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산다" 한 몸 되는 미·일…韓 반도체에 득일까 실일까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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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잡아라" 판 흔드는 美日 연합군…삼성·SK '촉각'
日 키오시아, 美 WD 합병 논의 속도
점유율 34%로 삼성전자보다 높아져
합병은 낸드 불황 못 버틴 탓
경쟁업체 수 줄어 긍정적 평가도
5조 투자한 SK하이닉스 전략도 관심
日 키오시아, 美 WD 합병 논의 속도
점유율 34%로 삼성전자보다 높아져
합병은 낸드 불황 못 버틴 탓
경쟁업체 수 줄어 긍정적 평가도
5조 투자한 SK하이닉스 전략도 관심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 구도가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세계 1위, 3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세계 2위 일본 키오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합병을 추진 중이다. 경쟁 기업 수가 하나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에 '긍정적'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낸드플래시 기업 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부담 요인'이란 분석도 있다.
키오시아와 WD의 합병은 2021년 4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합병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각 사의 지분 가치 측정 등에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발목을 잡았다.
최근 합병 작업이 속도를 내는 것은 낸드플래시 시장의 불황 영향이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31.1%), 키오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 마이크론(13.0%) 등 5개 업체가 시장의 96.2%(올해 2분기 기준)를 나눠 갖고 있다. 주요 플레이어가 3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인 D램과 다른 상황이다.
삼성전자보다 투자여력이 크지 않고 점유율이 낮은 키오시아 등은 지난해 하반기에 일찌감치 감산(減産)을 선언하고 올해 시설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였다. 시장이 살아나길 기다리며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1년여 시간이 흘렀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뚜렷한 회복세가 안 보인다. 지난해 5월 개당 4.81달러를 기록한 낸드플래시 범용제품 가격은 지난 4월 3.81달러까지 하락했고 이후 5개월간 못 오른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구형 낸드플래시에 대한 적극적인 감산에 돌입하면서 올 4분기부터 시장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업황 회복 시기가 더 늦춰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스마트폰 등 주요 수요 시장의 회복이 더딘 영향이다.
단독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점이 오면서 키오시아와 WD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투자 여력을 키우기 위해 합병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커지는 건 '오랜 협력 관계' 영향도 작지 않다. WD는 키오시아가 생산한 낸드플래시를 데이터저장장치(SSD)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162단 낸드플래시 등도 공동 개발했고 일본 요카이치·키타카미 공장도 함께 운영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는 사실상 한 몸으로 봐도 된다"며 "합작 법인 설립은 예견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키오시아와 WD의 단순 합작 지분율이 34.3%로 삼성전자(31.1%)를 앞서는 것은 부담 요인이다. 키오시아와 WD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동맹'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로 꼽힌다.
두 회사가 합병을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가 합병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키오시아가 사실상 마지막 남은 일본의 메모리반도체업체라서다. 각 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호락호락하게 합병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 경쟁 당국이 두 회사의 합병을 허용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글로벌 기업이 합병을 완료하려면 사업을 하는 각 국가의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 역할)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인수가 불허되면 합병 작업은 무산된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5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투자했다. 베인 컨소시엄 소속 펀드 4개 중키오시아 지분 25.9%를 보유한 베인캐피털 펀드 'BCPE LP'의 지분 73.5%를 갖고 있다. 단순 환산하면 키오시아 19.0%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키오시아의 지분을 최대 15%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전환사채(CB·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를 쥐고 있다. 합치면 단순 지분율이 34%에 달한다. 이 지분을 처음 살 때 들인 돈은 3조9159억원이고 지난 6월말 기준 가치는 5조309억원으로 평가됐다. 향후 키오시아와 WD 합병 및 상장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어떤 전략적 결정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가장 최근 발언은 2021년 이석희 당시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가 "키오시아 투자 계획에 변화가 없고 투자금을 회수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현재 CEO를 맡은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1월 기자들과 만나 키오시아 WD 합병에 대해 "일본 정부가 쉽게 허용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7월 SK하이닉스의 콘퍼런스콜(실적설명회)에서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는 "계속해서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합병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합병 조건 등이 논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이 키옥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반도체 불황에 美, 日 '뭉쳐야 산다'
1일 외신에 따르면 키오시아와 WD은 합병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합병 법인 지분은 키오시아가 49.5%, WD가 50.5%를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키오시아는 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주요 은행에 2조엔(약 18조원) 규모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오시아의 대주주인 베인캐피털도 5000억엔을 추가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키오시아와 WD는 합작사 설립 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할 계획으로 전해졌다.키오시아와 WD의 합병은 2021년 4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합병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각 사의 지분 가치 측정 등에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발목을 잡았다.
