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원도심 골목에 연 청년 책방…"사람과 사람 잇는 곳"
물때 달력 만들어 주민 나눔도…"20년 후 미래 꿈꾼다"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모 아니면 도였다.

활자가 팔리지 않는 시대에 책방을 연다는 건 무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대차대조표를 따져봐도 자산으로 잡힐 건 20대의 패기 하나였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유일한 동력이었다.

그렇게 2018년 1월 인천 동구 화수동 원도심에 작은 서점 '책방모도'가 들어섰다.

'모 아니면 도' 정신으로 밀어붙인 책방은 어느덧 6년째 동네 골목을 지키고 있다.

◇ 휴학생의 막연한 꿈이 현실로…책방을 내다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책방모도의 '모' 대표를 맡고 있는 문서희(31)씨가 처음부터 서점 주인을 꿈꾼 건 아니었다.

국문학도인 문씨가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낸 1년 휴학계가 우연히 삶의 방향을 바꿨다.

문씨는 학교를 쉬는 동안 제주도에 내려가 게스트하우스 스텝 일을 했다.

3개월 넘게 제주에 묵으며 자연스레 게스트하우스 대표와도 친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대표는 젊은 여행객으로 붐비던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

제주 바닷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책방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방이 생기면서 소위 '깡촌'이던 마을도 활기를 띠었다.

문씨는 "책방이 시골 동네 분위기까지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와,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며 "인천에서 자란 나도 인천에 돌아가 책방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막연한 꿈이었다"고 회상했다.

꿈만 있을 뿐 자본도, 경험도 없던 대학생은 복학 후 2015년 2월 학교를 졸업했다.

당장 취업이 급했던 문씨는 인천 한 문화재단의 홍보마케팅팀에 2년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인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과 전시 분야 경력을 쌓았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을 때쯤 책방에 대한 열망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다.

문씨는 결국 2017년 4월 퇴사 시점에 맞춰 책방을 창업해보기로 결심했다.

현재 책방모도의 '도' 대표를 맡고 있는 친구 김지유(31)씨와 함께 책방 자리를 알아봤다.

동구 원도심을 돌아다니던 중 발견한 아담한 단층 주택이 시선을 빼앗았다.

담배 가게였다가 살림집으로 쓰이던 주택이었다.

문씨는 퇴직금과 그간 모아둔 돈을 털어 전세 계약을 맺고 건물을 책방으로 리모델링했다.

푸른색으로 단장한 책방을 채울 도서를 사들이기까지 도합 3천만원이 들었다.

그렇게 2018년 1월 책방모도를 열었다.

◇ 동네와 함께 자라는 서점…물때 달력도 나눔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젊은이가 없는 인천 원도심. 오가는 이 없는 골목.
누구나 실패를 점칠 입지에 책방모도가 자리 잡기까지는 동네 주민들의 힘이 컸다.

문씨는 "처음 책방을 열 땐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다"며 "생각보다 어르신들이 많이 와 주셔서 이유를 물으니 거동이 불편해 가장 가까운 대한서림까지도 가기가 힘드신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책방에 책만 사러 오지 않았다.

보고 싶은 책이 절판됐으니 찾아 달라거나 휴대전화 작동법을 알려달라는 부탁이 이어졌다.

문씨는 노인들이 몇 년간 찾아 헤매던 약초도감이며 한문으로 된 역사책 등을 구해 드렸다.

그는 "젊은이들에겐 참 쉬운 일인데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동네 서점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며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게 동네 책방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첫 1년간은 월 100만원에 달하는 고정비를 메꾸기도 힘들어 원고 작성이며 교열 등 부업에 전념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책방을 찾는 손님도 다양해졌다.

인근에 있는 발달장애 청년 자립 공간 '안녕마을 놀이터'는 도서 지원금이 나올 때마다 책을 여러 권씩 사 가는 단골이 됐다.

책방을 다녀간 한 교사도 학교에서 책이 필요할 때면 책방모도에서 도서를 주문하곤 했다.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인근 학교들도 주요 손님이 됐다.

동구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걸어서 책방까지 가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책방모도를 찾곤 했다.

1교시 수업 시간에 학교에서 책방모도까지 걸어온 아이들은 서점을 견학하고 추천 도서를 한 권씩 받아 간다.

동네 골목에 자리 잡은 책방모도는 주민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8년부터 매년 만들어 무료로 나누는 '물때 달력'도 그중 하나다.

화수·만석 부두가 코 앞인 책방에서 동네 주민들에게 뭘 선물할까.

고민 끝에 제작한 게 물때가 적힌 달력이었다.

문씨는 "연말에 새마을금고에서 물때 달력을 만들어서 나눠주는데 못 받는 분이 더 많았다"며 "기념 선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해 주셔서 이젠 연례행사가 됐다"고 웃었다.

◇ 독서 모임·북토크 '사랑방'…20년 후 미래 그리는 책방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책방모도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독서 모임, 북토크,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활로를 찾았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참가비를 내는 자유 독서 모임 '모 아니면 도 북클럽'을 책방에서 운영한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1시간 동안 읽고,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모임은 올해 한 주도 빠짐없이 4∼5명이 꾸준히 참석할 만큼 자리를 잡았다.

2시간짜리로 기획했지만, 오후 10시는 기본이고 자정이 가까워서야 모임이 끝나는 경우도 잦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북토크도 책방모도만의 강점이다.

두 대표가 추천 도서의 작가를 초청해 10명 남짓한 독자와 함께 여는 행사다.

지난 7월 '여행의 장면'이라는 책의 작가 2명을 초청해 열린 북토크도 성황리에 끝났다.

북토크에 참석한 독자들이 독서 모임까지 신청하는 선순환도 이뤄졌다.

책방모도는 매년 상하반기에 구독자를 모집하고, 한 달에 책 한 권씩을 택배로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도 도입했다.

이 책방이 책과 관련한 무형 서비스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건 어디까지나 안정적인 고정 수익을 토대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다.

문씨는 "처음에는 '3년만 버텨보자' 생각한 게 벌써 5년이 넘었다"며 "막상 5년이 넘으니까 앞으로의 10년, 20년이 기대되고 책방을 최대한 길게 운영하는 게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책방을 하면 할수록 아주 완만하지만 매출도, 안정도도 높아지고 있어 계속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이 든다"며 "이곳도 화수·화평동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있어 불안감은 있지만 되도록 한 자리에서 오래 책방모도를 유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천책방]⑤ 동네와 함께 크는 서점…화수동 '책방모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