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50년 노숙 '커피할매'에게 컵라면을 얻어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셔볼텨?” '커피 할매'가 맞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커피가루가 담긴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숟가락으로 커피를 휘저었다. 가격은 500원. 잔돈이 없다는 말에 할머니는 “됐다”면서 커피잔을 건넸다.


서울역은 노숙인들로 붐비는 곳이다. 옛 서울역사 '문화역 서울284'에서 파출소 방면으로 쭉 걷다 보면 한 지하도 앞에 '커피 할매'의 집이 있다. 각종 종이 박스를 약 1m 높이로 켜켜이 쌓아 놓았고, 우산 두 개로 울타리를 만들어놓았다. 주변 노숙인들에 따르면 커피 할매는 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3일 저녁 커피 할매를 만났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하루하루를 간신히 보내고 있는 할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듭 사양했다. 대신 기자에게 자신이 아껴뒀던 김치라면 한 사발을 건넸다. 때마침 어느 교회에서 나눠준 제육볶음 컵밥도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대구 출신으로 19살 때 서울로 상경했고, 방직 공장에서 일하다가 고된 업무 강도에 일을 그만뒀다고만 했다. 낯선 이에게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은 듯이 보였다.

그에겐 34살 된 딸이 있다고 했다. 없는 형편에 컴퓨터 학원에 보내 가며 열심히 교육을 시켰고, 지금은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딸의 인생 발목 잡는 부모가 되기 싫어서 어떻게든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여든이 넘어가면서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조금만 더 고생하다 이제 끝내야지"라며 노숙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커피 할매가 판매하는 '자판기 스타일' 커피. 가격은 500원. 자신이 원하는 이들에게는 공짜로 커피를 주기도 한다.  사진=최해련 기자
커피 할매가 판매하는 '자판기 스타일' 커피. 가격은 500원. 자신이 원하는 이들에게는 공짜로 커피를 주기도 한다. 사진=최해련 기자
할머니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커피 할매(83)야. 그냥 그렇게 말하면 다들 알아.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

서울역서 커피 장사는 언제 시작하셨어요?
"아주 오래됐지. 말해 뭐해. 길바닥에 나 앉았는데 그래도 가끔은 간식도 사 먹고 필요한 거 사야 하잖아.

노숙인들은 커피랑 술 없으면 못 살아. 추운 날에는 밥 먹고 꼭 한 잔씩 커피 마셔야 돼. 다행히 내가 술이나 담배를 안 하니까 여태껏 여기서 이렇게 붙어 있었던 거야."

이모, 삼촌들 사이에서 할머니 커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커피 맛의 비결이 있다면?
"비결이 있긴 뭐가 있어. 커피 가루랑 설탕을 통 안에 우선 넣어놔. 물을 푹 끓이는 게 중요해. 이 양은 주전자는 20년도 더 썼는데 튼튼해. 그리고 이 부루스타만 있으면 돼. 물 끓여서 커피 마시고, 컵라면도 먹고.

예전에는 하루에 커피 100잔씩도 팔았는데 이제는 장사가 영 시원치 않아. 여기 떠돌아다니는 다른 노숙자 중에서도 불쌍한 애들에게는 그냥 마시라고 주기도 해."

오늘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먹었어. 이따 7시 반쯤 근처 교회에서 밥 주러 나와. 여기는 밥도 다 갖다주고 차로도 가져와서 주고 그래. 어쩌다 누가 만 원짜리 돈 주면 라면도 사다 먹어. 라면도 먹어볼 텨?"
출출하다는 기자의 말에 아껴뒀던 컵라면(김치라면) 한 사발을 대접해준 커피 할매. 사진=최해련 기자
출출하다는 기자의 말에 아껴뒀던 컵라면(김치라면) 한 사발을 대접해준 커피 할매. 사진=최해련 기자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벙어리처럼 아무 말 안 하고 살아. 가진 건 이 휴대용 라디오밖에 없어. 맨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뉴스 들어. 방금도 누가 현수막에 불을 질렀다네. 이런 사람들은 얼른 잡아야지 써.

빗자루로 열심히 바닥 쓸고. 오가는 사람들이 담배를 하도 피워서 꽁초가 금방금방 쌓여. 커피도 팔고. 하루하루 그냥 보내는 거야."

할머니 고향이 어디인가요?
"고향은 대구야. 방직공장에서 어릴 적 일하다가 19살 때 서울로 상경했어. 작은엄마가 먼저 서울 강동구 천호동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서울로 놀러 가자 해서 같이 왔다가 아예 살게 됐지.

작은엄마는 아주 잘 살았더라고. 처음 서울 온 날 작은 엄마가 고기반찬이랑 해서 진수성찬을 차려놨더라고. 누룽지도 한껏 끓여 놨었어. 생전에 고기를 안 먹어봤으니까 뭔지 몰라서 그냥 누룽지만 먹겠다고 했던 기억이 나."

여든 넘어 몸 예전 같지 않아 조금만 더 고생하다 노숙 끝낼 것

서울와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작은엄마네는 이발관을 차려서 하고 있었어. 작은엄마가 아는 삼촌이 “처제는 뭐 하다 왔어요”라고 물어봐서 “방직에서 빗 짰다(직물 공장에서 빗으로 섬유를 가다듬었다)”고 하니까 방직공장에서 기계 수리공이 자기 친구라잖아.

하루 만에 공장에 나를 넣어주더라고. 실을 짜는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1~2대 보다가 나중에는 10대씩 맡겼어. 그러다가 한 몇 달쯤 지났나. 작은엄마가 문양(대구 달성군 문양리)으로 가면서 나 혼자 서울에 남게 됐지.

방직 공장 일이 옛날에는 고됐어. 새벽 5시에 나가서 쉬지도 못하고 빗 짜다 보면 자정이 넘어. 주인들이 악독했다고. 일 부려 먹고는 석달치 돈을 못 받으니까 어떡해. 나는 굶어 죽게 생겼는데. 그때는 이제 그러고 회사도 그냥 안 나가버렸지. 이곳저곳 떠돌다가 결국 여기 서울역에 눌러 앉았어."
서울역 50년 노숙 '커피할매'에게 컵라면을 얻어 먹었다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친척들 안 본 지 오래됐어. 만나지도 않고 그냥 다 싫어.

우리 큰형님(남편의 부인)은 그래도 보고 있어. 형님은 아들 둘이 있는데 다 착해. 부모를 착실히 모시고 살아. 자식들이 있으니까 놀고먹고, 복이지 뭐.

나는 딸 하나 있어. 올해 서른넷이야. 직장 다니면서 착하게 살아. 한 달에 두어번 찾아와서 잔소리만 늘어놓아."

할머니가 서울역서 생활하는 거 두고 따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맨날 속상해하지.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라고 그러지. 근데 갸도 지 인생이 있고, 많지도 않은 월급에 부모를 모시긴 뭘 모셔.

집에서 놀고먹는 노인네 챙기다가 시집도 못 갈까 봐 걱정돼서 내가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여기서 지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실 생각은 없나요?
"그래,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고 나도 이제 끝내버려야지. 오래 있었어. 이제 집에 들어앉아 버려야지."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