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기업활동에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하도록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을 겨냥해 서방이 친환경 기준을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반면 ESG 강화를 주도했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친환경 정책을 놓고 이해관계자들 간에 입장이 엇갈리면서 ESG가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 ESG 강화하는데…유럽은 친환경 속도조절 나선 이유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생태환경부 등 유관부처가 공동으로 '녹색 및 저탄소 발전 촉진에 관한 지도 의견'을 발표해 국유기업이 ESG 투자 및 관리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등 중국 정부가 올 들어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일컫는 ESG를 기업 경영에 도입하도록 기업과 펀드 등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국무원도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ESG투자 및 관리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기업이 녹색 및 저탄소 전환을 달성하도록 제한했고, 중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도 상장 국유기업의 ESG 정보 공개 및 관리 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 상장기업의 환경 정보 공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상장기업의 환경 정보 공개 강화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상장기업이 ESG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정보 품질과 투명성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국영 언론들도 ESG 선전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 "ESG가 더 아름다운 사회를 성취하기 위해 기업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중국의 주요 기업들은 ESG 정보 공개를 강화하면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증시에 상장된 국유기업의 약 65%가 ESG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올 연말까지 모든 국유기업의 ESG 정보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산운용사들은 ESG투자 관련 상품들을 잇따라 내고 있다.

중국은 ESG 글로벌 기준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아시아 사무소를 베이징에 유치했고, 기준 수립 과정에도 깊숙하게 관여하면서다. ISSB는 지난 6월 기업의 탄소배출량 측정하고, 지속 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가 재무 제표에 미치는 영향을 공시토록하는 내용 등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표준을 공개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ESG 룰 셋팅에 직접 참여해 자국에 불리한 기준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이 ESG경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관련 정보가 부족했고,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투자에 걸림돌이 돼 왔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중국의 ESG 강화 움직임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 신호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전문가는 "중국은 해외 친환경 자본을 유치하고, 서방의 녹색 기준 강화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ESG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춰간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중국의 권위주의적 체제나 인권 문제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ESG 투자를 꺼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ESG 강화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정치적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작년 11월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에 연기금의 투자 결정 시 재무 측면만을 고려하도록 한 규칙을 개정해 ESG 투자를 가능하도록 허용했는데, 공화당이 연기금의 ESG 투자를 막는 결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연기금 투자 때 ESG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한 의회 결의안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ESG를 둘러싼 양당의 갈등이 고조됐다. 공화당 의원들이 연기금 펀드매니저들의 투자 결정 때 진보적 대의를 추종하도록 한 것은 투자의 정치화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35년부터 탄소를 배출하는 내연기관차를 팔지 않기로 한 합의가 차질을 빚고 있다. 자동차 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자동차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자국내 승인 결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당초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었던 영국도 기한을 5년 더 연장해 판매 중단 시점을 2035년으로 연기했다. 가정용 가스보일러 설치를 2035년까지 100% 중단하겠다는 계획도 80% 폐지로 완화했다. 이에 글로벌 펀드 관계자는 "ESG기준을 강화하려는 전 세계의 큰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에너지 문제 등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환경 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친환경 속도 조절론은 언제든지 고개를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