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의 폭주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사법부는 초유의 수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대법원장 공백 상황에서는 전원합의체 진행이 어렵고, 후임 대법관 제청 절차도 차질이 예상된다. 관련 재판이 줄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다시 후보자를 지명해도 통상 절차를 고려하면 두 달 이상 공백이 이어질 전망이다.

○與 “거대 야당의 폭정”

대통령실은 부결을 주도한 야당을 향해 “피해자는 국민이고,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사태를 초래했다”며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여당은 부결 직후 “다수 권력의 폭정”이라고 반발하며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입법폭주 사법공백 민주당은 책임져라” “사법공백 야기시킨 민주당은 사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의 다급함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발목 잡아 정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 논리를 택했다”고 맹비난했다. 김기현 대표도 “김명수 사법부 체제에서 누렸던 좌편향 정치 유착을 잊지 못해 대놓고 사법부 공백을 장기화시키고 있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은 정치 재판에 기생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자초한 결과”라고 맞받았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애초에 국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보냈어야 마땅하다”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발목 잡기’ 운운하지 말라”고 했다.

○연말까지 ‘사법부 마비’ 우려

대법원은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을 때까지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갈 전망이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이후 대법원은 안철상 선임 대법관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대통령실이 새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일정에 맞춰 인사청문회, 표결 등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는 적어도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사법부의 주요 기능은 대부분 멈출 가능성이 크다. 우선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크거나 대법원 판례 변경이 필요한 중요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 선고에 차질이 예상된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한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경우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안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대법관 12명이 4명씩 나눠 상고심을 심리하는 소부 선고 역시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자 인선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신임 대법원장이 후임을 지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대법관의 퇴임 시기와 맞추려면 지금부터 인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내년 2월 예정된 전국 법관 3000여 명의 인사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과 더불어 양대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 유남석 소장의 임기도 다음달 10일 끝날 예정이다. 헌재소장 역시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야당이 또 부결을 밀어붙이면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이 모두 공석인 사태가 벌어진다.

설지연/민경진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