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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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3M의 혁신성이 퇴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격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제품을 쏟아내던 과거와 달리 단기적인 수익 개선에 매진하기 시작해서다. 시장에서는 3M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퇴보하는 3M의 혁신성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3M의 혁신성이 퇴보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카치 테이프, 포스트잇, 비디오테이프 등 히트 상품을 쏟아 내던 과거와 달리 신제품 출시를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제품 출시 빈도는 줄었고, 개발 속도도 느려졌다.

1902년 광산업체로 출발한 3M은 공격적인 R&D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왔다. 1930년 투명 테이프인 스카치테이프를 개발했고, 1967년 산업용 방진마스크, 1980년 포스트잇 등 수많은 히트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R&D에 주력한 결과다. 2017년에는 미국 클레어몬트경영대학원 산하 드러커연구소가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3M을 선정하기도 했다.

1949년부터 1966년까지 3M 회장으로 재직한 윌리엄 맥나이트가 성장 기반을 다졌다. 맥나티트는 세 가지 경영 원칙을 세웠다. '10%, 30%, 15% 룰'이다. 최근 1년 내 개발한 신제품 매출이 총매출의 10%를 차지하고, 4년 내 개발한 신제품이 매출의 30%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두 원칙을 뒷받침하기 위해 연구원들에겐 업무시간의 15%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혁신을 장려하는 3M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는 2018년 마이크 로만 최고경영자(CEO)가 부임한 뒤 바뀌기 시작했다. 경영진이 연구팀의 신제품 개발안을 등한시한 탓이다. 취임 이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신제품 개발보다 기존 제품의 개선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3M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신제품을 개발하던 문화도 사라졌다.

지난해 3M에서 퇴직한 밥 스미스 연구원은 WSJ에 "1988년 처음 3M에 입사했을 때는 매일 오전 11시마다 사내 식당에 다 같이 모여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며 "이런 토론은 실제 신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요즘 3M에는 이런 문화가 아예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3M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존 바노베츠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신제품 출시 빈도가 줄고 개발 속도가 느려진 것은 (우리가)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줄어드는 R&D 비중

전·현직 연구원의 비판에도 3M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R&D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대신 비용 절감에 주력한 것이다. 로만 CEO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총 8500명을 감원했다. 내년에는 지난해 매출(340억달러)의 25%를 차지하는 헬스케어 부문을 분사할 계획이다. 배당 수익을 늘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매출의 6% 이상을 R&D 비용으로 쓰던 3M의 철칙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8년 327억 7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42억 3000만달러로 14억달러 증가했다. 하지만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017년 5.8%에서 지난해 5.4%로 0.4%포인트 감소했다. 판매 및 관리비는 계속 증가했다. 2017년 65억 7200만달러에서 지난해 90억 3700만달러까지 37% 늘었다.

R&D 비중을 줄였지만 경영 개선에 대한 뚜렷한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8년 3M의 영업이익률은 23.5%에서 지난해 21.6%로 1.9%포인트 감소했다. 판매 및 관리비를 늘렸지만 경영 지표가 악화한 것이다. 주가 흐름도 나빠졌다. 2018년 말부터 지난 5일까지 3M 주가는 53.62% 하락했다. 올 들어선 26.76% 떨어졌다.
20세기 기술 혁신의 선봉장 3M, 수익성 좇다 퇴보의 길로
존 바노베츠 3M CTO는 "전기자동차 부품, 에너지 절감용 제품 등의 개발이 완료되면 성장 속도가 다시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3M 내부에선 경영진의 전략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온다. 39년간 3M에서 재직한 로버트 애스무스는 "3M의 고위 경영진은 (시장의) 승자와 패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며 "더 많은 시제품을 생산한 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성공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스무스는 과학계 최고 영예인 칼튼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R&D로 틈새시장 찾아야"

전문가들은 3M의 실적이 앞으로 더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M의 주력 상품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액정 디스플레이(LCD) 시장을 지배하던 3M의 다층 광학 필름은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디스플레이 시장을 재편하고 있지만 OLED 관련 신기술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다.

3M의 연구 책임자를 역임한 롭 키슈케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3M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며 "경영진이 연구원들에게 새롭고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기존 제품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한 탓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환경 오염 혐의로 막대한 보상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뉴욕주 등은 3M이 과불화화합물(PFAS)을 만들어 미국 상수도 등 수질을 오염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3M은 지난 6월 이 소송에 대해 103억달러(약 13조 8747억원)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2025년까지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3M의 PFAS 연 매출은 평균 13억달러에 달한다. 3년 내로 PFAS를 대체할 화학물질을 개발할 방침이다.

연이은 악재로 인해 3M의 경영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존 기술에 의존하지 말고 새로움 틈새시장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3M에서 광학필름, 연마재 등을 개발한 올레스터 벤슨은 "그냥 드러누워서 자멸하든, 시장에 나가 싸우든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라며 "3M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