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사살한 간첩에 기도해주다 끌려간 경험… 52년만에 소설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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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홍신은 530만부가 넘게 팔린 소설 <인간시장>으로 대한민국 첫번째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국회의원으로 '여의도 생활'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글 쓰는데 보냈다. 1976년 등단 이후 47년간 130편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반세기 동안 펜을 잡아왔지만 연인이 닿지 않았던 작품이 있었다. 1971년 군복무 중에 구상했던 소설이다. 김 작가는 52년 만에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갖고 "소설의 모티프가 된 건 제가 강원도 철원군 육군 6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1971년 7월 1일 새벽 0시 25분에 직접 겪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7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새 소설은 애도와 용서에 대한 작품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다. 육군 소위 한서진은 남한에 침투했다가 사살된 북한군 장교의 시신 옆에 나무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빨갱이'로 몰려 형무소에 수감된다. 고문을 겪은 뒤 복수만을 생각하던 그가 용서를 다짐하는 과정을 소설은 주목했다.
김 작가는 "철책선에서 대간첩 작전을 벌인 것, 적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한 것,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보안대 조사를 받은 것까지가 제가 겪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픽션"이라고 했다. 당시 사건은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당일 새벽에 벌어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막지 못했다면 엄청난 사건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래 전에 구상했음에도 발표하지 못한 건 군사 독재 시절이 너무 길었고,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작가가 계산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상상력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설을 쓰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이자 북한군 여성 간부였던 전수예 씨, 군법무관 출신 김양홍 변호사 등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 1970년대 남북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이데올로기 문제, 좌우 갈등이 너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사회에선 애도할 일이 너무 자주, 많이 생긴다"며 "용서와 진심이 애도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그의 책상에는 직접 쓴 이런 문구가 오래 전부터 붙어있다. "사랑과 용서로 쓴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이 세상에 용서가 없다면 인류는 생존할 방법이 없어요. 누구나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지 않습니까. 용서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저도 살면서 용서받고 싶은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어요. 제가 용서 받고 싶으니 남을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소설은 올해 등단 47주년을 맞은 김 작가의 138번째 작품이다. 김 작가는 "3년 뒤가 등단 50주년이니까 그때까지 더 열심히 소설을 써서 140권을 넘겨야겠다"며 "지금도 소설 쓰는 준비로 계속 메모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그는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갖고 "소설의 모티프가 된 건 제가 강원도 철원군 육군 6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1971년 7월 1일 새벽 0시 25분에 직접 겪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7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새 소설은 애도와 용서에 대한 작품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다. 육군 소위 한서진은 남한에 침투했다가 사살된 북한군 장교의 시신 옆에 나무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빨갱이'로 몰려 형무소에 수감된다. 고문을 겪은 뒤 복수만을 생각하던 그가 용서를 다짐하는 과정을 소설은 주목했다.
김 작가는 "철책선에서 대간첩 작전을 벌인 것, 적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한 것,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보안대 조사를 받은 것까지가 제가 겪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픽션"이라고 했다. 당시 사건은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당일 새벽에 벌어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막지 못했다면 엄청난 사건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래 전에 구상했음에도 발표하지 못한 건 군사 독재 시절이 너무 길었고,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작가가 계산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상상력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설을 쓰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이자 북한군 여성 간부였던 전수예 씨, 군법무관 출신 김양홍 변호사 등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 1970년대 남북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이데올로기 문제, 좌우 갈등이 너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사회에선 애도할 일이 너무 자주, 많이 생긴다"며 "용서와 진심이 애도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그의 책상에는 직접 쓴 이런 문구가 오래 전부터 붙어있다. "사랑과 용서로 쓴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
"이 세상에 용서가 없다면 인류는 생존할 방법이 없어요. 누구나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지 않습니까. 용서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저도 살면서 용서받고 싶은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어요. 제가 용서 받고 싶으니 남을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소설은 올해 등단 47주년을 맞은 김 작가의 138번째 작품이다. 김 작가는 "3년 뒤가 등단 50주년이니까 그때까지 더 열심히 소설을 써서 140권을 넘겨야겠다"며 "지금도 소설 쓰는 준비로 계속 메모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