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브랜드 부활시킨 뚝심 … 韓 최고 ‘국제은행’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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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철물점부터 대기업까지 영업 현장 누벼
모기업 SC그룹 설득해 ‘SC제일은행’ 이름 다시 살려
현대카드와 하이브리드 서비스·토스뱅크엔 지분투자
지배구조 명예기업 선정 … ESG 경영 성과 인정
그의 ‘롱런’ 비결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에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평가다. SC그룹이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 박 행장 취임 전까지 10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꿰뚫으려 노력했다.
“밑지고 판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 손님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오더라고요. 그게 어머니께 배운 ‘영업’이었던 것 같아요.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후하게 대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 말이죠. 인생은 ‘한 번의 딜’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늘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박 행장은 1979년 45명의 동기와 함께 SC제일은행에 입행했다. 처음부터 금융권에 큰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경제학도들이 으레 한 번쯤 서류를 넣는 곳이 은행이었다. 그보다 우수한 ‘스펙’을 갖춘 동료는 많았다. 박 행장은 “제일은행은 ‘제일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좋은 인재가 많았고 자부심도 컸다”고 회상했다.
11곳. 박 행장이 입행 이후 20년 간 거친 영업점이다. 지방에서부터 주요 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중심지까지 안 가본 지점이 없다. 세운상가 철물점부터 지방공단 중소기업, 강남 한복판 대기업까지 모두 상대해봤다. ‘남들은 편히 일하는데 나만 이렇게 고생하나’라고 불평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토록 다양한 고객을 만나 소통한 순간들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회상한다.
평생 영어 한마디 제대로 써본 적 없었지만 하루 아침에 회사 주인이 외국계 은행으로 바뀌었음에도 사람 상대하는 것은 항상 자신이 있었다. 소통을 무기로 은행 업무에 집중했다. 박 행장은 94년 역사를 가진 제일은행의 전통과 SC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되면 국내 다른 시중은행들이 가지지 못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행장 취임 후 “한국 최고의 국제적 하이브리드 은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SC제일은행은 2015년 박 행장 취임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취임 1년 만에 외국인 은행장 재임시 적자였던 연결 당기순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그는 SC의 글로벌 규범과 경영방식을 제일은행의 역량과 절묘하게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냈다.
취임 당시 56조4317억원이었던 자산은 올해 1분기 기준 104조447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취임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해 작년 말 당기순이익은 3901억 원을 기록했다.
그는 2018년 연임에 성공, 2020년 임시 주총에서 차기 행장에 조기 선임됐으며 올 연말까지 SC제일은행을 이끈다. 글로벌 본사의 신뢰도 탄탄하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빌 윈터스 SC그룹 회장은 “한국은 SC그룹의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그룹 전체 수익의 7%를 차지하고 수익 기여도 5위를 자랑하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그룹은 한국 시장 비즈니스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이어갈 것”이라며 SC제일은행에 힘을 실어줬다.
박 행장은 금융업을 포함한 다양한 업종과의 제휴를 추진했다. 뱅크샐러드와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등 핀테크 기업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해왔으며 작년에는 현대카드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특히 지난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현대카드와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협업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양사의 전략 분야인 프리미엄 부문에서 서로의 강점과 노하우를 결합해 특별한 혜택을 담은 상품과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그 첫 결실로 작년 10월 현대카드의 차별화된 혜택에 SC제일은행만의 금융 혜택을 결합한 카드 15종을 공개했다. 카드 사용 또는 은행 상품 가입 실적에 따라 서로의 혜택을 교차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도 개시했다.
2019년엔 재무적 관점에서 장기적인 수익 뿐만 아니라 전략적 가치를 감안해 인터넷 전문은행인 토스뱅크 컨소시엄에 주주로도 참여했다. 토스뱅크의 디지털 기반과 SC제일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채널을 융합해 협업을 추진하는 등 서로의 장점을 살려 밀레니얼 세대 등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에서다.
