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원회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원회
비엔날레,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뜻은 모른다.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예술 잘알못이니까. 그런데 요즘 예술 모르면 안될 것 같다. 전국이 예술 행사로 들끓는데 한번쯤은 들러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검색해본다. 비엔날레의 뜻.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bi+annual)라는 뜻으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 미술전을 말한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벌써 13회째 치르는 행사다. 오, 놀라워라. 그토록 긴 시간 이렇게 큰 세계 미술 축제가 청주에서 열리고 있었단 말이지!

이것은 보통 우리들의 이야기다.

에드워드 호퍼 전시에 줄을 서고, 프리즈 아트페어가 성황리에 열려도, 정작 우리는 우리 곁의 예술을 알지 못한다. 예술은 언제나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유명한 몇몇 전시 빼고 많은 전시들이 여전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오해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송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공예비엔날레 간다고 했더니, 기사님왈
"그거 헐 때마다 적자라든디 왜 하는지 몰겠슈!"

▶(관련 동영상)아르떼TV [아트 인사이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

아... 안타까웠다. 자본과 경영의 논리로 예술을 본다면 이건 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 얻은 예술의 도시, 공예의 중심, 문화의 본령이라는 자부심은! 지방 도시지만 수준의 탁월함을 증명하며 당당하게 우뚝 선 자신감은! 청주는 돈 주고도 못 사는 특별함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시간으로 쌓아올린 진심과 예술의 힘으로.

우리 사회에 예술의 저변이 확대되고 향유 문화가 정착하려면 먼저 예술 광장이 드넓어져야 한다. 자본에서 자유롭고 물성을 뛰어넘어 그 안에서 온전히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 재미있으면 의미는 만들어진다.

보통 예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시장을 먼저 말한다. 예술 시장의 혁혁한 성장을 지표로 보여주며 천문학적인 억!소리에 와!하는 탄성이 터진다. 마침 300억이 넘는 분쇄된 뱅크시 그림이 파라다이스 인천에 전시중이다. 헉! 소리 나지만 재밌다. 자본과 위트가 넘치는 사회에서 예술은 얼마나 재밌는 유희가 되는가. 그냥 웃으면 되는데...

백만원짜리 그림 한 점 사본 적이 없는 나는 단위가 다른 자본 앞에 기가 죽는다. 역시 예술은 그들만의 리그구나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굳이 더 박탈감을 느끼고 싶진 않아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유명한 전시에 줄을 서서 인증 사진을 찍곤 하지만 진짜 예술을 향유하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잘 모르겠다. 괴리감만 커진다.

이것도 솔직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향유는 정말 고차원적인, 선택받은 자들만의 문화일까? 그래서 나는 예술 광장을 먼저 말하고 싶다. 비엔날레는 세계 규모의 미술전이고 예술의 큰 광장이다. 광장은 경계가 없다. 돈이 있건 없건, 나이가 적건 많건, 지식이 깊던 얕던, 누구라도 누릴 수 있고 자유할 권리가 있다. 광장은 모두를 환대한다. 예술 광장이 더 넓어지고 활기차지면 시장은 당연히 번성할 것이디. 사람들은 재미있는 곳에 몰려드는 법이니까.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시작됐다. '사물의 지도 - 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는 주제로. 물성이 어떻게 심상이 되는지 공예는 그것을 눈 앞에 구현한다. 몹시 구체적이고 또렷한 감각으로 눈과 코와 귀를 다 열어젖혀 좌심방 우심실까지 닿게 한다.

이번 공예비엔날레에선 인간과 자연, 예술과 환경 등 묵직하고 따뜻한 주제가 관통한다. 깊은 사유와 통찰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마음 무거운 것은 아니다. 공예라는 장르의 섬세한 표현과 메시지에 연신 감탄이 터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융합의 시도와 장르의 확장이 특히 와닿는다. 하나의 공예 작품을 춤으로 표현하는 융합 장르를 봤는데, 와! 전율이었다. 작품을 글로 바꾸는 일에 전념이었는데, 음악으로, 몸짓으로도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어떤 분야와도 호환될 수 있는 것, 그게 예술이구나 간뇌에 불이 탁 켜진 기분.

직지 특별관에서는 장인들의 모습을 미디어로 설치해 놓았는데, 허! 이 또한 감탄이다. 눈으로, 소리로, 실제 먹향으로 구현된 장인의 한세계에 가슴이 아릿해진다. 진정한 예술은 시간과 마음의 집적이란 말을 가슴으로 느끼며, 그분들의 작품을 넘어 선 삶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기업이 예술로 정체성을 보여주며 하나의 좋은 선례를 남긴 러쉬의 작품도 재밌고 신기했다. 친환경 제품 용기가 재활용되는 미디어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도 자연 안에서 순환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익숙한 검은 용기통에 저마다의 마음을 적은 설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사랑 아닌 것이 없얺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연계 특별 교육을 맡았다. 공예와 내 삶이 만나는 실제 경험이 주제다. 첫 날 교육에 오신 분들도 역시 특별했다. 삶에 맑은 지향을 지닌 분들이 배우는 습관을 갖고 있다. 타인의 삶에 귀기울이고 그로부터 사유하고 성찰하는 것 같다. 수업에는 젊은이와 중년이 어울려 함께 했는데 서로를 향한 따뜻한 응원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비엔날레에 전시된 예술 작품으로 단지 짧은 글을 썼을 뿐인데! 단번에 따뜻해진 모두의 시선에 서로 놀라워하며, 우리는 예술과 기록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든 작품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은 지금 현재를 사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느리게 걷다가 대답하고 싶은 작품 앞에만 멈춰서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오래 응시한다. 가만히 질문에 대답해본다. 거기엔 지금 나의 감정, 솔직하고 내밀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 달막달막 모여있을지도 모른다. 꺼내지 않았으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껌껌한 것도 있을지 모른다. 괜찮다. 빛나는 것도 어둔 것도 다 나니까. 예술을 통해 그렇게 길어올려진 나는 말간 얼굴이 된다. 마음을 표현하면 그만큼 가벼워진다.

예술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확 달라진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그것을 증명한다. 가을엔 청주가 제일 좋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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