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왕실이 의뢰한 초상화, 여왕의 목을 '슥~' 잘라버린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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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청춘이 묻고 그림이 답하다
저스틴 모티머의 '여왕'
저스틴 모티머의 '여왕'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작년 10월, 나는 런던 프리즈 아트위크를 맞아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3년 만에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 출장에 쓰다 남은 파운드가 남아 있어서 별다른 환전 없이 떠난 나는 숙소 근처 슈퍼마켓에서 내가 가져간 화폐가 구권이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한 달 전 있었던 여왕의 부고는 한국의 뉴스에서도 많이 다뤄졌고 세계 각국의 수장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런던을 다녀갔다. 출장 간 10월 초에도 추모의 열기가 채 식지 않고 있었다. 2020년 2월 시행된 영국의 신권 화폐 발행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인 사업이지만 여왕의 임종으로 2024년부터는 찰스 3세 왕이 그려진 화폐 역시 발행, 유통될 예정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UK)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에서 2022년 9월 8일 자신의 임종을 맞이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임을 다한 것처럼, 그녀는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바라며 자신의 초상을 한 번 더 세상에 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우선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1922~2011)가 그린 여왕의 초상이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는 2022년 10월 1일부터 여왕의 초상을 그린 사실주의 인물화의 거장 루시안 프로이드의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의 전시에는 여왕의 초상을 포함한 유명인 혹은 작가 주변인의 인물화 및 누드화가 전시되었다. 작가의 거침없는 붓 터치와 꾸밈없는 표현력이 돋보였던 이 전시는 마치 프리즈 아트위크에 찾아온 세계의 미술애호가에게 여왕이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내셔널갤러리에는 반 고흐, 모네, 터너 등 여러 거장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는데 필자가 갤러리를 방문한 다음 날인 10월 14일 환경 운동가 두 명이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 테러를 가했다. 아주 파란만장한 아트위크가 아닐 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왕을 그린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왕실이나 국가의 정식 요청으로 여왕을 그린 사람은 소수다. 프로이드와 더불어 여왕을 그린 대표적인 작가는 저스틴 모티머(Justin Mortimer, b. 1970)이다. 스물한 살에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주최한 BP Portrait Award(1991)에서 1등 상을 받은 바 있는 작가는 이후 여왕을 포함한 상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초상을 그린 바 있다. 1998년 영국의 4대 타블로이드지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철부지(어리석은) 예술가가 여왕의 목을 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여왕의 새로운 초상화에 대한 충격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영국 왕립 예술협회(Royal Society of Arts)가 여왕과 함께한 50주년을 기념해 27세의 촉망받던 젊은 화가에게 1997년 의뢰해서 1998년 1월 대중에 공개한 그림이다. 많은 권력자가 단두대에서 사라진 역사를 돌아봤을 때, 유럽 사회에서 목을 친다는 것은 여러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다. 당시는 영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입헌군주제와 여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RSA에서 정식으로 초상 의뢰받은(그림을 위해 여왕이 포즈까지 취한) 작가가 목이 잘린 듯한 그림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고, BBC와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이 일을 언급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여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엘리자베스 2세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과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작품에 추상성을 가미한 것이지 별 의도가 있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논란을 종식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이 신선한 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체임벌린 경(Lord Chamberlain)의 초상도 그에게 의뢰하게 된다. 이후 유명인들의 의뢰를 받아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초상화가의 길을 벗어나 대중 기호의 반대편, 어둡고 불합리하고 이기적이면서도 잔혹한 현실을 담아내는 쪽으로 그림의 방향을 선회한다. 여왕 서거 이후 그가 그린 초상화 역시 루시안 프로이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많은 언론을 통해 다시 소개되었다. 소호의 카페에서 저스틴 모티머를 만났다. 그간 밀린 이야기와 안부를 묻고 프리즈 위크에 런던에서 진행 중인 주요 전시들 그리고 아트마켓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요즘 주목받는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이젠 정말 백인 프레피(특권층)의 시대는 지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너의 말이 맞아. 그리고 나 역시 백인 프레피지. 그래도 나는 장애가 있잖아"라고 답했다. 선천적인 신체장애로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단 한 순간도 자기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던 그였다.
