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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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가르치는 건/언제나 시간……/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교과서에 수록된 시 ‘겨울바다’로 유명한 원로 문인 김남조 시인(사진)이 10일 작고했다. 향년 96세. 이날 한국시인협회 관계자는 “김남조 선생이 숙환으로 낮 12시59분께 성남 보바스기념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사랑과 삶을 따뜻하게 노래해온 고인은 ‘사랑의 시인’으로 불렸다.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51년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마산고교와 이화여고 등에서 국어 교사로 일하다 1954년부터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연합신문을 통해 시 ‘잔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목숨>(1953)을 낸 이후 30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2020년 93세의 나이로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를 출간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고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사랑과 평화, 행복, 윤리의식을 담은 시를 써왔다. 대표작으로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노래한 ‘편지’ 등이 있다. ‘편지’의 이 구절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로 등장해 수험생들 사이에서 감동 문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고 말한 ‘설일’을 비롯해 ‘겨울바다’ ‘가난한 이름에게’ ‘목숨’ 등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송창식의 노래로 잘 알려진 ‘그대 있음에’의 노랫말도 그의 작품이다.

생전에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6년 영랑문학상, 2007년 만해대상, 2017년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남편은 광화문광장에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만든 조각가 김세중 씨로 1986년 별세했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2일. 유족으로는 딸 김정아 씨와 아들 김녕, 김석, 김범 씨 등이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