업을 육성해 중산층이 잘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행한 법이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인프라법이다.
경제와 안보의 통합도 달라진 점이다. 워싱턴 컨센서스 시대엔 경제는 경제였고 안보는 안보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상호의존성이 커졌다. 이런 ‘경제안보 시대’엔 믿을 수 있는 국가끼리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안보 중심의 한·미 동맹이 글로벌 전략적 가치 동맹으로 변모한 게 단적인 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큰 정부 시대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물 샐 틈 없는 국방을 유지하려면 큰 정부가 필요했다. 기후변화도 큰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정부 역할은 당장 먹거리만 해결할 게 아니라 먼 미래의 기후변화 위기에도 대응하는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를 겪고 기후변화 중요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 이후 100여 년 만에 근래 볼 수 없던 방식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큰 정부로 바뀐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첨단 기술엔 벽을 치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를 ‘좁은 마당에 높은 장벽’(a small yard with high fence)이라고 표현했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좁은 마당을 형성한 뒤 지향점이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높은 울타리를 치겠다는 취지다.
가장 높은 벽을 치는 대상은 중국이다.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1차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등에 신경 쓰고 있다. 동시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에 대해선 벽을 치되 일반 범용 상품에는 빗장을 허물고 있다. 전면적인 차단인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라 선택적인 ‘디리스킹’(탈위험)을 택했다.
무엇보다 중국이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위협하는 경계 대상이다. 중국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AFP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집권 체제에 접어든 뒤 대만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더욱 대범해지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지난 4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참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새 경제 리더십’에 관해 연설했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차이나 쇼크’ 영향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시장을 최고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중국의 부상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고백이었다. 동시에 이른바 1990년대부터 세계를 풍미해온 미국식 국제 경제체제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반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철학을 ‘뉴 워싱턴 컨센서스’로 명명했다.
○금이 간 워싱턴 컨센서스
설리번 보좌관이 파르테논 신전으로 묘사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집대성한 미국식 경제 모델이다.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특징을 10가지로 열거했다. 설리번 보좌관이 여러 기둥으로 구분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워싱턴 컨센서스가 닮았다고 한 이유다.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중남미 개발도상국에 처음 적용됐다. 요체는 작은 정부다. 정부 역할은 치안과 국방 정도로 최소화하고 민간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겼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두 번째 특징은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다. 이론적 배경은 비교우위론이다. 각국이 보유한 가장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맞바꾸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윈-윈’ 무역이론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30여 년 만에 철퇴를 맞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분열된 세계에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를 구축해 수억 명의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면서도 “수십 년간 이런 기반에 균열이 생겼고, 그 변화로 인해 오히려 미국인과 지역사회가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제조업과 중산층의 붕괴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과오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 내 산업을 육성해 중산층이 잘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행한 법이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인프라법이다.
경제와 안보의 통합도 달라진 점이다. 워싱턴 컨센서스 시대엔 경제는 경제였고 안보는 안보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상호의존성이 커졌다. 이런 ‘경제안보 시대’엔 믿을 수 있는 국가끼리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안보 중심의 한·미 동맹이 글로벌 전략적 가치 동맹으로 변모한 게 단적인 예다.
○‘좁은 마당’에 친 ‘높은 장벽’
작은 정부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과 궤를 같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통제정책을 시행하려면 정부의 힘이 필요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큰 정부 시대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물 샐 틈 없는 국방을 유지하려면 큰 정부가 필요했다. 기후변화도 큰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정부 역할은 당장 먹거리만 해결할 게 아니라 먼 미래의 기후변화 위기에도 대응하는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를 겪고 기후변화 중요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 이후 100여 년 만에 근래 볼 수 없던 방식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큰 정부로 바뀐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첨단 기술엔 벽을 치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를 ‘좁은 마당에 높은 장벽’(a small yard with high fence)이라고 표현했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좁은 마당을 형성한 뒤 지향점이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높은 울타리를 치겠다는 취지다.
가장 높은 벽을 치는 대상은 중국이다.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1차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등에 신경 쓰고 있다. 동시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에 대해선 벽을 치되 일반 범용 상품에는 빗장을 허물고 있다. 전면적인 차단인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라 선택적인 ‘디리스킹’(탈위험)을 택했다.
○도전받는 ‘큰 정부’주의
뉴 워싱턴 컨센서스도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큰 정부를 유지하려면 정부 재정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국채 매수세는 줄고 있다. ‘부자 증세’를 중심으로 한 세수 늘리기에도 한계가 있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큰 정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온 공화당 후보들은 대부분 세금을 줄이거나 정부 조직과 지출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무엇보다 중국이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위협하는 경계 대상이다. 중국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AFP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집권 체제에 접어든 뒤 대만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더욱 대범해지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