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현실을 드디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월가는 최근 쏟아진 미 중앙은행(Fed) 주요 인사와 투자 대가들의 고금리 전망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급등하는 미 국채 금리도 그간 금리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자신해온 월가를 더욱 실망하게 했다. 채권 가격 급락은 ‘제2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마저 키우고 있다.

○고금리 지지 선언 잇따라

"고금리 종착점 알 수 없다"…美 국채 10년물 年 5% 넘을 수도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인사들은 연이어 고금리 지지 발언을 내놨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는 “다음달 FOMC 회의 때 미국 경제가 최근(9월) FOMC 회의 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Fed 내 대표적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은 총재도 이날 한 행사에서 “나는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지만 인하 역시 마찬가지”라며 “동결을 원하며 오랫동안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했다.

Fed 인사들이 한꺼번에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낸 것은 같은 날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의 영향이 작지 않다.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지난 8월 민간기업 구인 건수는 961만 건으로 전월 대비 69만 건(7.7%)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 880만 건을 크게 넘어선 수치다. 구인 건수가 예상치를 큰 폭으로 웃돈 만큼 Fed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미 국채 금리 연 5% 돌파할 수도

미 국채 금리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이날 연 4.8%를 돌파해 연 4.802%에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른 나라 국채 금리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2.9720%로 2011년 유로존 재정 위기 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국채 금리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이날 그리니치 경제 포럼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급등하고 있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채 금리가 고공 행진을 지속하면서 월가에선 이에 따른 파급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분기 은행 대차대조표에서 국채 가격 하락(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미실현 손실은 총 5584억달러로 전 분기 대비 8.3% 증가했다. SVB가 채권 가격 하락 시점에 상환할 예금을 마련하기 위해 손해를 보고도 국채를 팔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일어난 것처럼 다른 중소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자신감 잃은 월가

미 국채 금리 급등은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이 더 높은 금리로 리파이낸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뿐 아니라 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30년 고정 모기지 평균 금리는 연 7.72%까지 올랐다. 2000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모기지 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지난해는 시장이 금리 상승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고금리 장기화에 적응하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