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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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휴대전화에 쓰이는 방수용 점착제 제조방법을 빼돌려 다른 부품업체들에 넘긴 협력업체 직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영업기밀을 받아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려한 부품업체들과 임직원들도 배상 명령을 받았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민사1부(유아람 부장판사)는 삼성전자의 2차 협력업체인 코스모텍이 전 직원인 A씨, A씨로부터 제품 제조방법을 넘겨받은 B사와 C사 등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와 B사 측이 1억8000만원, A씨와 C사 측이 2000만원을 공동으로 코스모텍에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코스모텍은 휴대전화용 방수기재 제조에 쓰이는 점착제를 만들어 삼성전자의 협력업체인 앤디포스와 애니원 등에 납품하고 있다. A씨는 코스모텍 생산부 사원으로 일하던 2015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점착제 제조에 쓰이는 원료와 생산방식 등이 적힌 ‘원료 계량 및 제조지시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보관했다. 그 후 2016년 9월 C사로 이직해 휴대전화용 방수점착제 개발업무에 참여했다. 그는 석달 후엔 B사로 옮겨 똑같은 일을 맡았다.

B사와 C사는 A씨가 넘겨준 제조방법을 참고해 코스모텍과 비슷한 수준의 점착제를 개발했다. 두 회사는 2017년 2월 이렇게 만든 시제품을 앤디포스에 보여주면서 납품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코스모텍은 곧바로 앤디포스로부터 해당 시제품을 받아 자사의 제조법을 베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적외선 등을 활용한 화합물 분석에서 B사와 C사의 시제품이 코스모텍과 약 99% 일치한다는 결과 나왔다.

이에 코스모텍은 영업비밀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사는 “해당 점착제는 2008~2016년 연구개발에 매년 3억~7억원을 투입해 개발했다”며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제품으로 제조방법 역시 중요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다. 피고들은 “제조방법은 공개특허로 이미 공지된 것이며 코스모텍이 비밀로 유지·관리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코스모텍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가 획득한 제조방법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료와 원료별 용량, 구체적인 제조공정 방식 등이 상세히 적혀있어 그 자체로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며 “경쟁업체나 후발업체가 이 제조방법을 취득하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 시간적·경제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과거 ‘기밀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비밀유지협약서에 서명한 것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들의 “공개특허인 제조방법을 참고해 문제 없다”는 주장을 두고는 “공개특허에는 접착제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가 다양하게 나열돼 있고, 원료별 용량도 상당히 넓은 범위로 적혀있을 뿐”이라며 “나열된 원료 중 특정한 원료 몇 개를 선택해 각 특허에 적힌 용량 범위로 조합해 만들 수 있는 제품은 무수히 많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피고들은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2019년 11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 중 C사를 제외한 나머지가 항소해 2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현재 대법원 심리 하에 검찰과 법리 다툼을 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