바로 ‘Digital, Network, Affluent’다. 취임 때부터 ‘한국 최고의 국제적 하이브리드 은행’의 DNA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던 대목이다.
디지털(Digital) 트렌드를 읽는 박 행장의 안목은 소매금융총괄본부장(부행장) 재임 중이던 2014년부터 드러난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점포 수를 놓고 서로 1등 은행 경쟁을 할 때 그는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은행원이 찾아가 태블릿 PC를 통해 업무 수행이 가능한 모빌리티플랫폼(Mobility Platform)을 은행권 최초로 도입했다. 고객이 은행을 찾아오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일찍부터 간파한 것이다.
박 행장은 이후 비대면 디지털 금융 환경을 구축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지점 운영을 최적화했다. 토스뱅크 지분 투자 등 모바일‧핀테크 업체들과의 폭넓은 제휴를 통해 고객의 디지털 니즈에도 적극 부응하는 등 다양한 고객 채널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일부 점포는 자연스럽게 통폐합을 유도하고, 새로운 고객 니즈가 있는 지역에는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는 170년 이상의 업력을 보유한 글로벌 금융그룹이다. 현재 전 세계 57개 시장에 진출해 있다. 그 중 아시아‧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이익의 90%가 나온다. SC제일은행은 국제적 네트워크(Network)와 차별화된 비즈니스 역량을 활용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기업의 상황은 물론 해외 현지 시장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풍부한 금융 파트너다. 이런 점에서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충분한 고객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SC제일은행의 차별성은 뚜렷해진다.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금융 지원을 위해 올 3월 기준 중국‧인도‧베트남‧아랍에미리트‧홍콩‧싱가포르 등 9개 국에서 ‘코리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코리아 데스크는 한국인 FAM이 상주하며 해외 현지에서 한국기업에 무역금융과 외환거래 등의 금융 서비스를 직접 지원하는 한국기업 전담 금융지원 창구다. 지난 3월 기준 전 세계에 13명의 FAM을 두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영 리치’와 중산층 등 신흥 자산가(Affluent)를 겨냥한 자산관리(WM)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2025년까지 국내 상위 3위 WM 은행이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SC제일은행은 MZ세대 전용 웹 페이지를 개설해 은퇴 관련 자산 설계 세미나를 열고, 외화 자산관리 전문가와 함께 환율 및 외화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룹의 원칙까지 바꾸게 만든 건 바로 SC의 제일은행 인수 후 첫 한국인 행장인 박 행장이었다. 그는 당시 윈터스 회장을 찾아가 “한국에서 소매금융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토종 브랜드인 ‘제일’을 사용하게 해달라.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한국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포기하라”고 제안하며 담판을 지었다.
결국 윈터스 회장이 박행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무진 승인을 얻기 위해 그룹 이사회에 브랜드 변경 안건이 올라갔을 때는 이사회가 열리는 홍콩으로 날아가 SC그룹 브랜드 담당 임원들을 밤새 붙들고 설득했다. 결단력있는 그의 리더십은 한국인 출신 첫 SC제일은행장, 국내 최장수 은행맨, 한국 법인 3연임 최고경영자(CEO)라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행장은 글로벌 본사‧임직원‧고객과 소통하는 게 평생의 업(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저돌적으로 보일 만큼 현장에 달려가는 스타일인데 특유의 공감 능력과 진솔함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킨다는 평가다. SC그룹 안에서 박 행장의 별명은 ‘은발의 JB’다. 염색하지 않은 자연모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업무보고를 받고, 예고 없이 영업점을 방문하는 등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0년 넘게 영업 현장을 뛴 덕분에 수십 년 간 인연을 이어오는 고객들도 많다. 제일은행에 대한 애정이 깊어 퇴직한 제일맨들과도 수시로 만남을 갖는다. 제일맨들은 여전히 ‘친정’에 자금을 예치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소개하는 등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
올해 신년 타운홀에서도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ESG 경영 강화 등 금융산업에 불어 닥치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 적극 대응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했다.
