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풍경이라는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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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 길목에 무궁화꽃이 핀 걸 봤다. 추석 연휴의 한가로움 때문일까? 하루아침에 핀 건 아닐 텐데... 지금껏 못 보다가 어째서 오늘은 보게 되는 건지. 우리나라 꽃. 꽃잎이 다섯 장이네. 꽃잎을 세면서 내게도 꽃잎을 세어보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늘 이런 식으로 나를 일깨우려나 보다.
매주 월요일마다 동네 책방 책인감에서 진행하던 퇴고 연습이 끝났다. 퇴고 연습은 말 그대로 퇴고가 필요한 시를 가져와 퇴고하고 싶은 부분을 밝히는 것이 필수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독자인 J가 첫날부터 산통을 깨고 말았다.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난 다음 J가 말했다. “전 퇴고하고 싶은 곳이 없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이 ‘퇴고 연습’이고 애초 컨셉이 그런 건데, 이건 또 무슨 난관이란 말인가. “전 제 시가 마음에 듭니다.” 환장하겠다. 아주 쐐기를 박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말 되게 뭉클한 말이구나 생각했다. 어디 가서 나도 흔들림 없이 저런 말 할 수 있을까? ‘이게 시가 될까?’ 스스로 되물으며 망설이다 내놓은 시가 많았다. J의 말이 누군가 좋다고 말해줘야 겨우 좋은 시가 되곤 하던 나의 시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던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꺾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퇴고 연습을 같이 진행하던 김은지 시인은 J의 시에 대해 사려 깊은 감상을 남겼다. 그러니까 7월에서 9월까지 핀다는 무궁화꽃을 10월에 본 거라면 행운이 아닐 수 없고, 지금껏 나는 내 마음을 꺾지 않은 누군가 덕분에 시를 건졌다.
서울에서 진안으로, 진안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20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국도를 이용해 도계를 넘나들면서, 공기를 바꾸어 나가는 가을을 바라봤다. 과일을 파는 사람들. 어느 면에서는 배를, 어느 면에서는 사과와 포도를 또 어느 면에서는 밤과 대추를 팔고 있었다. 앞뒤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러다 가끔은 창을 열어 귀뚜라미 소리를 만지면서 그렇게 고향으로 갔다. 국도의 가로수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안에서 무주로 가는 길엔 밤나무가, 무주에서 추풍령으로 가는 길엔 감나무가, 다시 김천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엔 포도나무가 길을 끼고 살고 있다.
국도를 끼고 도는 강물도 보고, 흐르는 물결 소리에 귀도 적셔보고 문경새재를 벗어나 달리면서는 ‘박열 의사 생가’가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어떤 풍경은 밝게 비치고 또 어떤 풍경은 숨어있다. 빙빙 돌아 집으로 가는 길, 뜻밖의 순간들 잊지 말아야지.
추석 연휴에 함께 움직이는 것은 나무와 길과 강과 가을의 온도였다. 우리가 맺은 관계들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구름과 파도와 노을, 그리고 호명할 수가 없어 더없이 아름다운 지명들.
풍경은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에 앙금같이 쟁여진다. 그렇게 믿고 싶다. 가끔 꺼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 풍경들에 개인 면담을 신청할 것이다. 풍경은 아무 말 않고도 거기 있음으로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니까. 어쩌면 저 풍경이 나의 방문객일 수도 있고 내가 저 풍경으로 들어가는 방문객일 수도 있다.
국도를 달리다가 어두워져서야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괴산휴게소에 저녁 끼니를 해결하려고 들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먼저 식사하시는 분께 앞자리가 비었는데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힌다는 소읍의 할머니 식당이 잠시 떠올랐다. 연인과 왔으나 다른 자리에서 먹어야 했던 사람들, 자녀들과 떨어져 밥을 먹는 사람들, 그래도 앉을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순하고 정겹다.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사람이 떠나고 우리도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앉으세요.” 먼저 말을 걸어준다는 게 쉬운 일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도 마음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니까. 그게 시 같다. 특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나의 숨이 딛고 있는 자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몸은 피곤해도 풍경이 새겨지는 중이다.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난 다음 J가 말했다. “전 퇴고하고 싶은 곳이 없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이 ‘퇴고 연습’이고 애초 컨셉이 그런 건데, 이건 또 무슨 난관이란 말인가. “전 제 시가 마음에 듭니다.” 환장하겠다. 아주 쐐기를 박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말 되게 뭉클한 말이구나 생각했다. 어디 가서 나도 흔들림 없이 저런 말 할 수 있을까? ‘이게 시가 될까?’ 스스로 되물으며 망설이다 내놓은 시가 많았다. J의 말이 누군가 좋다고 말해줘야 겨우 좋은 시가 되곤 하던 나의 시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던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꺾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퇴고 연습을 같이 진행하던 김은지 시인은 J의 시에 대해 사려 깊은 감상을 남겼다. 그러니까 7월에서 9월까지 핀다는 무궁화꽃을 10월에 본 거라면 행운이 아닐 수 없고, 지금껏 나는 내 마음을 꺾지 않은 누군가 덕분에 시를 건졌다.
서울에서 진안으로, 진안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20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국도를 이용해 도계를 넘나들면서, 공기를 바꾸어 나가는 가을을 바라봤다. 과일을 파는 사람들. 어느 면에서는 배를, 어느 면에서는 사과와 포도를 또 어느 면에서는 밤과 대추를 팔고 있었다. 앞뒤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러다 가끔은 창을 열어 귀뚜라미 소리를 만지면서 그렇게 고향으로 갔다. 국도의 가로수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안에서 무주로 가는 길엔 밤나무가, 무주에서 추풍령으로 가는 길엔 감나무가, 다시 김천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엔 포도나무가 길을 끼고 살고 있다.
국도를 끼고 도는 강물도 보고, 흐르는 물결 소리에 귀도 적셔보고 문경새재를 벗어나 달리면서는 ‘박열 의사 생가’가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어떤 풍경은 밝게 비치고 또 어떤 풍경은 숨어있다. 빙빙 돌아 집으로 가는 길, 뜻밖의 순간들 잊지 말아야지.
추석 연휴에 함께 움직이는 것은 나무와 길과 강과 가을의 온도였다. 우리가 맺은 관계들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구름과 파도와 노을, 그리고 호명할 수가 없어 더없이 아름다운 지명들.
풍경은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에 앙금같이 쟁여진다. 그렇게 믿고 싶다. 가끔 꺼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 풍경들에 개인 면담을 신청할 것이다. 풍경은 아무 말 않고도 거기 있음으로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니까. 어쩌면 저 풍경이 나의 방문객일 수도 있고 내가 저 풍경으로 들어가는 방문객일 수도 있다.
국도를 달리다가 어두워져서야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괴산휴게소에 저녁 끼니를 해결하려고 들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먼저 식사하시는 분께 앞자리가 비었는데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힌다는 소읍의 할머니 식당이 잠시 떠올랐다. 연인과 왔으나 다른 자리에서 먹어야 했던 사람들, 자녀들과 떨어져 밥을 먹는 사람들, 그래도 앉을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순하고 정겹다.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사람이 떠나고 우리도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앉으세요.” 먼저 말을 걸어준다는 게 쉬운 일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도 마음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니까. 그게 시 같다. 특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나의 숨이 딛고 있는 자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몸은 피곤해도 풍경이 새겨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