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지하 ECC '빛의 계곡'이 구현한 확장성과 적절한 폐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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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필자는 요즘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 시간 동안 주로 강의실과 연구실을 오가지만 이 외에도 도서관, 편의점, 식당, 커피전문점, 문구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은행, 우체국, 구두수선소, 사진관을 이용하는 날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캠퍼스를 거닐며 산책도 한다. 머무는 시간이 길다보니 근무지라기보다는 이렇게 일상적 장소로 학교를 이용하고 있다.
학생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학교를 이용한다. 행당산 정상에 위치한 단과대에 최소한의 힘을 들여 오르기 위한 저마다의 루트들이 존재하고, "학교에 그런 것도 있나요?"라고 물어보게 하는 새로운 시설들을 활발하게 사용하며 자신에게 맞추어진 방식으로 학교를 이용한다.
반면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대학 캠퍼스는 관광지와 같다. 학교를 탐방하러 온 고등학생들은 계획된 코스대로 안내를 받으며 대학의 공간들을 경험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캠퍼스에 방문한 사람들 중 다수는 대학의 상징물을 포토존으로 활용한다. 또한 한적한 저녁 즈음이 되면 캠퍼스로 산책을 나오신 것 같은 지역 주민들도 종종 마주친다.
이처럼 대학 캠퍼스는 교육과 연구를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편의, 홍보, 공공성 등의 여러 가지 기능을 이용자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학교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단일한 기능 외에도 다양한 세계가 캠퍼스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ECC (이화 캠퍼스 컴플렉스)가 처음 생겼던 해에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필자는 본 건물을 구경하고서 크게 놀랐었다. 대학 캠퍼스에 이런 건축이 들어설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시설들이 들어와 있다니, 이 두 가지가 그 이유였다.
ECC는 이화여대가 2002년에 세웠던 캠퍼스 개발 계획 하에 캠퍼스의 경관 보존과 공간 확충을 목적으로 당시 운동장이었던 부지에 조성한 공간이다. 공간을 확충하며 기존의 경관을 보존해야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일을 이 건물은 땅 밑으로 공간을 넣어 해결하였다.
학교의 정문에 들어서면 멀리 보이는 본관을 향해 폭 25m, 길이 250m의 긴 내리막길이 펼쳐지는데 이 길의 양 옆에 확충이 필요했던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ECC의 각각의 층은 지하 1층, 지하 2층과 같이 명명되어 이곳이 본래 있던 땅의 지하라는 개념을 명시하고 있다. 이 공간들 위, 즉 지하로 난 길의 양 옆에는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고풍스러운 캠퍼스의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도 현대적인 공간을 구축하였다. 지하로 향하는 긴 길은 빛의 계곡이라고도 불린다. 길의 양쪽 벽은 유리 커튼월과 수직성이 강조되는 금속 부재의 반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빛을 받은 재료들의 반짝임이 긴 길을 걷는 과정에 동행한다. 이는 또한 지하에 들어선 공간의 채광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한다. 이 유리 벽 너머에서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이어가는데, 이러한 개방성은 학생들에게는 답답하지 않은 경관을 확보하게 하고 길을 걷는 외부인들에게는 학습의 경관을 확장하여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길과 공간 사이에 복도가 위치하여 이러한 공간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외부에 오픈되면 안 되는 공간들은 접근을 차단하여 학교의 기능을 방해받지 않게 하였다. 이로써 물리적, 시각적 확장 모두 단계적이고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ECC는 강의실, 열람실, 편의시설, 피트니스 센터, 영화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들어선 복합시설이다. 대학 캠퍼스에 많은 편의시설이 들어온다 해도 학습공간과 이렇게 근접하여 위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영화관 같은 대형 프로그램이 들어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학교에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있다 해도 오래 머물다 보면 고립감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ECC의 이러한 시설들은 학생들에게 학습 너머의 문화적 기회를 확장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학교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보다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될 것이다.
필자가 오랜만에 ECC를 다시 찾은 것은 가을이 시작되려는 화창한 주말, ECC의 지상에 조성되어 본관까지 길게 이어지는 공원의 경관이 유독 기분 좋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캠퍼스가 마치 한 폭의 서양화 같다고 느껴졌던 그 곳에는 ECC가 만든 장소성을 즐기는 사람들, 라운지에서 팀플을 하는 학생들, 스탠드의 불을 밝힌 열람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ECC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장소에 공간을 구축한 방식을 칭송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ECC가 가진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흔히 '상아탑'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는 아름답고 중요한 것, 진리를 찾고 연구하는 대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정 분야나 집단에 고립된 폐쇄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현대의 대학 캠퍼스는 과거에 비해 외부세계와 가까워졌고 그만큼 포용성과 확장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때에 ECC는 대학 캠퍼스가 폐쇄성을 벗고 지역사회 및 다양한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물론 여기에는 캠퍼스가 확보해야 하는 안전성과 교육환경의 보장에 대한 이슈는 남아있다.
