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바닥 벗어나는 반도체 수출
건곤일척 같은 ‘감산 승부수’가 통했나. 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99억4000만달러로 1년 만의 최대치였다. 전체 수출(546억6000만달러)에서 비중이 18%로 오르면서 ‘바닥 찍었다’ ‘바닥 탈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직은 성급할 수 있는 평가지만 실적 추이를 보면 무리한 분석도 아니다. 월평균 수출액이 1분기 69억달러에서 2분기엔 76억달러로, 3분기에는 86억달러로 늘었다.

수출에서의 비중이 지난해 연간 평균인 19%(6839억달러 중 1309억달러)에 접근한 것도 주목된다. 연초에는 이 비중이 1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침체는 그대로 무역적자로 이어지면서 매달 수출입통계가 나올 때마다 위기론, 비관론이 이어졌다. 반도체가 살아나면서 무역수지도 지난 6월 이후 넉 달째 흑자다. 수출 증가보다 수입 감소가 큰 까닭에 아직은 ‘불황형 흑자’라는 진단이 대세이기는 하다. 그래도 살아나는 반도체 수출은 무역·경상수지 개선 이상의 청신호다. 환율 안정과 주식시장에도 좋은 뉴스다.

결국 상반기의 ‘반도체 바닥론’이 상당히 맞았던 셈이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생성형 AI(인공지능)로 ‘AI 경제’가 본격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반도체 수출 증가세에서도 엿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감산과 재고관리 전략이 이제 어떻게 변할지가 관심사다. ‘반도체 편중론’이 여전히 제기되지만 아직은 반도체를 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게 수출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반도체는 이미 경제와 산업 차원을 벗어났다. 미국과 중국의 장기 대치 와중의 블록 경제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핵심이 반도체다. ‘한국 최대 산업인 반도체를 지키고 초격차를 유지하라’는 국가적 과제 이면에는 ‘실상 반도체가 한국을 지켜준다’는 현실이 있다. 한·미·일 공조를 비롯한 글로벌 안보협력 새판 짜기에도 ‘반도체 연대’가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 바탕에는 TSMC가 있다.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TSMC를 중국 영향권에 놓이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해왔다.

이르면 이달부터 반도체 수출도 전년 대비 플러스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경제·안보 다 지키는 한국 반도체의 약진을 기대한다.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