SC제일은행은 ‘환경(E)’과 관련해 2022년 3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녹색건축 인증 건축물에 차별화된 금융상품 정책을 적용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2021년 3월에는 포스코건설과 체결한 1억 유로(약 1403억원) 상당의 ESG 연계 파생상품에 주계약자로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폴란드 바르샤바 소각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선물환 거래에서 포스코건설 측에 온실가스 절감 목표를 부가 조건으로 제시해 기업이 이를 달성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조항을 덧붙인 것이다. 양사는 한달 후 ‘글로벌 ESG 금융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21년 12월에는 탄소중립 실천과 ESG 투자에 관심이 많은 고객과 함께 숲 생태계를 복원하고 멸종 위기 수종을 살리는 ‘착한 숲 프로젝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객이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고 ESG 관련 자산관리 상품에 가입하면 전용 온라인 플랫폼에 조성한 디지털 숲과 오프라인 ‘착한 숲’에 이용자 이름으로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와의 업무 협업도 진행 중이다. SC제일은행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 공급업체인 포스코케미칼 및 앨앤에프와 ESG 관련 금융 공급망인 ‘매출채권매입(TRD) 계약’을 같은 기간 체결했다. TRD는 공급업체가 구매업체에 물품을 납품한 뒤 해당 매출채권을 은행에 양도하면 약정 한도 내에서 은행이 판매업체에게 대금을 선지급하고 구매업체로부터 대금을 대신 지급받는 상품이다.
통상 판매업체는 물건을 납품하면 길게는 수개월을 기다려야 구매업체로부터 판매 대금을 정산받는다. 이 경우 은행과 TRD 계약을 맺으면 대기 기간을 단축시켜 재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해당 TRD 거래는 최종 심사 단계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친환경 거래로 분류돼 SC그룹으로부터 ‘지속가능금융거래’ 등급을 획득했다는 게 SC제일은행 측 설명이다.
SC제일은행은 미래를 이끌 세대인 청년층의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경제적 자립과 포용을 목표로 배움·성장·자립을 지원하는 교육·취업·창업역량 강화 사회공헌(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년 이틀의 유급 자원봉사 휴가제도를 통해 약 87%의 임직원이 봉사활동에 참여 중이다.
주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는 △여성청년 핀테크 창업가 육성 프로그램 ‘우먼인핀테크 아카데미’ △청년 소셜 스타트업 창업가 육성 프로그램 ‘청년제일프로젝트’ △미래 여성리더 자립심 향상 프로그램 ‘골(goal)’ 등이 있다.
SC제일은행은 ‘지배구조(G)’ 분야에도 힘쓰고 있다. SC제일은행은 한국ESG기준원 지배구조 평가에서 2021년 시중은행 최초로 2년 연속 지배구조 우수기업 단독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작년에도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A+’ 등급을 부여받았다. SC제일은행은 2019년부터 4년 연속 A+ 등급을 부여받은 유일한 은행으로 ‘지배구조 명예기업’으로 선정됐다.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지배구조 명예기업상을 수상한 회사가 나온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모기업 SC그룹 설득해 ‘SC제일은행’ 이름 다시 살려
현대카드와 하이브리드 서비스·토스뱅크엔 지분투자
지배구조 명예기업 선정 … ESG 경영 성과 인정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합시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2015년 1월 취임 일성으로 ‘차별화’를 강조했다. 5대 시중은행과 자산 등 몸집 경쟁 대신 질적인 성장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박 행장은 1979년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C제일은행에 입행해 전략마케팅부와 소매영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쳤다. 2014년 리테일금융총괄본부장을 거쳐 2015년 은행장에 취임했다.