반면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대학 캠퍼스는 관광지와 같다. 학교를 탐방하러 온 고등학생들은 계획된 코스대로 안내를 받으며 대학의 공간들을 경험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캠퍼스에 방문한 사람들 중 다수는 대학의 상징물을 포토존으로 활용한다. 또한 한적한 저녁 즈음이 되면 캠퍼스로 산책을 나오신 것 같은 지역 주민들도 종종 마주친다.
이처럼 대학 캠퍼스는 교육과 연구를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편의, 홍보, 공공성 등의 여러 가지 기능을 이용자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학교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단일한 기능 외에도 다양한 세계가 캠퍼스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ECC (이화 캠퍼스 컴플렉스)가 처음 생겼던 해에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필자는 본 건물을 구경하고서 크게 놀랐었다. 대학 캠퍼스에 이런 건축이 들어설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시설들이 들어와 있다니, 이 두 가지가 그 이유였다.
ECC는 이화여대가 2002년에 세웠던 캠퍼스 개발 계획 하에 캠퍼스의 경관 보존과 공간 확충을 목적으로 당시 운동장이었던 부지에 조성한 공간이다. 공간을 확충하며 기존의 경관을 보존해야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일을 이 건물은 땅 밑으로 공간을 넣어 해결하였다.
학교의 정문에 들어서면 멀리 보이는 본관을 향해 폭 25m, 길이 250m의 긴 내리막길이 펼쳐지는데 이 길의 양 옆에 확충이 필요했던 공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ECC의 각각의 층은 지하 1층, 지하 2층과 같이 명명되어 이곳이 본래 있던 땅의 지하라는 개념을 명시하고 있다. 이 공간들 위, 즉 지하로 난 길의 양 옆에는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고풍스러운 캠퍼스의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도 현대적인 공간을 구축하였다. 지하로 향하는 긴 길은 빛의 계곡이라고도 불린다. 길의 양쪽 벽은 유리 커튼월과 수직성이 강조되는 금속 부재의 반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빛을 받은 재료들의 반짝임이 긴 길을 걷는 과정에 동행한다. 이는 또한 지하에 들어선 공간의 채광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한다. 이 유리 벽 너머에서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이어가는데, 이러한 개방성은 학생들에게는 답답하지 않은 경관을 확보하게 하고 길을 걷는 외부인들에게는 학습의 경관을 확장하여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길과 공간 사이에 복도가 위치하여 이러한 공간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외부에 오픈되면 안 되는 공간들은 접근을 차단하여 학교의 기능을 방해받지 않게 하였다. 이로써 물리적, 시각적 확장 모두 단계적이고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ECC는 강의실, 열람실, 편의시설, 피트니스 센터, 영화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들어선 복합시설이다. 대학 캠퍼스에 많은 편의시설이 들어온다 해도 학습공간과 이렇게 근접하여 위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영화관 같은 대형 프로그램이 들어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학교에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있다 해도 오래 머물다 보면 고립감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ECC의 이러한 시설들은 학생들에게 학습 너머의 문화적 기회를 확장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학교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보다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될 것이다.
필자가 오랜만에 ECC를 다시 찾은 것은 가을이 시작되려는 화창한 주말, ECC의 지상에 조성되어 본관까지 길게 이어지는 공원의 경관이 유독 기분 좋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캠퍼스가 마치 한 폭의 서양화 같다고 느껴졌던 그 곳에는 ECC가 만든 장소성을 즐기는 사람들, 라운지에서 팀플을 하는 학생들, 스탠드의 불을 밝힌 열람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ECC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장소에 공간을 구축한 방식을 칭송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ECC가 가진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흔히 '상아탑'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는 아름답고 중요한 것, 진리를 찾고 연구하는 대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정 분야나 집단에 고립된 폐쇄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현대의 대학 캠퍼스는 과거에 비해 외부세계와 가까워졌고 그만큼 포용성과 확장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때에 ECC는 대학 캠퍼스가 폐쇄성을 벗고 지역사회 및 다양한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물론 여기에는 캠퍼스가 확보해야 하는 안전성과 교육환경의 보장에 대한 이슈는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