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밤리단길'을 밝히는 위트 넘치는 음악카페
이 공간을 채우는 것들에는 대체로 위트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얇은 나뭇조각을 접착해 만든 파티클보드(OSB 합판)로 발판을 만든 바가 눈에 띈다. 알루미늄 타공판으로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는 다시 어두운 나무 색상의 두꺼운 합판을 상판 올려 바를 완성했다. 주방 쪽 벽은 바의 발판과 같은 소재인 파티클보드를 활용해 투박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시선을 돌리면 스탠드 조명이 빛을 비추는 디제잉 스탠드가 보인다. 바와 같은 형식으로 만든 거치대 위에 턴테이블이 있고, 파스텔톤의 색을 입힌 석고보드는 목제 수납함을 품고 벽을 이룬다. 이 수납함은 각각 12장의 LP와 한 쌍의 JBL스피커를 빈틈없이 감쌀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졌다.

좌석은 가죽을 덧댄 시트가 얹어진 철제 의자가, 그 옆에는 파스텔톤의 철제 수납함이 보인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시멘트벽과 대조를 이뤄 창가에는 각기 다른 파스텔톤의 알루미늄 블라인드가 걸려있다. 천장에 달린 유리 소재의 조명은 따뜻한 불빛을 품고 바와 좌석을 비춘다. 이제 커피를 주문해야겠다 생각하니 메뉴를 보니 기름종이 위에 글씨가 인쇄돼 있다.

벽에는 귀엽게 일그러진 머그잔이 쌓여있는 모습과, 이곳의 대표 메뉴인 푸딩이 그려진 일러스트 포스터가 각각 붙어있다. 목재와 철재, 석고, 유리와 종이 등 다양한 소재들이 한 대 어우러져 있지만, 그 조합은 억지스럽기보다 위트 있게 서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산 '밤리단길'을 밝히는 위트 넘치는 음악카페
위트의 완성은 호스피탈리티와 선곡이다. 유수의 스페셜티커피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은 이곳의 대표 최혁은 능청스럽게 단골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내어준다. SNS에서는 자신의 출근을 ‘워킹 홀리데이’로 표현하기도 하고, 가게 앞을 산책하는 강아지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일기를 쓰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알고 카페에 손님들이 오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음료부터 음악 선곡까지 손님맞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한 달에 한 번 선보이는 선곡 리스트는 다양한 소재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처럼, 팝과 가요, 디스코와 재즈, 전자음악이 위화감 없이 섞여 있다.

카페를 나와 동네를 거닐어 보니 이곳만의 문화가 있다. 계획된 동선에 따라 조명을 받는 유명 브랜드의 간판이 늘어선 쇼핑몰을 거닐던 사람들은, 종종 낮은 고도의 주택가 사이에 불규칙적으로 자리잡은 상가들을 찾는다. 1층에 상가를 둔 저층 주택이 군집해 있는 지역에 으레 붙는 별칭처럼, 이곳 밤가시마을의 상가 구역도 ‘밤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어우러진 곳은 대체로 쉴 틈 없이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

낮은 건물 사이로 햇빛이 고루 물드는 아침이면, 일터로 나간 주민들 때문에 주거 공간은 고요해진다. 하지만 곧이어 문을 연 상가들에 다시 지역 주민들과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이 자리를 채운다. 가로등 불빛이 어스름히 거리를 비추면 문을 닫은 상가 위의 창문들엔 어김없이 불이 들어온다. 대단지 아파트는 빗장을 걸고, 주택가에선 방범창을 덧댄 유리창이 외부인의 유입을 통제한다. 상가만이 가득한 도심에 밤이 찾아오면 불이 꺼진 간판만큼이나 거리는 쓸쓸해진다. 하지만 상가와 주거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밤리단길에는 좀처럼 따뜻함이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일산 '밤리단길'을 밝히는 위트 넘치는 음악카페
<한국 주택 유전자>에서 박철수는 ‘1970년이 되어도 우리나라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7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뜰이 없는 집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장독대도 없는, 햇볕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이웃들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지낼 수 없는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대단지 아파트는 서구에서도 도시문제가 발생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니, 그곳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지금 우리의 주거 문화는 그리 오래된 역사를 가지지 않은 어설픈 이상향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빗장을 친 대단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우연한 조우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리단길’을 찾는다. 서로가 빗장을 높일수록 신뢰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담장이 낮아지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는 30년이 지난 일산 신도시는 계획대로 낮은 인구 밀도와 넓고 푸르른 공원을 유지하며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그 중심지에 있는 밤가시마을 밤리단길도, 이곳에 둥지를 튼 위트앤컬처도 일상의 우연한 발견을 기대하는 사람들과 그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서로에게 빗장을 친 커뮤니티에서 훈훈한 이야기는 금방 식어간다. 애처롭게도 누군가의 흉을 보거나 자극적인 소식만이 발없이 빠르게 전파된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온화하게 만들 위트가 더욱이 소중한 시절이다. 어린 시절을 일산에서 보냈다는 최대표는 ‘이곳에서 성공하면 서울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가 산책하는 강아지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모습과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며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음반을 올려놓는 모습을, 주거와 상업 공간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밤가시마을과 우연한 발견이 주는 기쁨을 찾아 낯선 골목으로 향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그의 말은 곧 위트가 된다. 공간을 가득 채운 유머와 또 이 공간이 만들어 낸 문화는 오래도록 밤가시마을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종종 오래된 카페에서 내린 뿌리가 그 지역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뿌리가 서로를 엮는 깊은 신뢰가 되는 것처럼.
일산 '밤리단길'을 밝히는 위트 넘치는 음악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