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필이 펼쳐낸 '드보르자크의 격정'…음의 파도가 일렁이다 [클래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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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에드워드 가드너 지휘·테츨라프 협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섬세한 활 테크닉, 비브라토 조절…노련함 돋보여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유려한 장면 전환, 선명한 악상 표현…호흡 뛰어나
충분한 응집력·추진력…숨 가빠질 만한 긴장감 선사
에드워드 가드너 지휘·테츨라프 협연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섬세한 활 테크닉, 비브라토 조절…노련함 돋보여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유려한 장면 전환, 선명한 악상 표현…호흡 뛰어나
충분한 응집력·추진력…숨 가빠질 만한 긴장감 선사
귀로 듣는 것만으로 체코의 거대한 풍광이 보여지고, 드보르자크의 피 끓는 열정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치 않는 긴밀한 호흡과 극적인 악상 표현,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단단한 응집력과 음향적 입체감을 갖춘 이들의 연주는 우레와 같은 청중의 환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6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얘기다.
오후 7시30분. 2021년부터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를 맡아 온 에드워드 가드너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채 무대를 걸어 나왔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은 영국 스코틀랜드 연안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한 동굴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이었다. 첫 곡의 연주는 다소 불안했다. 밀도 있는 음향과 정교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동굴로 밀려오는 파도를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하는 서두에서 악단의 소리가 한데 합쳐지지 못하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소란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또 통상 연주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됐는데, 악상의 변화까지 급하게 이뤄지면서 잔잔한 물결에서 격렬한 파도로 변모하는 바다의 움직임,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심상 등 작품에 담긴 세밀한 표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이어 무대 위로 오른 인물은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독일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였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테츨라프는 단단한 음색과 강한 터치로 브람스의 격렬한 악상을 토해냈다. 1악장에선 흔들리는 음정, 경직된 보잉(활 긋기) 탓에 브람스 특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풀어내는 데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다행히 2악장부터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갔다. 그는 현에 가하는 장력, 활의 속도 등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때로는 울부짖는 듯한 애절한 음색으로, 때로는 웅장한 음색으로 풍부한 서정을 읊어냈다. 마지막 악장에선 유려한 활 테크닉으로 악곡 특유의 싱싱한 활기를 온전히 펼쳐냈다. 중요 음에 비브라토를 강하게 넣어 화려한 음색을 덧입히다가도 몇몇 음은 아예 비브라토를 뺀 채로 담백하게 처리하는 연주에선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2부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으로 채워졌다. 체코 출신인 드보르자크의 보헤미아적 색채가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 대적할 만한 명작으로 꼽힌다. 런던 필하모닉의 저력은 그제야 제대로 발휘됐다. 가드너는 첫 소절부터 각 악기군의 소리를 정교히 조형해 나가면서 작품 특유의 어두운 색채와 불꽃이 피어나는 듯한 격렬한 장면을 생생히 표현해냈다. 비장한 악상과 목가적인 악상을 오가는 구간에서는 청중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분위기 전환을 이루면서 감정의 폭을 키워냈다.
2악장에선 응집력 있는 현의 음향과 목관의 또렷한 색채, 포근한 호른의 울림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충분한 양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 가드너의 명료한 지시에 따라 각 악기군은 제한된 음량과 정제된 음색으로 후경에 빠져있다가도 금세 투쟁적인 음색과 거대한 음량으로 전경에 달려 나오면서 풍부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마치 거대한 음의 물결이 파도치는 듯한 순간이었다. 각 선율이 켜켜이 층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소리와 악상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며 이뤄내는 광대한 에너지는 숨이 가빠지는 듯한 극한의 긴장감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가드너가 이끈 런던 필하모닉은 1400여석의 콘서트홀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의 거대한 음향으로 잠재력을 드러냈고, 끝까지 좋은 연주를 선보이겠단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할 만한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오후 7시30분. 2021년부터 런던 필하모닉 수석지휘자를 맡아 온 에드워드 가드너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은 채 무대를 걸어 나왔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은 영국 스코틀랜드 연안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한 동굴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이었다. 첫 곡의 연주는 다소 불안했다. 밀도 있는 음향과 정교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동굴로 밀려오는 파도를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하는 서두에서 악단의 소리가 한데 합쳐지지 못하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소란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또 통상 연주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됐는데, 악상의 변화까지 급하게 이뤄지면서 잔잔한 물결에서 격렬한 파도로 변모하는 바다의 움직임,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심상 등 작품에 담긴 세밀한 표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이어 무대 위로 오른 인물은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독일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였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테츨라프는 단단한 음색과 강한 터치로 브람스의 격렬한 악상을 토해냈다. 1악장에선 흔들리는 음정, 경직된 보잉(활 긋기) 탓에 브람스 특유의 견고한 구조와 짜임새를 풀어내는 데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다행히 2악장부터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갔다. 그는 현에 가하는 장력, 활의 속도 등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때로는 울부짖는 듯한 애절한 음색으로, 때로는 웅장한 음색으로 풍부한 서정을 읊어냈다. 마지막 악장에선 유려한 활 테크닉으로 악곡 특유의 싱싱한 활기를 온전히 펼쳐냈다. 중요 음에 비브라토를 강하게 넣어 화려한 음색을 덧입히다가도 몇몇 음은 아예 비브라토를 뺀 채로 담백하게 처리하는 연주에선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2부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으로 채워졌다. 체코 출신인 드보르자크의 보헤미아적 색채가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 대적할 만한 명작으로 꼽힌다. 런던 필하모닉의 저력은 그제야 제대로 발휘됐다. 가드너는 첫 소절부터 각 악기군의 소리를 정교히 조형해 나가면서 작품 특유의 어두운 색채와 불꽃이 피어나는 듯한 격렬한 장면을 생생히 표현해냈다. 비장한 악상과 목가적인 악상을 오가는 구간에서는 청중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분위기 전환을 이루면서 감정의 폭을 키워냈다.
2악장에선 응집력 있는 현의 음향과 목관의 또렷한 색채, 포근한 호른의 울림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충분한 양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 가드너의 명료한 지시에 따라 각 악기군은 제한된 음량과 정제된 음색으로 후경에 빠져있다가도 금세 투쟁적인 음색과 거대한 음량으로 전경에 달려 나오면서 풍부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마치 거대한 음의 물결이 파도치는 듯한 순간이었다. 각 선율이 켜켜이 층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소리와 악상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며 이뤄내는 광대한 에너지는 숨이 가빠지는 듯한 극한의 긴장감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가드너가 이끈 런던 필하모닉은 1400여석의 콘서트홀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의 거대한 음향으로 잠재력을 드러냈고, 끝까지 좋은 연주를 선보이겠단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할 만한 연주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