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상 국세수입(367조4000억원)의 94.8%인 348조2000억원이 ‘의무 지출’에 투입된다는 국책연구기관(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아찔한 분석이 나왔다. 세금의 95%가 사회복지비, 지방교부금, 국채 이자처럼 관련 법령에 따라 지급을 강제화한 곳에 쓰인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적 의지로 용처와 액수를 조정할 수 있는 ‘재량 지출’에 동원 가능한 재원이 국세수입의 5%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나마 재량 지출 중 국방비, 공무원 인건비 등 사실상 삭감 불가능한 ‘경직성 경비’까지 고려하면 정부 재정 여력은 바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만 해도 73%에 그쳤던 의무 지출 비율이 95%까지 치솟은 건 복지예산과 국채 이자비용 급증 탓이다. 내년 복지예산(보건·고용 포함)은 242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7.5%, 국채 이자(28조4000억원)는 14.5% 늘어 30조원 돌파가 눈앞이다.

‘눈덩이’ 의무 지출을 제어하지 못하다 보니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2.8%로 최소화했음에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9%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3.6%)보다 높고, 법제화를 추진 중인 재정준칙상 상한선(3%)도 웃도는 적자 비율이다. ‘어버이 국가’를 앞세운 복지 과속과 국채 남발로 정부의 경기 대응력 잠식은 물론 재정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는 최악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5년 집권을 통해 재정을 망가뜨린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반성은커녕 시도 때도 없이 현금 퍼주기를 부르짖는다. 엊그제도 “가계부채로 국민이 신음하는 동안 정부는 재정안정만 고집하고 있다”며 ‘민생 영수회담’을 요구했다. ‘정쟁을 접고 국민들께 누가 더 잘하느냐로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그의 제안은 줄기차게 주장해 온 ‘퍼주기 추경’을 민생이란 단어로 포장한 궤변에 불과하다. 불과 5년 만에 국민 1인당 나랏빚을 2000만원으로 2배 가까이 올려놓고선 여전히 민생 코스프레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심불구’(蛇心佛口: 뱀의 마음으로 부처의 입을 흉내 내는 꼴)라는 국민의힘 논평이 정곡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