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로 꼽히는 이탈리아에서 원자력발전을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1일(현지시간) 현지 안사통신에 따르면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이날 로마에서 열린 원자력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며 친원전 기조를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가 원전에 다시 투자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밀라노에서 첫 원전이 건설되기를 바란다”며 “내년 착공할 경우 2032년 무렵에 원전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에너지 수급 위기를 겪었다. 작년 이탈리아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1000억유로(약 142조원)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전기요금 고지서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전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커진 것이다.

살비니 부총리가 원전 재도입을 주장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탈리아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을 보유한 국가였지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진 뒤 당시 운영 중이던 원전 4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탈원전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국민투표를 거친 끝에 1990년 마지막 원자로를 폐쇄했다.

2008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원전 재도입을 들고나오면서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잇따랐지만 2011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94% 이상이 반대표를 던져 무산됐다. 안사 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를 통해 원전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감지됐다. 신규 원전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49∼55% 정도로 나오고 있어서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국가 플랫폼’을 발족하고 원전으로 복귀할 수 있는 로드맵을 7개월 이내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 인사 가운데 원전 재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살비니 부총리는 탈원전 정책 폐기 여부를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