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봤다. 첫 번째, 비만 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유럽 증시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올랐다. 두 번째, 코로나19 사태 때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짝퉁’ 명품 적발 금액이 최근 1년간 14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불법 웹툰으로 인한 저작권 피해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다.

비만 치료를 통해 다이어트를 해서 보기에 멋진 몸매를 가꾸는 것과 명품을 소유하는 것. 이는 모두 ‘보이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신경 쓰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법 웹툰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건 본인이 웹툰을 어떤 경로로 보는지 외부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까? ‘보인다’는 개념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는 비교적 소홀한 편이다.

다소 공대생스러운 생각이지만, 이런 뉴스들을 보면 옛날 정보기술(IT)업계가 떠오른다. 과거에 컴퓨터는 돈을 주고 샀지만 내부 소프트웨어인 윈도 운영체제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구매하는데 윈도가 기본으로 적용돼 있지 않다면 해당 매장의 서비스가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할 만큼 보이지 않는 것에 별도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이상했다.

비단 소프트웨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에는 IT 관련 소프트웨어는 물론 서버, 스토리지 같은 기술력도 모두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기업이 투자를 해야 하거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IT 관련 기술, 소프트웨어는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것은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비용을 절감하려고 할 때 1순위 후보가 되는 경우도 잦다. 오랫동안 IT업계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제품이나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튼튼하지 않다면 결국 곪아서 터지게 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도 내부에서 문제가 축적되다 결국 외부로 보이게 될 때는 문제가 악화돼서 나타나듯이 말이다. 기업 운영에서도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내실을 튼튼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단적으로 말하기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장기적으로 안정성을 가져갈 수 있다. IT업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온전히 평가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