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젊은 지휘지상, 내 인생 마지막 콩쿠르를 마치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지휘와 작곡 사이
지난 8월초, 제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무대였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의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결선 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연주로 정말 기쁘게도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많은 인터뷰와 미팅, 그리고 노르웨이, 루마니아와 오스트리아에서 네번의 연주가 있었던 탓에 아르떼 칼럼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름이 자주 바뀐) 잘츠부르크의 젊은 지휘자상은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 오랜 기간 저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카라얀이 생전 베를린에서 직접 개최했던 카라얀 콩쿠르 계승을 목표로 2010년부터 개최된 이 대회의 파이널리스트(후보)들과 우승자들의 명단을 보면서 이 상이 가지는 권위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자주 듣는 현직 젊은 음악감독들 및 젊은 라이징 스타 지휘자들의 이름들이 매번 명단에 포진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초대도 못받고 구경만 하겠구나'란 생각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실제로 2019년에 독일 지휘자 포럼 장학생 오디션에 합격하고,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 카펠마이스터 자리도 얻고, 네메 예르비상까지 수상하며 저의 첫 지휘자로서 커리어의 큰 도약을 이루고서 (물론 반신반의했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원서를 냈으나 오디션도 초대받지 못했거든요.
당시에 뽑힌 세명중 두명, 2021년 우승자 조엘과 파이널리스트 루이스는 바로 이후 영국의 매니지먼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전에 다른 대회에서도 자주 만나던 또래 동료들이라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부럽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제가 가장 존해온 만프레드 호넥이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는데, 그 앞에서 지휘할 기회를 놓친 게 무엇보다 아쉬웠죠. (다행히 이번에도 심사위원장을 맡으셔서 그동안의 아쉬움을 모두 떨쳐냈습니다.)
2023년에 또 개최하면 한번 더 원서를 내봐야겠다 마음을 먹고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재작년에 1회로 개최된 코리안심포니 국제 지휘 콩쿠르 덕분에 작년에 한국에서 수많은 악단들과 여러 연주를 했는데, 이 연주에 관해 입소문이 나서 아스코나스 홀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계약까지 하게 되었어요. 이때가 2022년 10~11월이었는데, 마침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조엘이나 루이스처럼 통상 큰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에이전트들의 눈에 띄어 계약하는 게 순리인데, 저는 완전 반대가 된 겁니다. 표면적으론 대회를 나갈 이유가 없어진거죠. 이런 분야에 박식한 친구가 제게 "이제 대회안나가도 되겠네?" 라고 할 정도였죠.
하지만 카라얀 지휘상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목표이기에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들과 첫 대면 미팅 때 슬쩍 얘기를 해보았습니다. "나는 사실 당신들과 함께 일하게 되리라고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당신들 덕분에 내 목표였던 유럽의 이름 있는 대회나 오디션에 참가할 이유가 사라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대부분 "굳이 참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목표를 접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감독님이 "시간이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딱 한번 해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Maybe Karajan Award?"라고 하더군요.
제가 속으로 가장 원했던 답을 말해준 겁니다. 그렇게 바로 당일 저녁, 저의 지휘자로서 마지막 대회 지원서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제출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오디션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의 오랜 목표였던만큼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평생 가장 마음 편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오디션(4월초)과 연주(8월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최측이 그 기나긴 과정을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가 아닌 평범한(?) 오디션과 연주 및 시상식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서 모두가 부담없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특히 8월에 저와 두명의 파이널리스트들이 각각 3일 연속 결선 연주를 할 때엔 주최측, 심사위원들,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 저희를 객원 지휘자처럼 대해줘서 상에 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셋은 단체 인터뷰와 시상식 빼면 마주친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란 큰 무대에 오른다는 자체의 설렘과 긴장감은 있었지만 '결선무대'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연주 직후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저는 메인곡이었던 멘델스존 3번 교향곡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시상식에서 호명될 때도 딱히 우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실감이 나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상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하는 데 몰두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콩쿠르, 오디션, 중요한 무대, 젊은 클래식 음악가라면 거의 대부분이 겪는 길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물론 좋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는 '끝'이 아니라 또다른 수많은 길의 '시작'일 뿐이죠.
