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보기관도 '이집트 경고설'에 힘 실어…정보전 실패 배경 추측 분분
"'첨단기술로 공격 완전차단' 오만과 내부 갈등이 재난 초래"
[이·팔 전쟁] 이스라엘, 이집트 '큰 것 한 방' 사전경고 무시했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가운데 이집트가 하마스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이스라엘에 알렸다는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혀 오던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이 이처럼 정보전에 실패한 배경을 놓고 갖가지 관측이 제기된다.

1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은 이날 정보당국으로부터 이스라엘 사태 관련 비공개 브리핑을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이집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사태 사흘 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매콜 위원장은 "비밀로 분류된 정보에 너무 깊이 들어가길 원치 않지만, 경고는 있었다"며 "어느 급에서 이뤄졌는지가 의문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9일 AP통신도 익명의 이집트 정보기관 관리가 "우리는 '큰 것 한 방'(something big)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이스라엘 정부에 경고했으나 그들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만 집중하고 가자지구 위협은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의 보도에 이스라엘 총리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집트에서 사전에 메시지를 받았다는 보도는 새빨간 거짓이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매콜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미 정보당국이 사실상 '이집트 사전 경고설'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여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했는지 여부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이집트가 사전 경고했다는 보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시리아의 기습 침공에 무방비로 당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사례의 재연이라고 평가했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공군력에 대항할 수단을 갖추기 전에는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어서 이와 맞지 않는 정보들이 평가절하됐다.

심지어 당시 후세인 1세 요르단 국왕이 전쟁 전에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이 대비에 실패했다는 점도 이번과 비슷한 점으로 꼽힌다.

1천명 이상의 무장대원과 2천기 이상 로켓을 동원한 이번 하마스 공격의 대대적인 규모를 고려하면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어느 정도의 정보 조각들을 포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973년처럼 이번에도 이스라엘 내부의 강한 선입견으로 인해 이에 맞지 않는 사전 경고가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이 매체는 관측했다.

그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강력한 장벽으로 둘러싸 하마스의 공격을 차단함에 따라 하마스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장벽 안에서 가자지구 통치에 만족하고 있다는 통념이 이스라엘에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이스라엘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계속 강화해왔다.

35억 셰켈(약 1조3천억원)을 들여 2021년에 건설한 최신 장벽은 높이 6m 이상의 지상 장벽에 더해 지하 장벽까지 갖추고 있으며, 수많은 감시용 카메라·레이더·센서를 통해 지상과 지하를 통한 하마스의 침입을 차단하는 최첨단 '스마트 장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하마스의 로켓 공격 등을 막는 철통 방공망 '아이언 돔' 시스템까지 갖추면서 이스라엘의 압도적 기술적 우위로 인해 하마스가 최소한의 피해 이상을 입힐 수 없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됐다.
[이·팔 전쟁] 이스라엘, 이집트 '큰 것 한 방' 사전경고 무시했나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치권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으며 하마스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한 주기적인 '잔디 깎기'식 군사작전이면 충분한 것으로 확신하게 됐다고 포린폴리시는 지적했다.

여기에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정이 올해 사법부 권한 축소 입법을 밀어붙이면서 이스라엘 군·정보당국과 불신이 쌓인 점도 정보 실패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과 정보기관 수장들은 사법부 개편 강행 등 국내 갈등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엄중 경고했으나, 연정 측은 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군·정보기관들이 야당 측 편을 들고 있다는 비난까지 가했다.

이처럼 주의를 산만하게 한 요인들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이번 정보전 실패라는 재난을 초래했다고 포린폴리시는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