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스마트폰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단연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등 증강현실(AR) 글라스가 꼽히는데요. AR 글라스 이면엔 '공간 컴퓨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간 컴퓨팅은 인간과 사물의 상호작용 방식을 재정의하는 컴퓨터의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를 만나 PC, 모바일 그다음을 잇는 공간컴퓨팅 기술의 미래를 들어봤습니다.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는 2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는 2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증강현실(AR)은 사람들을 좀 더 현실에 머물게 하고, 현실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상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최혁 기자
“국내에선 메타버스가 잘못 쓰이고 있어요. 진짜 메타버스는 가상 인간이 가상공간에 머무는 ‘제페토’ 같은 게 아니에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는 “메타버스는 디지털 트윈을 통해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3차원 인터넷 환경, 즉 공간 컴퓨팅에서의 인터넷을 의미한다”며 "방점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에 찍힌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공간 컴퓨팅은 PC, 모바일을 잇는 새로운 컴퓨팅”이라고 강조한다. 1970~80년대 퍼스널 컴퓨팅(PC), 2000년대 모바일 컴퓨팅에 이어 2020년대 공간 컴퓨팅 개념이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등 증강현실(AR) 글라스로 단순히 IT 기기가 대체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공간 컴퓨팅은 주변의 모든 사물이 컴퓨터의 입력 장치이자 출력장치가 되어 사용자가 부지불식간에 컴퓨터와 소통하는 디지털 환경을 제공한다"며 "집과 사무실, 빌딩과 도시 자체가 컴퓨터로서 기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크린 속에 갇혀있던 인터넷은 3차원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며 "웹 3.0의 핵심은 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아니라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창업 신의 이단아

보통 창업가는 고객의 문제를 풀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지만, 최 대표는 이런 ‘창업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한성과학고를 졸업하고 포스텍 물리학과를 자퇴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바일 가상현실(VR) 게임을 완성하기 위해 직접 기술을 개발하다 2019년 모바일기술 대상에 출전해 개인 자격으론 최초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미래의 인터넷’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2020년 2월 브이알크루를 설립했다.

최 대표는 “빌 게이츠도 인터넷이 뭔지 모를 때 인터넷을 만들겠다고 나서 조롱받았다”며 “인터넷의 미래가 공간 컴퓨팅이라면 여기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직 시장의 승자가 없어 어우리가 방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어렸을 때부터 근본적인 것을 좋아한 그는 물리학에 빠져들었다. 그는 “세상을 원자라는 물질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게 물리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통찰하는 상상력은 공간컴퓨팅 기술회사 창업으로 이어졌다.

브이알크루는 창업 2년만인 지난해 4월 기업가치 95억원을 평가받으며 프리 A 시리즈 라운드에서 19억원을 투자받았다. 올해 미디어아트, 정부 연구과제 등으로 30억원의 매출을 올릴 예정이다.
시선 만으로 사물을 제어하고, 사물간 하이퍼링크를 시각화하고, 현실과 가상이 물리적으로 상호작용 하는 시험 영상. 사진=브이알크루
시선 만으로 사물을 제어하고, 사물간 하이퍼링크를 시각화하고, 현실과 가상이 물리적으로 상호작용 하는 시험 영상. 사진=브이알크루

공간 컴퓨팅의 열쇠는 VPS

최 대표는 공간 컴퓨팅의 열쇠는 정밀한 위치인식기술(VPS·Visual positioning system)이라고 봤다. 차세대 GPS로 불리는 VPS 기술이 발전할수록 가상과 현실을 정확하게 포갤 수 있기 때문이다.

미터 단위의 오차를 보이는 GPS와 달리 VPS의 오차는 센티미터 수준으로 매우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포켓몬고를 출시한 나이언틱을 비롯해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VPS를 출시했으며, 국내 지도사업자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는 2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증강현실(AR)은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일상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최혁 기자
최성광 브이알크루 대표는 2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증강현실(AR)은 현실을 풍요롭게 하는 일상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최혁 기자
최 대표는 "브이알크루는 국내에서 가장 오차가 적은 VPS 기술을 보유한 회사”라고 자신했다. 그는 "지난 3월 포스코 제철소의 200m 터널 안에서도 5cm 오차 범위로 측위에 성공했다"며 "11월 국내 VPS 중 최초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공인 인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이미지 기반 VPS는 오차가 크기 때문에 공간의 형태에 기반한 측위 기술에 착안했다. 그는 "라이다를 활용한 고정밀 초고속 스캔으로 공간에 대한 3차원 형태 정보를 정확히 획득할 수 있다"며 "단 한장의 쿼리 이미지만으로 고정밀 측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원천기술부터 콘텐츠까지 직접 개발

브이알크루는 VPS 및 증강현실 원천 기술을 직접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콘텐츠나 솔루션도 직접 제작한다.

최근엔 스크린 속 가상 개체들이 스크린을 넘어 현실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혼합현실 작품 아나모픽MR™을 경북도청 로비에 설치했다. 이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세계한상대회와 남산도서관 101주년 전시회에도 새로운 아나모픽MR™ 작품을 선보인다.

회사는 또 영화 '킹스맨'의 회의 장면처럼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원격회의시스템을 지난 8월 경북도청에 도입했다. AR 글라스를 착용하면 그 장소에 접속한 VR 사용자의 캐릭터를 볼 수 있고, VR 사용자도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과 같은 위치에 있는 AR 사용자를 볼 수 있다.
지난 8월 경북도청에 도입된 원격간부회의 구현 모습.  /사진=브이알크루
지난 8월 경북도청에 도입된 원격간부회의 구현 모습. /사진=브이알크루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러브콜'

브이알크루는 VPS 기술력을 바탕으로 폭스바겐, 현대차, 르노·닛산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차량용 혼합현실(MR) 게임 콘텐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계에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중국 AR 글라스 제조사 엑스리얼(옛 엔리얼)에 브이알크루 게임이 탑재되면서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만들었다.

최 대표는 “차량에서 MR 게임을 즐기려면 내부와 외부에서 끊김이 없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차량 내외부에서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유선 AR 글라스용 게임 콘텐츠를 내년 중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브이알크루는 2021년 세계 모바일기술박람회(MWC)에서 중국 엔리얼과 협업으로 개발한 AR 글라스 시연용 게임 콘텐츠가 블룸버그 통신에 보도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엔리얼 대표에게 무작정 콜드 메일을 보내 MWC 2021에 메인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협력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판매 중인 엔리얼 글라스 제품에 브이알크루가 자체 개발한 게임이 기본 탑재돼 있다.

공간 컴퓨팅 OS 개발 목표

브이알크루는 궁극적으로 공간 컴퓨팅을 구동하기 위한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독보적인 VPS 기술 및 여러 비전 기술이 통합돼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라이브 맵’으로서의 디지털 트윈이 포함될 예정이다. 내년 말 클라우드 기반 '리미널리티 OS' 베타 버전을 출시해 국내 한 대학에 적용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AR 글라스를 착용하면 현실에 포개진 디지털트윈을 통해 사물에 접속하거나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며 “집과 사무실, 빌딩과 도시가 살아있는 컴퓨터가 되는 공간컴퓨팅이 구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이알크루의 데모 중 시선 만으로 사물에 접속하는 모습.  /사진=브이알크루
브이알크루의 데모 중 시선 만으로 사물에 접속하는 모습. /사진=브이알크루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