또한 클래식 음악이 세계화되고 있는데다 각 음악인들의 개성과 자유로운 해석과 표현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콩쿠르 우승자가 더 뛰어나다'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단지 적절한 시기와 공간에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나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 나를 도와주고픈 사람들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있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나와 나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적었을 수도 있고요. 결국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더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무대들을 잘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월 6일 잘츠부르크에서 제 연주는 제가 지금까지 했던 연주 중 가장 큰 진심을 담은 연주였습니다. 이제 저의 목표는 ㅡ쉽진 않겠지만ㅡ 언제 어디에서나 매번 더욱 뜻깊고 진심을 담은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자주 바뀐) 잘츠부르크의 젊은 지휘자상은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 오랜 기간 저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카라얀이 생전 베를린에서 직접 개최했던 카라얀 콩쿠르 계승을 목표로 2010년부터 개최된 이 대회의 파이널리스트(후보)들과 우승자들의 명단을 보면서 이 상이 가지는 권위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자주 듣는 현직 젊은 음악감독들 및 젊은 라이징 스타 지휘자들의 이름들이 매번 명단에 포진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초대도 못받고 구경만 하겠구나'란 생각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실제로 2019년에 독일 지휘자 포럼 장학생 오디션에 합격하고,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 카펠마이스터 자리도 얻고, 네메 예르비상까지 수상하며 저의 첫 지휘자로서 커리어의 큰 도약을 이루고서 (물론 반신반의했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원서를 냈으나 오디션도 초대받지 못했거든요.
당시에 뽑힌 세명중 두명, 2021년 우승자 조엘과 파이널리스트 루이스는 바로 이후 영국의 매니지먼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전에 다른 대회에서도 자주 만나던 또래 동료들이라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부럽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제가 가장 존해온 만프레드 호넥이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는데, 그 앞에서 지휘할 기회를 놓친 게 무엇보다 아쉬웠죠. (다행히 이번에도 심사위원장을 맡으셔서 그동안의 아쉬움을 모두 떨쳐냈습니다.)
2023년에 또 개최하면 한번 더 원서를 내봐야겠다 마음을 먹고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재작년에 1회로 개최된 코리안심포니 국제 지휘 콩쿠르 덕분에 작년에 한국에서 수많은 악단들과 여러 연주를 했는데, 이 연주에 관해 입소문이 나서 아스코나스 홀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계약까지 하게 되었어요. 이때가 2022년 10~11월이었는데, 마침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조엘이나 루이스처럼 통상 큰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에이전트들의 눈에 띄어 계약하는 게 순리인데, 저는 완전 반대가 된 겁니다. 표면적으론 대회를 나갈 이유가 없어진거죠. 이런 분야에 박식한 친구가 제게 "이제 대회안나가도 되겠네?" 라고 할 정도였죠.
하지만 카라얀 지휘상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목표이기에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들과 첫 대면 미팅 때 슬쩍 얘기를 해보았습니다. "나는 사실 당신들과 함께 일하게 되리라고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당신들 덕분에 내 목표였던 유럽의 이름 있는 대회나 오디션에 참가할 이유가 사라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대부분 "굳이 참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목표를 접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감독님이 "시간이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딱 한번 해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Maybe Karajan Award?"라고 하더군요.
제가 속으로 가장 원했던 답을 말해준 겁니다. 그렇게 바로 당일 저녁, 저의 지휘자로서 마지막 대회 지원서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제출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오디션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의 오랜 목표였던만큼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평생 가장 마음 편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오디션(4월초)과 연주(8월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최측이 그 기나긴 과정을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가 아닌 평범한(?) 오디션과 연주 및 시상식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서 모두가 부담없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특히 8월에 저와 두명의 파이널리스트들이 각각 3일 연속 결선 연주를 할 때엔 주최측, 심사위원들,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 저희를 객원 지휘자처럼 대해줘서 상에 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셋은 단체 인터뷰와 시상식 빼면 마주친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란 큰 무대에 오른다는 자체의 설렘과 긴장감은 있었지만 '결선무대'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연주 직후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저는 메인곡이었던 멘델스존 3번 교향곡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시상식에서 호명될 때도 딱히 우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이틀이 지나자 실감이 나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상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하는 데 몰두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콩쿠르, 오디션, 중요한 무대, 젊은 클래식 음악가라면 거의 대부분이 겪는 길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물론 좋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는 '끝'이 아니라 또다른 수많은 길의 '시작'일 뿐이죠.
또한 클래식 음악이 세계화되고 있는데다 각 음악인들의 개성과 자유로운 해석과 표현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콩쿠르 우승자가 더 뛰어나다'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단지 적절한 시기와 공간에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나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 나를 도와주고픈 사람들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있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나와 나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적었을 수도 있고요. 결국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더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무대들을 잘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월 6일 잘츠부르크에서 제 연주는 제가 지금까지 했던 연주 중 가장 큰 진심을 담은 연주였습니다. 이제 저의 목표는 ㅡ쉽진 않겠지만ㅡ 언제 어디에서나 매번 더욱 뜻깊고 진심을 담은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