그의 ‘롱런’ 비결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에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평가다. SC그룹이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 박 행장 취임 전까지 10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꿰뚫으려 노력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영업 마인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박 행장의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충청도 출신인 아버지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선비처럼 사셨다. ‘사는 방법’은 서울에서 시집온 어머니에게 더 많이 배웠다. 그의 어머니는 청주에서 식료품과 잡화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늘 덤을 많이 줬지만 손익은 나쁘지 않았다.“밑지고 판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 손님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오더라고요. 그게 어머니께 배운 ‘영업’이었던 것 같아요.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후하게 대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 말이죠. 인생은 ‘한 번의 딜’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늘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박 행장은 1979년 45명의 동기와 함께 SC제일은행에 입행했다. 처음부터 금융권에 큰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경제학도들이 으레 한 번쯤 서류를 넣는 곳이 은행이었다. 그보다 우수한 ‘스펙’을 갖춘 동료는 많았다. 박 행장은 “제일은행은 ‘제일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좋은 인재가 많았고 자부심도 컸다”고 회상했다.
11곳. 박 행장이 입행 이후 20년 간 거친 영업점이다. 지방에서부터 주요 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중심지까지 안 가본 지점이 없다. 세운상가 철물점부터 지방공단 중소기업, 강남 한복판 대기업까지 모두 상대해봤다. ‘남들은 편히 일하는데 나만 이렇게 고생하나’라고 불평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토록 다양한 고객을 만나 소통한 순간들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회상한다.
평생 영어 한마디 제대로 써본 적 없었지만 하루 아침에 회사 주인이 외국계 은행으로 바뀌었음에도 사람 상대하는 것은 항상 자신이 있었다. 소통을 무기로 은행 업무에 집중했다. 박 행장은 94년 역사를 가진 제일은행의 전통과 SC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되면 국내 다른 시중은행들이 가지지 못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행장 취임 후 “한국 최고의 국제적 하이브리드 은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SC제일은행은 2015년 박 행장 취임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취임 1년 만에 외국인 은행장 재임시 적자였던 연결 당기순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그는 SC의 글로벌 규범과 경영방식을 제일은행의 역량과 절묘하게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냈다.
취임 당시 56조4317억원이었던 자산은 올해 1분기 기준 104조447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취임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해 작년 말 당기순이익은 3901억 원을 기록했다.
그는 2018년 연임에 성공, 2020년 임시 주총에서 차기 행장에 조기 선임됐으며 올 연말까지 SC제일은행을 이끈다. 글로벌 본사의 신뢰도 탄탄하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빌 윈터스 SC그룹 회장은 “한국은 SC그룹의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그룹 전체 수익의 7%를 차지하고 수익 기여도 5위를 자랑하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그룹은 한국 시장 비즈니스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이어갈 것”이라며 SC제일은행에 힘을 실어줬다.
초융합으로 경쟁력 극대화
보험‧증권‧자산운용‧캐피탈‧저축은행 등 계열사를 거느린 경쟁 시중은행들이 교차 판매 등을 통해 고객 규모를 늘리는 상황에서 박 행장이 내놓은 방안은 ‘초융합’이었다. 그는 “업종간 경계가 무너지고 과거의 경쟁자가 미래의 협력자로 바뀌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은행도 다른 금융 업종과의 제휴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고, 경계를 허물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박 행장은 금융업을 포함한 다양한 업종과의 제휴를 추진했다. 뱅크샐러드와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등 핀테크 기업들과 광범위하게 협업해왔으며 작년에는 현대카드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특히 지난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현대카드와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협업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양사의 전략 분야인 프리미엄 부문에서 서로의 강점과 노하우를 결합해 특별한 혜택을 담은 상품과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그 첫 결실로 작년 10월 현대카드의 차별화된 혜택에 SC제일은행만의 금융 혜택을 결합한 카드 15종을 공개했다. 카드 사용 또는 은행 상품 가입 실적에 따라 서로의 혜택을 교차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도 개시했다.
2019년엔 재무적 관점에서 장기적인 수익 뿐만 아니라 전략적 가치를 감안해 인터넷 전문은행인 토스뱅크 컨소시엄에 주주로도 참여했다. 토스뱅크의 디지털 기반과 SC제일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채널을 융합해 협업을 추진하는 등 서로의 장점을 살려 밀레니얼 세대 등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잘 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는 DNA
박 행장이 강조하는 그만의 독특한 ‘DNA’가 있다.바로 ‘Digital, Network, Affluent’다. 취임 때부터 ‘한국 최고의 국제적 하이브리드 은행’의 DNA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던 대목이다.
