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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매직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올해는 정말 언제까지 더울꺼야.’ 라던 말이 무색하게 아침. 저녁 바람이 제법 차갑기까지 하다.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을 노래들이 쏟아진다. 그 중 귀에 꽂히는 이 노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고은 작사, 김민기 작곡의 ‘가을편지’를듣자마자 갑자기 한 자 한 자 꼭꼭 정성스럽게 손 편지를 쓰고 싶다. 그 편지가 누군가의 인생은 아니어도 얼마간의 행복을 선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가을이니까!

편지 한통으로 인생이 바뀌는 기묘한 인연의 사람들이 여기 있다. 국내에서 이미 너무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쇼타, 아쓰야, 고헤이 삼인조 도둑이 과거로부터 도착한 고민이 가득 담긴 편지를 발견하고 여기에 답장을 하면서 겪게 되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편지를 보내오는 각각의 사연들은 하나하나 기구하고, 투덜대면서 이들의 사연에 답장을 보내던 도둑 삼인방은 자신들이 훔친 핸드백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재미있다. 2012년 국내에 번역된 이래 10년 연속 역대 최장기 베스트셀러 소설의자리를 지켰다는 대기록은 재미와 공감, 감동을 보장하는 셈.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의 장점을 한껏 살려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들이 옴미버스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촘촘한 스토리와 반전, 등장인물들을 모두 아우르는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길은 즐겁다.

‘대필(代筆)’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주제의 소설도 있다.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은 쓴다는 행위와 쓰는 사람의 마음 자체를 섬세하게 묘사한 따뜻한 소설이다.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니, 내가 직접 쓰지 않은 편지는 가짜 편지이고, 그 마음이 잘 전달되지 못한다는 주인공의 생각은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어가는 중간중간 쓰는 사람의 정성스러움과 수고스러움이 없이는 그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순수한 진리를 만나게 된다. 비록 그 글이 내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하더라도.

주인공 포포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 대필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을 밟게 된다. 포포는 대필은 사기라고 생각하고 반항하는 시기를 보내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선대(先代)의 뜻을 이어 대필가가 된다.

아내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이혼을 결심한 남편이 이혼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편지. 큰 수술을 앞둔 남자가 첫사랑에게 전하는 안부의 편지, 사별한 남편의 편지를 기다리는 노부인이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 등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대필하면서 포포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통하 스스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행복한 대필가가 된다.
이야기에는 편지로 전하는 애틋한 마음들과 함께 그 마음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대필가의 준비과정을 보여준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종이의 종류, 펜의 두께, 우표의 그림까지 고민해 선택하는 대필가의 모습은 쓰는 행위의 숭고 함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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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이 쓰는 행위 자체를 심도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강영숙 작가의 <라이팅클럽>은 어쩌면 글쓰기 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하고 있다. 강영숙 작가는 “글 쓰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 사유의 한 방법임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이 작품으로 ‘박신애 문학상’을 수상했다.

<라이팅 클럽>은 모녀지간인 김 작가와 영인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무대는 계동에 있는 글쓰기 교실. 하지만 김작가가 운영하는 글쓰기 교실은 김작가 친구들이 모여 밤새 술을 마시는 아지트이자, 동네 주부들의 수다방이다. 그리고 김작가의 딸 영인은 이곳에서 늘 무엇인가를 쓴다. 쓰는 것은 그녀 영혼의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할 때는 공장주에 맞서 싸우는 여자들의 소설을 쓰고, 네일 숍을 찾은 손님의 손톱을 다듬으며 스스로 엑스파일의 스컬리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글쓰기와 함께 영인의 성장시키는 것 역시 책이다.
그녀의 글쓰기 스승 ‘J’의 독서 리스트인 ‘J칙령’은 주인공의 보물이다. 영인 또한 우리에게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던 독서리스트를 공개한다. 시몬 베유의 ‘노동 일기’,존 버거의 ‘라일락과 깃발’ 잭 런던의 ‘강철 군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까지. 이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늘 무엇인가 쓰고자 했던 모녀의 이야기이자. 훌륭한 추천도서 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말한다 “ 한 번 써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무엇이든 쓰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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