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패권의 격전지 '양자 기술'…한국도 본격 참전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아토초(100경분의 1초) 수준의 ‘찰나의 빛’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한 세 명의 물리학자가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전자의 세계를 탐사할 새로운 도구”라며 해당 연구의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양자역학에서 파생되는 ‘양자기술’은 미래 국가 기술 패권의 격전지다. 미국은 최근 자국 기업이나 펀드가 양자컴퓨터 분야의 일부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켄지에 따르면 20년간 미국이 양자기술에 투자한 금액만 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양자(quantum)라는 이름은 빛 에너지양(quantity)에서 유래했다. 양자는 ‘중첩’과 ‘얽힘’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양자기술의 핵심이다.

중첩은 어떤 두 가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가 움직이는 미시세계에서는 파동이면서 입자이고, 0이면서 1이고, 파란색이면서 노란색인 상태가 가능하다.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죽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이 이 중첩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얽힘은 두 개의 양자가 거리에 상관없이 연결되는 현상이다. 0과 1이 중첩된 두 개의 양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하나의 값이 1이 되면 나머지 하나의 값은 자동으로 결정된다. 수십광년 떨어진 우주에서도 얽힘을 활용하면 양자의 상태를 바로 알 수 있다. 마치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정보가 전달되는 것처럼 보인다.

중첩과 얽힘을 이용하면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중첩상태를 활용한 큐빗(Qubit)을 사용한다. 기존 컴퓨터의 비트(Bit) 역할이다. 큐빗은 0과 1이 동시에 구현할 수 있어 큐빗이 늘어날수록 연산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현재 기술로 양자의 중첩과 얽힘을 제대로 제어해서 컴퓨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암호 분야에서 획기적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은행, 모바일 등의 대다수의 암호체계는 소인수분해를 활용해 구현된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소인수분해 영역에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양자컴퓨터는 분자구조를 예측하고 신약 물질 탐색하는 데 뛰어나다. 우주, 금융, 물류 영역에서도 기술적 진보가 기대되고 있다. 도·감청이 원천 차단되는 양자통신과 기존 센서보다 측정영역과 민감도가 크게 개선되는 양자 센싱도 상용화가 진행 중이다.

기업 중 가장 앞서나가는 곳은 IBM이다. 지난해 433큐빗의 프로세서를 갖춘 양자컴퓨터 ‘오스프리’를 내놨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도 양자기술 확보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27년까지 50큐빗급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삼성도 기술 확보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의 약진도 눈에 띈다.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설립한 회사로 잘 알려진 아이온큐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최초의 양자컴퓨터 기업이다. 상온에서 사용이 가능한 ‘이온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로 기술적 차별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6월엔 큐노바가 벤처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양자 보안 업체인 ICTK는 양자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양자내성암호(PQC)를 개발하고 있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