최근 합병 작업이 속도를 내는 것은 낸드플래시 시장의 불황 영향이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31.1%), 키오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 마이크론(13.0%) 등 5개 업체가 시장의 96.2%(올해 2분기 기준)를 나눠 갖고 있다. 주요 플레이어가 3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인 D램과 다른 상황이다.
올 상반기 누적적자 3조원 넘어
낸드플래시 5개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수익성이 D램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2분기에 세계 1위 삼성전자도 낸드플래시에서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정도다. 2~5위 업체들의 상황은 더 안 좋다. 키오시아는 지난 4~6월(2022회계연도 4분기)에 1714억엔(1조554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누적 적자만 3조원을 넘는 수준이다. WD가 같은 기간 기록한 영업손실도 5억8900만달러(약 7800억원)에 달한다.삼성전자보다 투자여력이 크지 않고 점유율이 낮은 키오시아 등은 지난해 하반기에 일찌감치 감산(減産)을 선언하고 올해 시설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였다. 시장이 살아나길 기다리며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1년여 시간이 흘렀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뚜렷한 회복세가 안 보인다. 지난해 5월 개당 4.81달러를 기록한 낸드플래시 범용제품 가격은 지난 4월 3.81달러까지 하락했고 이후 5개월간 못 오른 상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구형 낸드플래시에 대한 적극적인 감산에 돌입하면서 올 4분기부터 시장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업황 회복 시기가 더 늦춰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스마트폰 등 주요 수요 시장의 회복이 더딘 영향이다.
단독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점이 오면서 키오시아와 WD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투자 여력을 키우기 위해 합병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커지는 건 '오랜 협력 관계' 영향도 작지 않다. WD는 키오시아가 생산한 낸드플래시를 데이터저장장치(SSD)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162단 낸드플래시 등도 공동 개발했고 일본 요카이치·키타카미 공장도 함께 운영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는 사실상 한 몸으로 봐도 된다"며 "합작 법인 설립은 예견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경쟁사 수 줄어 긍정적인데...합산 점유율은 삼성전자 제칠 듯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반도체업계에선 '긍정적'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플레이어가 줄기 때문에 '출혈 경쟁' 가능성도 그만큼 작아질 수 있어서다. 낸드플래시업체들도 내심 '산업 재편'을 원하는 분위기다. D램 시장처럼 경쟁업체 수가 3개 수준으로 압축돼야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며 제품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키오시아와 WD의 단순 합작 지분율이 34.3%로 삼성전자(31.1%)를 앞서는 것은 부담 요인이다. 키오시아와 WD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동맹'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로 꼽힌다.
두 회사가 합병을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가 합병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키오시아가 사실상 마지막 남은 일본의 메모리반도체업체라서다. 각 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호락호락하게 합병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 경쟁 당국이 두 회사의 합병을 허용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글로벌 기업이 합병을 완료하려면 사업을 하는 각 국가의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 역할)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인수가 불허되면 합병 작업은 무산된다.
SK하이닉스, 키오시아 지분 5조원 어치 보유...향후 대응 주목
합병설이 나오면서 키오시아의 지분구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도시바는 2017년 경영난을 겪었던 메모리사업부 지분을 시장에 내놨다. 2018년 베인캐피털이 주도한 한·미·일 컨소시엄이 49.9%를 가져갔다. 현재 컨소시엄의 지분율은 56.2%까지 늘었다. 도시바는 현재 지분을 40.6% 갖고 있고 일본 기업 호야도 3.1%를 들고 있다.SK하이닉스는 2018년 5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투자했다. 베인 컨소시엄 소속 펀드 4개 중키오시아 지분 25.9%를 보유한 베인캐피털 펀드 'BCPE LP'의 지분 73.5%를 갖고 있다. 단순 환산하면 키오시아 19.0%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키오시아의 지분을 최대 15%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전환사채(CB·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를 쥐고 있다. 합치면 단순 지분율이 34%에 달한다. 이 지분을 처음 살 때 들인 돈은 3조9159억원이고 지난 6월말 기준 가치는 5조309억원으로 평가됐다. 향후 키오시아와 WD 합병 및 상장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어떤 전략적 결정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가장 최근 발언은 2021년 이석희 당시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가 "키오시아 투자 계획에 변화가 없고 투자금을 회수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현재 CEO를 맡은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1월 기자들과 만나 키오시아 WD 합병에 대해 "일본 정부가 쉽게 허용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7월 SK하이닉스의 콘퍼런스콜(실적설명회)에서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는 "계속해서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합병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합병 조건 등이 논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이 키옥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