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요양병원·요양시설 사이에서 방황하는 환자들
요양병원에 입원한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들은 6개월이 지나면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장기요양시설에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살 수 있지만, 간호사가 근무하는 곳이 많지 않고 요양보호사는 인공호흡기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들어갈 생각조차 못 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의료적인 돌봄이 필요한 모든 노인과 가족들이 이런 방황을 경험하고 있다.

요양병원과 장기요양시설의 역할 문제는 하루 이틀 이어진 게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 재정립이 국정과제였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법 개정을 회피하고 변방의 제도 개선만 추진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때도 그랬다. ‘커뮤니티 케어’란 이름으로 현장 실무자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추진했다.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바다에 사는 고래와 산에 사는 곰을 결혼시키겠다고 결혼정보회사를 차린 격이다.

현 정부의 접근도 비슷하다. 노인 의료-돌봄 연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의료’를 넣고 ‘지방자치단체 중심’이라고 포장했지만 지난 정부 사업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국가 중심의 단일 거버넌스로 운영하는 국가에서는 지자체가 서비스 연계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사회보험 제도 인프라를 개선한 뒤에야 비로소 지자체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사회보험의 조합주의를 유지하면서 지역 거버넌스를 활용하고 있는 일본 독일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서비스는 장기요양시설에서 24시간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택의료나 방문간호 활성화는 그다음 과제다. 집에서는 24시간 간호가 어렵다.

문제는 의료제도와 노인장기요양제도 간의 이기적인 장벽이다. 현재 노인 장기요양시설은 의료시설이 아니므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24시간 단순 간호(간병이 아닌 의료행위)가 필요한 환자도 모두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주요국들은 너싱홈(nursing home)이란 기관이 있어 간호 중심의 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의사가 근무하기도 한다. 의료시설로 구분하기도 하고 장기요양시설로 구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의료시설로 구분하려면 의료법에 간호요양센터를 신설하고 재정은 건강보험이 지출해야 한다. 장기요양시설로 구분하려면 노인복지법에 노인간호요양시설을 신설하고 재정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지출해야 한다.

어디에 두던지 너싱홈은 누가 개설해야 할까? 이 문제가 숨겨진 갈등의 본질이다. 너싱홈이 의료기관이라면 의사(치과의사, 한의사 포함) 등도 개설할 수 있어야 하고, 노인장기요양시설이라면 사회복지사 등도 개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간호사만 개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사회 법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야 개설권을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회 법체계와 정부 행정이 선진화된 지금도 행위의 독점권을 가진 전문가에게 개설 독점권까지 허용하는 것은 지나치다.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본질을 회피하고 변방의 제도 개선만 반복해서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 초고령사회의 위기는 크고 심각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통합케어(integrated care) 보장위원회’를 설립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의료와 돌봄을 넘어 ‘보건의료복지장기요양고용교육’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강력한 거버넌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계의 반발로 미뤄져 오던 제네릭 약가 인하는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다. 약계에 정치적 빚이 없는 정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석열 정부에 요양 법체계 개선을 기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