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트럼프', 꾸준히 여론조사 1위…11월 결선 1위 진출 가능성
여당 요트게이트·부동층 등 변수…"밀레이는 안된다" 낙선운동 주목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어차피 지난 40년 동안 대선공약을 지킨 대통령도 없으니, 하비에르 밀레이의 공약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도 난 밀레이에게 표를 줄 거다"
오는 22일(현지시간) 실시되는 아르헨티나 대선을 2주 앞두고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8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다니엘(28)은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 성향 대선 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밀레이 후보의 주요 공약인 중앙은행 폐쇄나 달러화의 통화 채택(현지 화폐를 없애고 공식 화폐로 미국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현 헌법을 개헌하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은데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으니 다니엘은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연 124%에 이르는 물가상승률과 사이클처럼 반복되는 경제위기는 구태의연한 기존 정치인에 대한 실망으로 점철됐고, 결국 '새로운 인물'에게 거는 기대감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찻잔 속의 태풍'일 수도 있다는 일부의 관측과 달리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유경제학자 밀레이 후보의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예비선거(PASO)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자유전진당(LLA)의 밀레이 후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맹비난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제공약으로 종교계, 경제계, 예술계 등의 낙선 운동의 표적이 되면서 한때 지지율이 정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등에 업은 밀레이 후보는 이런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여론조사에서 꾸준하게 1위를 차지하면서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

밀레이 후보에 대한 논란은 아르헨티나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외신은 밀레이 후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면서 그의 경제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미국 보수논객 터커 칼슨과 포브스지는 밀레이야말로 아르헨티나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워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대선을 보름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중산층 거주지인 카바지토 지역과 의류 도매 상가가 밀집된 아베야네다 지역에 나가봤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카바지토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60대 루이스 씨는 "경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좌파)여당 후보를 찍을 순 없다"면서 그는 "(중도우파 후보인) 불리치건, (극우 후보인) 밀레이건 분명히 야당이 승리할 거다"라고 확신했다.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시던 손님들도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여당 후보는 아니라는 사람이 많았다.

이처럼 야당 후보 지지세가 우세한 가운데 그중에도 밀레이 후보 지지자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여당 책임론'이 민심에 크게 호감을 사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다가 최근 국가적인 경제위기로 국민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비상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정 축재한 여당 주요 정치인이 모델 애인과 호화 유럽 요트 여행을 간 일명 '요트게이트'의 여파도 적지 않은 듯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대 의류 도매 상가가 형성된 아베야네다 지역의 유권자 반응도 카바지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예비선거에서는 중도우파 불리치 후보를 지지했다는 아나(44)와 실비아(49)도 본선에서는 밀레이 후보에게 표를 줄까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실비아는 자녀들이 밀레이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젊은이들의 의견에 따라 밀레이 후보에게 표를 주려고 한다고 했다.

아나도 "여당 후보만 아니면 된다"라면서 상황을 봐서 밀레이 후보에게 투표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옆에 있던 로미(36)가 "밀레이는 절대 안된다"라면서 "여자들에게 막말하고 실현할 수 있는 공약은 하나도 없지 않으냐"고 적극 말렸다.

그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사 현 경제장관에서 표를 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다니엘(26)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경제 위기가 다 기존의 정치인들 때문인데 마사나 불리치에게 표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무조건 밀레이만이 대안이다"라고 인터뷰에 끼어들었다.

"여당(페론주의 지지 성향의 연합)이나 야당연합(중도우파)이나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고선 경제를 아예 망가트려 버렸다.

수십 년 동안 부정부패에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밀레이가 주장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라고 열변을 토한 다니엘의 주장은 밀레이 지지자들의 '만트라'라고 할 수 있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밀레이는 젊은 층의 폭발적인 지지와 일부 부유층과 서민·극빈층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중 서민·극빈층의 지지는 얼마나 현 경제 상황이 비관적인지, 기존 정치인들에게 낙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밀레이 후보가 공약처럼 달러화를 추진한다면, 현재 124%가 넘는 물가상승률은 '0' 하나를 더 붙인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그의 다른 공약인 국내총생산의 15%에 해당하는 재정 긴축으로 인한 보조금 삭제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합쳐지면 경제가 안정될 때까지 가장 고통을 받는 사회 취약층이 바로 서민·극빈층이기 때문이다.

밀레이 후보를 지지하는 현지 증권사 불마켓이 발표한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밀레이 후보가 결선 없이 본선에서 승리한다면, 선거 후 3일 동안은 굉장히 '가혹'할 것이고, 달러 시세가 반영돼 (페소화의) 대폭적인 평가절하가 이루어질 것이며, 경제가 안정될 때까지 수개월 간 물가상승률은 월 50%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도 밀레이 후보 지지자들은 어차피 누가 대통령이 되든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이어질 거고 밀레이 후보만이 이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다양한 여론 조사에서는 평균적으로 밀레이 후보가 34% 정도로 1위를 달리고, 여당 후보 마사가 29% 그리고 야당연합의 불리치 후보가 24%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오는 22일 대선에서 당선자를 결정하지 못해 결국 오는 11월 1, 2위 후보 간 결선투표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어볼 때까지 여전히 변수는 적지 않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발생한 집권 여당의 요트게이트 스캔들, 외환시장의 불확실성 확대(각종 달러 시세 12% 정도 폭등), 밀레이 후보 소속당 출신들의 인권 관련 발언 논란, 주요 기업인들의 야당연합 불리치 후보 지지까지 대선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정국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선 밀레이 후보가 본선에서 1위로 결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실제 민심의 관심은 밀레이 후보가 결선에서 누구와 붙는지 여부다.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밀레이 후보가 결선에서 누구와 붙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것이다.

밀레이 후보 측은 현재 36∼37%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히며, 결선 없이 본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아르헨티나 여론조사의 적중률이 낮았다는 점, 아르헨티나의 달러 시세만큼 민심의 변동성이 크고, 아직도 부동층이 상당하다는 점 등은 어느 후보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밀레이 후보 측 입장에선 "밀레이 후보는 절대 안 된다"는 낙선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일례로 좌파 여당인 페론당 저격수이며, 중도우파 지지자인 현지 유명 언론인 바비 엣체코파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밀레이는 절대 안 된다"라면서 "여당 마사 후보를 뽑아라"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그는 기존에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에 대한 지지 호소도 접으면서 "밀레이는 미쳤다.

지금 와서 불리치를 뽑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밀레이가 되면 나라가 다 망가진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제 대선 본선까지 불과 2주일, 결선까지 40일 정도를 남겨놓은 상황. 밀레이 후보가 끝까지 돌풍을 일으키며 이변의 주인공이 될지, 낙선운동의 장벽에 막혀 '반짝 흥행'에 그칠지 아르헨티나 민심의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르포] 아르헨 대선 D-14…'극우 돌풍' 밀레이, 이변의 주인공 되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