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 객석 비우고 무대서 관람…"유명세 아닌 음악 즐기길"
21년 3개월간 4천700명 연주자 참여…조성진·임윤찬도 거쳐 간 무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서 연주자와 교감…하우스콘서트 1천회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을 그을 때마다 현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악기 몸통에서 울리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객석으로 넘어왔다.

눈을 지그시 감은 첼리스트가 리드미컬하게 손가락으로 현을 짚자 객석의 누군가는 그 손짓을 따라 리듬을 탔다.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와 몸짓이 모여 모차르트 교향곡 1번의 경쾌한 멜로디가 완성됐다.

지난 10일 하우스콘서트 1천회 특별공연이 열린 롯데콘서트홀의 메인 객석은 마치 공연이 없는 날처럼 텅 비었다.

대신 무대 중앙을 반원 형태로 둘러싼 3단 보조무대에 관객들이 앉을 의자가 놓였다.

원래는 오케스트라 편성 때 연주자들이 자리하는 공간이지만, 이날은 메인 객석이 됐다.

원래의 객석 1열보다도 무대와 가까운 거리다.

롯데콘서트홀 객석은 2천여석이지만, 무대 위 놓인 의자는 100여개뿐이었다.

객석을 오픈한 합창석과 무대 옆쪽의 양 날개석 일부를 포함해도 대형 공연장 객석이라고 하기에는 극도로 소규모였다.

좌석도 자유석으로 구역만 정해져 있었다.

이 생경한 광경에 관객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들뜬 표정으로 함께 온 일행과 원하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날 공연은 2002년 7월 12일 더하우스콘서트의 대표인 박창수 작곡가의 서울 연희동 집에서 처음 열린 하우스콘서트가 21년 3개월간 관객들과 꾸준히 함께해 온 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하우스콘서트의 초창기 공연은 집 바닥에 앉아 연주를 듣는 말 그대로 '마룻바닥' 콘서트였다.

2008년부터는 광장동, 역삼동, 도곡동의 사진 및 녹음 스튜디오로 공간을 옮겼고, 현재는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매주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하우스 콘서트는 연주자와 관객이 무대와 객석이라는 경계 없이 한 공간에서 교감하고, 바닥에 앉은 관객이 소리의 울림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1천회 특별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연주자 바로 앞에 놓인 악보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앉은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연주자들과 긴밀하게 교감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서 연주자와 교감…하우스콘서트 1천회
이날 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박 대표는 "관객과 연주자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면 심리적으로 가까워진다"며 "좋은 공연장에 가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작은 공간에 맞는 소리가 있다.

마루에서 울리는 진동, 그 소리는 귀로만 듣는 소리와는 다르다"라고 하우스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실 하우스콘서트를 이끌어온 박 대표는 '괴짜'로 불린다.

고물가 시대에도 여전히 3만원에 공연 티켓을 팔고, 유명 연주자들 섭외보다는 원석을 발굴하는 데 더 공을 들인다.

재정적으로 파산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가족의 유산을 몽땅 털어 버텨내며 공연을 이어왔다.

그는 주변에서 "너는 왜 자꾸 이상한 짓만 하느냐"는 타박도 듣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요즘 클래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해외에서 인정받은 몇몇 연주자에 팬덤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며 "공연을 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고, 그래야 새로운 연주자를 발견할 기회도 있는데, 이런 게 잘 이뤄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콩쿠르 우승 등 유명세를 따라가는 공연이 아닌, 좋은 소리를 구분하고, 가능성이 무한한 연주자를 알아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공연들이 많아야 한다"며 "하우스콘서트는 이런 문화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해외가 아닌 우리가 자체적으로 좋은 연주를 하는 연주자를 발견하고, 이걸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오른 연주자는 4천700명에 달한다.

지금은 '클래식계 아이돌'이 된 조성진, 임윤찬도 무명 시절 이 무대를 밟았다.

하우스콘서트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천회 공연에도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영재 첼리스트 김정아는 솔리마의 '라멘타치오'를 연주하며 허밍과 현을 튕기는 주법을 뛰어나게 소화했고, 김효영은 하프 연주자 황세희와 퍼커션 김정균과의 협연으로 평소 듣기 어려운 이색적인 생황 연주를 들려줬다.

흥미진진한 현대음악을 들려준 앙상블블랭크를 비롯해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와 피아니스트 문채원, 에라토 앙상블, 아레테 콰르텟, 피아니스트 문지영, 오르가니스트 박준호도 무대에 올랐다.

박 대표는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나와 "하우스콘서트는 2천회, 3천회까지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박 대표는 자신의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실무에서는 빠지고, 기존 공연 스태프가 공연을 이끌어가는 '세대교체'를 한다는 계획이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서 연주자와 교감…하우스콘서트 1천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