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스포츠 대표팀 페이커(이상혁 선수). / 사진=연합뉴스
한국 e스포츠 대표팀 페이커(이상혁 선수).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 부문 준결승전. 한국과 중국이 결승행을 두고 격돌한 이 경기에선 다른 종목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일부 중국 관중들이 라이벌인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응원한 것이다. 중국은 이 경기 패배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현지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은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국경의 경계를 넘어 e스포츠 팬들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은 대회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22일 이들이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에 입국했을 땐 100여명의 팬이 마중을 나왔다. 한국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려는 마음에 팬들 간 몸싸움이 있을 정도였다. 로이터통신도 아시안게임에서 주목할 선수 6명을 소개하면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이상혁 선수(게임명 페이커)를 꼽았다. 이 선수를 ‘e스포츠의 마이클 조던’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국가대표팀.  라이엇 게임즈 제공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국가대표팀. 라이엇 게임즈 제공

2026년 일본에서도 e스포츠 열기 재현

이번 아시안게임은 세계적으로 한층 높아진 e스포츠의 위상을 증명하는 대회였다. 이 대회에선 리그 오브 레전드, 스트리트파이터5, FC온라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등을 비롯해 7개 게임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금메달을 놓고 경쟁했다.

한국은 출전한 4개 게임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며 금 2개, 은 1개, 동 1개를 수확하는 성과를 냈다. e스포츠가 양궁, 태권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의 ‘금밭’이 됐다. 나머지 3개 게임은 국내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게임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전 뷰잉파티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항저우 아시안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전 뷰잉파티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이번 e스포츠 종목의 백미는 금메달을 거머쥔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팀이었다. 한국팀은 예선에서 홍콩, 카자흐스탄을 완파한 뒤 8강에서 사우다아라비아를 꺾었다. 준결승에선 시범 종목으로 진행됐던 지난 대회 우승팀인 중국을 이긴 데 이어 결승에선 대만을 물리쳤다. 중국과 대만과의 경기에선 한국팀이 잇따라 불리했던 초반 판세를 뒤엎는 데 성공하면서 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e스포츠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팀이 띄운 e스포츠의 인기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e스포츠의 인기는 티켓 가격으로도 증명됐다. 스포츠업계에 따르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 경기의 티켓 가격은 400위안대(약 7만4000원)에서 형성됐다. 대다수 종목의 티켓 가격이 50~100위안에서 머물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티켓 판매도 다른 종목 경기와는 다르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이뤄졌다. 수영 종목에 참여한 백인철 선수가 기자회견장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e스포츠 대한 다른 종목 선수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출시 12년 지났는데 PC방 점유율 1위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11년 한국 출시 이후 e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최고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으로 꼽힌다. PC방 분석 서비스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PC방 점유율은 지난 4일 기준 40.46%였다. 2위인 FC온라인의 점유율(10.81%)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억명 이상. 지난해 세계대회 결승전의 동시 시청자 수는 500만명을 넘겼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올해 열린 국내 대회의 전 세계 분당 평균 시청자 수는 지난해 대회보다 22% 늘었다.
한국 금메달에 중국팬 환호…국경 없는 '리그 오브 레전드'
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데에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협업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선 5명이 한 팀을 이뤄 다른 팀과 맞붙는다. 상대 팀의 본진을 먼저 파괴하는 쪽이 이긴다. 선수들은 농구의 가드, 센터처럼 각각의 위치를 소화한다. 이들이 고를 수 있는 캐릭터의 수가 지난달 기준 165개나 되다 보니 캐릭터 조합이 다양할 뿐 아니라 쓸 수 있는 전략도 무궁무진하다. 이 게임이 10년 넘게 최강의 자리를 지킨 이유다.

대회 운영 경험 10년 쌓인 라이엇도 ‘지원 사격’

이 게임 개발·유통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한국에서 10년 넘게 프로리그를 운영했다는 점도 e스포츠의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게임사는 직접 나서 2018년 서울 종로구에 대회 진행이 가능한 시설인 ‘롤파크’를 개소했다. 400명의 팬이 현장 관람을 할 수 있는 규모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대표팀 팬미팅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대표팀 팬미팅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라이엇 게임즈는 아시안게임에서 게이머들의 한국팀 응원을 독려하기 위해 ‘워리어즈’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었다. 이 브랜드를 통해 한국팀에 소속된 선수 6인과 이들을 격려하는 팬들을 ‘승리를 향해 도전을 이어가는 전사’로 표현했다. 워리어즈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450만회를 넘겼다. 우리금융그룹 초청으로 지난달 11일 열린 국가대표 평가전에 앞서 진행된 팬미팅 행사에는 온라인 시청자 4만여명이 몰렸다. 게임 콘텐츠와 연계한 응원 이벤트인 ‘워리어즈의 한타’와 ‘우리의 한타’ 이벤트에도 게이머 약 100만명이 참여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대표팀 팬미팅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대표팀 팬미팅 현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게임업계에선 e스포츠의 응원 문화가 참여와 소통을 강조하는 MZ세대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팬들이 직접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온라인, 오프라인을 망라해 형성됐다는 점이 젊은 층의 적극적인 e스포츠 참여를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는 “팬들이 더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격려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젊은 층에 맞는 새로운 응원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