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관 회장 "화려하진 않지만 없어선 안 될 '소재' 같은 5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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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 50년 회고록 낸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1973년 제일합섬 엔지니어 입사
20년간 CEO…소재산업 이끌어
"주인정신과 인내·화합의 힘 믿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1973년 제일합섬 엔지니어 입사
20년간 CEO…소재산업 이끌어
"주인정신과 인내·화합의 힘 믿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주인 정신과 인내, 화합, 변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직장에서 50년을 근무한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2013년엔 회장에도 올랐다.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이야기다. 이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동 FKI타워에서 ‘근속 50주년 및 회고록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소재가 경쟁력이다>(사진) 출간 기념회엔 사내외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새 50년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1947년 대전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홍익대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3년 10월 제일합섬에 입사해 상무까지 올랐다. 새한으로 이름이 바뀐 회사에선 부사장, 도레이새한으로 다시 변경한 뒤 1999년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도레이첨단소재로 바뀐 뒤에도 계속 CEO를 맡았다.
그는 스스로 “회장보다 CEO라는 호칭을, 현장에서는 직급보다 형님으로 불리기 좋아한다”고 했다.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 출발해 한 직장에서 50년간 화학 소재를 연구하고 기업을 경영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그가 CEO를 맡으면서 탄소섬유, 2차전지 분리막, 부직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320억원 적자 상태에서 그가 사장에 오른 뒤 도레이첨단소재는 23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일본 도레이도 인정해 경영을 간섭하지 않는 해외 자회사로 자리 잡았다. 일본 도레이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서 그가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오랜 세월 어떻게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그 질문에 다섯 가지로 정리해 답했다. 첫째는 주인 정신이다. 그는 “누가 시켜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일이 곧 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화와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일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비결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인간관계에 관한 얘기였다. 그는 인내의 힘과 화합의 힘, 그리고 역지사지를 꼽았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늘 듣던 ‘인일시지념면백일지우(忍一時之念免百日之憂: 한순간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란 말을 떠올리고 산다”며 “분하고 화날 때도 꾹 참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적을 만들지 않은 것이 내가 50년 사회생활을 해오는 동안 큰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50년간 해온 일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나는 ‘소재’처럼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해 왔다”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한 직장에서 50년을 근무한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2013년엔 회장에도 올랐다.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 이야기다. 이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동 FKI타워에서 ‘근속 50주년 및 회고록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소재가 경쟁력이다>(사진) 출간 기념회엔 사내외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새 50년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1947년 대전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홍익대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3년 10월 제일합섬에 입사해 상무까지 올랐다. 새한으로 이름이 바뀐 회사에선 부사장, 도레이새한으로 다시 변경한 뒤 1999년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도레이첨단소재로 바뀐 뒤에도 계속 CEO를 맡았다.
그는 스스로 “회장보다 CEO라는 호칭을, 현장에서는 직급보다 형님으로 불리기 좋아한다”고 했다.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 출발해 한 직장에서 50년간 화학 소재를 연구하고 기업을 경영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그가 CEO를 맡으면서 탄소섬유, 2차전지 분리막, 부직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320억원 적자 상태에서 그가 사장에 오른 뒤 도레이첨단소재는 23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일본 도레이도 인정해 경영을 간섭하지 않는 해외 자회사로 자리 잡았다. 일본 도레이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서 그가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오랜 세월 어떻게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그 질문에 다섯 가지로 정리해 답했다. 첫째는 주인 정신이다. 그는 “누가 시켜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일이 곧 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화와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일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비결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인간관계에 관한 얘기였다. 그는 인내의 힘과 화합의 힘, 그리고 역지사지를 꼽았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늘 듣던 ‘인일시지념면백일지우(忍一時之念免百日之憂: 한순간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란 말을 떠올리고 산다”며 “분하고 화날 때도 꾹 참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적을 만들지 않은 것이 내가 50년 사회생활을 해오는 동안 큰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50년간 해온 일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나는 ‘소재’처럼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해 왔다”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