디지털(Digital) 트렌드를 읽는 박 행장의 안목은 소매금융총괄본부장(부행장) 재임 중이던 2014년부터 드러난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점포 수를 놓고 서로 1등 은행 경쟁을 할 때 그는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은행원이 찾아가 태블릿 PC를 통해 업무 수행이 가능한 모빌리티플랫폼(Mobility Platform)을 은행권 최초로 도입했다. 고객이 은행을 찾아오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일찍부터 간파한 것이다.
박 행장은 이후 비대면 디지털 금융 환경을 구축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지점 운영을 최적화했다. 토스뱅크 지분 투자 등 모바일‧핀테크 업체들과의 폭넓은 제휴를 통해 고객의 디지털 니즈에도 적극 부응하는 등 다양한 고객 채널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일부 점포는 자연스럽게 통폐합을 유도하고, 새로운 고객 니즈가 있는 지역에는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는 170년 이상의 업력을 보유한 글로벌 금융그룹이다. 현재 전 세계 57개 시장에 진출해 있다. 그 중 아시아‧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이익의 90%가 나온다. SC제일은행은 국제적 네트워크(Network)와 차별화된 비즈니스 역량을 활용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기업의 상황은 물론 해외 현지 시장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풍부한 금융 파트너다. 이런 점에서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충분한 고객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SC제일은행의 차별성은 뚜렷해진다.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금융 지원을 위해 올 3월 기준 중국‧인도‧베트남‧아랍에미리트‧홍콩‧싱가포르 등 9개 국에서 ‘코리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코리아 데스크는 한국인 FAM이 상주하며 해외 현지에서 한국기업에 무역금융과 외환거래 등의 금융 서비스를 직접 지원하는 한국기업 전담 금융지원 창구다. 지난 3월 기준 전 세계에 13명의 FAM을 두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영 리치’와 중산층 등 신흥 자산가(Affluent)를 겨냥한 자산관리(WM)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2025년까지 국내 상위 3위 WM 은행이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SC제일은행은 MZ세대 전용 웹 페이지를 개설해 은퇴 관련 자산 설계 세미나를 열고, 외화 자산관리 전문가와 함께 환율 및 외화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모기업 설득해 ‘제일은행’ 이름 부활
글로벌 금융그룹인 SC는 세계 각지에서 인수한 금융회사의 명칭을 모두 그룹의 명칭으로 통일했다. SC제일은행도 2012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바꿨다. 하지만 3년 만에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SC그룹이 기존 방침을 뒤집고 2015년 한국 법인 명칭에 ‘제일’이라는 이름을 다시 붙여준 것. 지금까지도 전 세계 SC그룹 자회사 가운데 인수 이전의 고유 이름을 쓰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그룹의 원칙까지 바꾸게 만든 건 바로 SC의 제일은행 인수 후 첫 한국인 행장인 박 행장이었다. 그는 당시 윈터스 회장을 찾아가 “한국에서 소매금융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토종 브랜드인 ‘제일’을 사용하게 해달라.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한국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포기하라”고 제안하며 담판을 지었다.
