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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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가 채권 투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로스는 4일(현지시간) 발표한 최신 투자 전망에서 "미래 총수익률 측면에서 주식과 채권을 모두 포기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채권 펀드 운용사 핌코(PIMCO)의 공동설립자 출신으로, 현재 활약 중인 제프리 건들락 등 몇몇 채권왕들 사이에서도 '원조'로 분류된다. 그로스는 현재 야누스 캐피털 그룹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재 채권이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주식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쨌든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는 장기적으로 채권 투자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그로스는 '합병차익거래'를 추천했다. 기업의 대규모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누릴 과실이 더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통상 기업이 M&A에 나설 때 이에 반대하는 기존 주주는 회사 측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주의 매수청구가격이 현재의 주식 시세보다 높으면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익을 남길 수 있는데 이를 합병차익거래라고 한다. 이 차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하는데, 심할 경우 기업으로선 내줘야 할 돈이 불어나 합병 등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로스는 합병차익거래를 통해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종목으로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추천했다. 영국·미국 등 주요국 반독점 규제 당국의 인수 저지로 수차례 무산 위기에 처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인수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망에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기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인수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영국 경쟁당국인 경쟁시장청(CMA)이 해당 빅딜을 승인하기로 했다. 그로스는 또 다른 종목으로 카프리를 꼽았다. 코치 등 패션 브랜드를 소유한 태피스트리가 카프리를 인수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로스는 마스터합자회사(MLPs)도 채권의 대체 투자처로 제안했다. 원유나 가스의 송유관, 저장시설 등 에너지 인프라에 주로 투자하는 MLPs는 거래소에서 공개 거래되는 유한 파트너십이다. 유한 파트너십이 갖는 세제 혜택과 증권처럼 공개 거래되는 유동성을 결합시킨 상품이다. 다만 그로스는 "하방에 취약해 보이는 유가 때문에 MLPs가 이미 정점에 근접한 상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는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해 작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지만,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그로스는 최근 미국 국채 수익률의 가파른 상승세를 우려했다. 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최근 연 4.8%까지 치솟았다가 민간 고용 데이터 둔화 등으로 잠시 주춤한 상태다. 그로스는 "국채 수익률 상승은 통상 현재 주식의 선행 PER 비율을 고려할 때 고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골드만삭스의 차트를 인용했다.

그는 "해당 분석에 따르면 S&P 500 지수의 PER 배수는 지난 5년간 국채의 '실질' 수익률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며 "현재 국채의 실질 수익률 수준을 고려할 때 S&P 500 지수의 PER 배수는 18배가 아닌 12배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로스는 특히 "개인적으로 제롬 파월 중앙은행(Fed) 의장이 단기적으로 기준 금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선회할 의지도, 능력도 없을 것으로 본다"며 "미 국채 수익률이 조만간 연 5%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