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한 냄새, 공중에 걸린 토막난 흑인...이게 전시장이야?
어디선가 시큼한 냄새가 풍겨온다. 환한 조명 대신 어두운 노란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고, 바닥에는 흙과 모래가 깔려있다.

도통 미술 전시장으론 보이지 않는 이곳은 서울 사간동 페레스프로젝트 갤러리. 1991년생 미국 작가 키얀 윌리엄스(32)의 개인전 '별빛과 진흙 사이' 현장이다. 일반적인 전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공간은 종교 의식을 치루는 곳 같기도, 우주의 한 부분 같기도 하다.

정점은 공중에 별처럼 펼쳐진 조각이다. 멀리서 보면 와이어에 돌이 무질서하게 걸려있는 듯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얼굴, 팔, 손, 다리, 발의 형상이 드러난다. 사람의 몸을 진흙으로 본뜬 후 그걸 산산조각 내서 얇은 줄에 걸어놓은 것이다.
시큼한 냄새, 공중에 걸린 토막난 흑인...이게 전시장이야?
기묘한 분위기의 이 작품의 모델은 윌리엄스, 작가 자신이다.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해머 미술관 개인전을 위해 만든 작품을 서울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흑인이자, 퀴어 예술가다. 일생을 '소수자'로 살아온 그에게 정체성은 항상 중요한 화두였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 걸까.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래서 그는 흙을 파헤쳤다.

그는 미국 인구조사청 데이터를 통해 조상들이 살았던 주소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직접 그곳에 가서 고고학자처럼 흙과 모래를 모았다. 서울 전시장에 깔려있는 흙은 실제로 그가 미국 곳곳에서 가져온 흙이다.

"흙은 '역사'를 상징해요. 제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역사, 조상들이 쌓아올린 역사, 지구의 역사 말이죠. 제 정체성에 대한 작품을 만들 때 흙이란 소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 이유죠."
키얀 윌리엄스의 과거 작품 'Sentient Ruins'(2021). /키얀 윌리엄스 홈페이지 캡쳐
키얀 윌리엄스의 과거 작품 'Sentient Ruins'(2021). /키얀 윌리엄스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역사엔 언제나 기록되지 않는 목소리가 있는 법. 역사가 만들어내는 지배적 서사는 소수자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한다. 그는 그걸 깨뜨리기 위해 진흙으로 사람 몸을 만들어낸 뒤 산산조각냈다. 말 그대로 소수자를 억압하는 권력을 '해체'한 것이다.

윌리엄스는 그 파편 속에 희망을 담았다. 산산조각 난 파편을 공중에 펼쳐서 아름다운 별처럼 보이게 했다. 전시장을 노란빛으로 채운 것도 우주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한 연출이다.

"파괴 뒤에는 새 생명이 따라오잖아요. 단순히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가 사실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고, 들리지 않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처럼요."
시큼한 냄새, 공중에 걸린 토막난 흑인...이게 전시장이야?
윌리엄스가 흙과 돌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냈다면, 그 밑층에 있는 1990년생 페루 출신의 작가 파울로 살바도르(33)는 회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에 갔더니 정작 그 사람들은 '유럽형 회화'가 뭔지 자각도 못하고 있는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우리만 부단히 '유럽형 회화'를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더라"고 말한 그는 전통적 유럽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민족성을 작품에 담기로 했다.
시큼한 냄새, 공중에 걸린 토막난 흑인...이게 전시장이야?
작품 속에서 인간과 함께 등장하는 퓨마, 뱀 등이 그렇다. '인간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라는 고대 페루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림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는 독특한 색조는 살바도르가 직접 하나하나 자연의 재료와 섞어서 만든 것이다.

두 전시 모두 11월 12일까지 열린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