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선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 인상에 들어갔다. 부동산 경기 회복 기대로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은 데 따른 조치다.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지만 민간 은행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란 지적도 나온다.

○가계대출 문턱 높아질 듯

시중은행, 하루새 대출금리 0.2%P 올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이날부터 주담대 혼합(고정)·변동금리를 0.1~0.2%포인트 인상했다. 가입 후 5년간 고정금리가 적용된 뒤 6개월 주기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연 4.24~5.64%에서 연 4.34~5.74%로 0.1%포인트 올랐다. 가입 후 6개월 단위로 금리가 바뀌는 변동형 주담대(신규코픽스 기준) 금리도 연 4.24~5.64%에서 연 4.44~5.84%로 0.2%포인트 인상했다.

국민은행은 전셋값 하락 여파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전세자금대출도 고정·변동금리 모두 0.2%포인트 올렸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적정 포트폴리오 유지를 위해 금리 운용 기준을 변경했다”며 사실상 가계대출 수요 축소를 위한 대출금리 인상임을 시사했다. 국민은행은 13일부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만 34세 이하’에게만 내주는 등 대출 문턱도 높이기로 했다.

우리은행 역시 13일부터 주담대 혼합(고정)·변동금리를 0.1~0.2%포인트 올리고,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0.3%포인트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신한·농협은행도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하기로 하고 내부 검토를 벌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의 잇따른 가계대출 금리 인상과 50년 만기 주담대의 연령제한 조치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수요 억제 요구에 대한 호응으로 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은행들의 50년 만기 주담대는 변동금리로 나이 제한이 없고, 다주택자를 포함하는 등 금융상품 상식에 맞지 않다”며 “대출을 늘려서 수익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리 개입 지나치다” 지적도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5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3조4706억원으로 9월 말(682조3294억원)보다 1조1412억원 늘었다. 이달 들어 닷새 만에 전월 가계대출 증가 폭(1조5174억원)에 육박했다. 고금리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금융당국과 5대 은행은 매주 금요일 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동향과 수요 억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특정 은행에 가계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5대 은행 모두 주담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은행이 자발적으로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은행권에선 “정부가 은행 금리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에 영향을 받는 기준금리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빼는 방식(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8월 기준 신규 코픽스는 3.66%로 7월(3.69%)보다 오히려 0.03%포인트 하락했다. 국민은행이 기준금리 대신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주담대 변동금리를 인상한 이유다.

대신 국민은행은 신용대출 금리는 인상하지 않았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주담대와 달리 작년 말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