결국 윈터스 회장이 박행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무진 승인을 얻기 위해 그룹 이사회에 브랜드 변경 안건이 올라갔을 때는 이사회가 열리는 홍콩으로 날아가 SC그룹 브랜드 담당 임원들을 밤새 붙들고 설득했다. 결단력있는 그의 리더십은 한국인 출신 첫 SC제일은행장, 국내 최장수 은행맨, 한국 법인 3연임 최고경영자(CEO)라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행장은 글로벌 본사‧임직원‧고객과 소통하는 게 평생의 업(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저돌적으로 보일 만큼 현장에 달려가는 스타일인데 특유의 공감 능력과 진솔함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킨다는 평가다. SC그룹 안에서 박 행장의 별명은 ‘은발의 JB’다. 염색하지 않은 자연모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업무보고를 받고, 예고 없이 영업점을 방문하는 등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0년 넘게 영업 현장을 뛴 덕분에 수십 년 간 인연을 이어오는 고객들도 많다. 제일은행에 대한 애정이 깊어 퇴직한 제일맨들과도 수시로 만남을 갖는다. 제일맨들은 여전히 ‘친정’에 자금을 예치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소개하는 등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등 ESG 경영 박차
박 행장은 2022년 임직원 신년 타운홀 미팅에서 “4차 산업혁명, 디지털화, 핀테크 혁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금융산업에 불어닥치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 적극 대응해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올해 신년 타운홀에서도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ESG 경영 강화 등 금융산업에 불어 닥치는 급격한 변화의 바람에 적극 대응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했다.
SC제일은행은 ‘환경(E)’과 관련해 2022년 3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녹색건축 인증 건축물에 차별화된 금융상품 정책을 적용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2021년 3월에는 포스코건설과 체결한 1억 유로(약 1403억원) 상당의 ESG 연계 파생상품에 주계약자로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폴란드 바르샤바 소각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선물환 거래에서 포스코건설 측에 온실가스 절감 목표를 부가 조건으로 제시해 기업이 이를 달성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조항을 덧붙인 것이다. 양사는 한달 후 ‘글로벌 ESG 금융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21년 12월에는 탄소중립 실천과 ESG 투자에 관심이 많은 고객과 함께 숲 생태계를 복원하고 멸종 위기 수종을 살리는 ‘착한 숲 프로젝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객이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고 ESG 관련 자산관리 상품에 가입하면 전용 온라인 플랫폼에 조성한 디지털 숲과 오프라인 ‘착한 숲’에 이용자 이름으로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와의 업무 협업도 진행 중이다. SC제일은행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 공급업체인 포스코케미칼 및 앨앤에프와 ESG 관련 금융 공급망인 ‘매출채권매입(TRD) 계약’을 같은 기간 체결했다. TRD는 공급업체가 구매업체에 물품을 납품한 뒤 해당 매출채권을 은행에 양도하면 약정 한도 내에서 은행이 판매업체에게 대금을 선지급하고 구매업체로부터 대금을 대신 지급받는 상품이다.
통상 판매업체는 물건을 납품하면 길게는 수개월을 기다려야 구매업체로부터 판매 대금을 정산받는다. 이 경우 은행과 TRD 계약을 맺으면 대기 기간을 단축시켜 재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해당 TRD 거래는 최종 심사 단계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친환경 거래로 분류돼 SC그룹으로부터 ‘지속가능금융거래’ 등급을 획득했다는 게 SC제일은행 측 설명이다.
SC제일은행은 미래를 이끌 세대인 청년층의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경제적 자립과 포용을 목표로 배움·성장·자립을 지원하는 교육·취업·창업역량 강화 사회공헌(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년 이틀의 유급 자원봉사 휴가제도를 통해 약 87%의 임직원이 봉사활동에 참여 중이다.
주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는 △여성청년 핀테크 창업가 육성 프로그램 ‘우먼인핀테크 아카데미’ △청년 소셜 스타트업 창업가 육성 프로그램 ‘청년제일프로젝트’ △미래 여성리더 자립심 향상 프로그램 ‘골(goal)’ 등이 있다.
SC제일은행은 ‘지배구조(G)’ 분야에도 힘쓰고 있다. SC제일은행은 한국ESG기준원 지배구조 평가에서 2021년 시중은행 최초로 2년 연속 지배구조 우수기업 단독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작년에도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A+’ 등급을 부여받았다. SC제일은행은 2019년부터 4년 연속 A+ 등급을 부여받은 유일한 은행으로 ‘지배구조 명예기업’으로 선정됐다.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지배구조 명예기업상을 수상한 회사가 나온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