그가 25년 전 호기롭게 목을 자른 여왕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으며, 마지막 임종까지 70년간 수행해온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제 편히 물어봐도 되는 시점이 되었지만 나는 끝내 그에게 여왕의 목을 자른 진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여왕이 죽은 지 49일도 안 된 2022년 런던의 가을이었다.
한 달 전 있었던 여왕의 부고는 한국의 뉴스에서도 많이 다뤄졌고 세계 각국의 수장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런던을 다녀갔다. 출장 간 10월 초에도 추모의 열기가 채 식지 않고 있었다. 2020년 2월 시행된 영국의 신권 화폐 발행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인 사업이지만 여왕의 임종으로 2024년부터는 찰스 3세 왕이 그려진 화폐 역시 발행, 유통될 예정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UK)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에서 2022년 9월 8일 자신의 임종을 맞이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임을 다한 것처럼, 그녀는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바라며 자신의 초상을 한 번 더 세상에 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우선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 1922~2011)가 그린 여왕의 초상이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는 2022년 10월 1일부터 여왕의 초상을 그린 사실주의 인물화의 거장 루시안 프로이드의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의 전시에는 여왕의 초상을 포함한 유명인 혹은 작가 주변인의 인물화 및 누드화가 전시되었다. 작가의 거침없는 붓 터치와 꾸밈없는 표현력이 돋보였던 이 전시는 마치 프리즈 아트위크에 찾아온 세계의 미술애호가에게 여왕이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내셔널갤러리에는 반 고흐, 모네, 터너 등 여러 거장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는데 필자가 갤러리를 방문한 다음 날인 10월 14일 환경 운동가 두 명이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 테러를 가했다. 아주 파란만장한 아트위크가 아닐 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왕을 그린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왕실이나 국가의 정식 요청으로 여왕을 그린 사람은 소수다. 프로이드와 더불어 여왕을 그린 대표적인 작가는 저스틴 모티머(Justin Mortimer, b. 1970)이다. 스물한 살에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주최한 BP Portrait Award(1991)에서 1등 상을 받은 바 있는 작가는 이후 여왕을 포함한 상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초상을 그린 바 있다. 1998년 영국의 4대 타블로이드지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철부지(어리석은) 예술가가 여왕의 목을 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여왕의 새로운 초상화에 대한 충격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영국 왕립 예술협회(Royal Society of Arts)가 여왕과 함께한 50주년을 기념해 27세의 촉망받던 젊은 화가에게 1997년 의뢰해서 1998년 1월 대중에 공개한 그림이다. 많은 권력자가 단두대에서 사라진 역사를 돌아봤을 때, 유럽 사회에서 목을 친다는 것은 여러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다. 당시는 영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입헌군주제와 여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RSA에서 정식으로 초상 의뢰받은(그림을 위해 여왕이 포즈까지 취한) 작가가 목이 잘린 듯한 그림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고, BBC와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이 일을 언급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여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엘리자베스 2세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과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작품에 추상성을 가미한 것이지 별 의도가 있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논란을 종식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이 신선한 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체임벌린 경(Lord Chamberlain)의 초상도 그에게 의뢰하게 된다. 이후 유명인들의 의뢰를 받아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초상화가의 길을 벗어나 대중 기호의 반대편, 어둡고 불합리하고 이기적이면서도 잔혹한 현실을 담아내는 쪽으로 그림의 방향을 선회한다. 여왕 서거 이후 그가 그린 초상화 역시 루시안 프로이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많은 언론을 통해 다시 소개되었다. 소호의 카페에서 저스틴 모티머를 만났다. 그간 밀린 이야기와 안부를 묻고 프리즈 위크에 런던에서 진행 중인 주요 전시들 그리고 아트마켓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요즘 주목받는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이젠 정말 백인 프레피(특권층)의 시대는 지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너의 말이 맞아. 그리고 나 역시 백인 프레피지. 그래도 나는 장애가 있잖아"라고 답했다. 선천적인 신체장애로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단 한 순간도 자기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던 그였다.
그가 25년 전 호기롭게 목을 자른 여왕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으며, 마지막 임종까지 70년간 수행해온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제 편히 물어봐도 되는 시점이 되었지만 나는 끝내 그에게 여왕의 목을 자른 진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여왕이 죽은 지 49일도 안 된 2022년 런던의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