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만 보고 가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0년 10월 회장에 취임하며 밝힌 각오다. 정 회장은 당시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돼야 하고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고객’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달 14일 취임 3주년을 맞는 정 회장의 ‘고객 중심 혁신 경영’은 압도적 실적으로 이어졌다.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판매 3위에 올랐고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 2위를 꿰찼다. 정주영 선대회장·정몽구 명예회장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기업가정신에 정 회장의 혁신 경영이 더해져 현대차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년 만에 글로벌 톱 티어 도약

'정의선號 3년' 영업이익 年 20조 시대…실적·미래 다 잡았다
정 회장이 취임한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가동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때다. 현대차그룹 역시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긴 했지만 ‘고객 차량 인도가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정 회장의 특명에 따라 174개에 달하는 대체 소자를 직접 개발했다.

현대차·기아는 국내외 공장 가동을 지속하는 등 생산력을 유지한 덕분에 수요 급증세에 올라탔다. 글로벌 판매는 정 회장 취임 전인 2020년 상반기 227만2075대에서 올해 상반기 365만7563대로 3년 만에 61% 급증했다. 2010년 글로벌 판매 5위에 오른 현대차·기아는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바꿔 지난해 ‘톱3’로 발돋움했다. 1, 2위인 도요타, 폭스바겐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판매 증가로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2020년 상반기 현대차·기아 합산 73조114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29조9633억원으로 1.8배가량으로 늘었다.

글로벌 명차 반열에 오른 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부가가치 차량을 더 많이 판매한 덕분에 영업의 질도 크게 개선됐다. 같은 기간 합산 영업이익은 2조437억원에서 14조1076억원으로 6.9배로 급증했다. 현대차·기아는 상장사 반기 실적 1, 2위까지 차지했다. 합산 영업이익률은 상반기 두 자릿수(10.9%)로 올라서며 메르세데스벤츠, 테슬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반기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현대차 14조7911억원, 기아 11조8320억원으로 합산 26조6231억원에 달한다.

○로봇·항공 미래 사업에도 집중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전략에 더 주목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일찌감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개발을 결단한 덕분이다. E-GMP 기반의 현대차 아이오닉 5·6, 기아 EV6·9 등은 압도적 성능으로 세계 평단을 석권했다. 이젠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진화하고 있다.

신기술과 미래지향적 디자인은 현대차그룹을 미래차 톱 티어에 올려놨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는 올해 3분기 8만99대로 전년 동기 대비 94% 급증했다. 분기 기준 최다 판매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우려까지 말끔히 씻어냈다. “모든 고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이동 수단을 구현하겠다”던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를 넘어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AAM)로 시야를 넓힌 것도 정 회장의 강력한 도전 의지 덕분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고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 사재 1억760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미래 모빌리티는 오너의 결단이 없으면 추진하기 어렵다”며 “정 회장이 미래 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수평적 소통과 자율을 중시하는 쪽으로 조직 문화가 변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유력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해 정 회장을 ‘올해의 자동차산업 선구자’로 선정하면서 “대기업은 형식과 관습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지만 현대차그룹은 예외”라며 “정 회장의 미래 비전이 현대차그룹을 진정한 혁신가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김일규/배성수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