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고 도박에 빠진 '26살 청년백수'…세계 1위 기업 키웠다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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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인물전> ① 이병철 창업회장 1화
경남 의령군 출신…日 와세다대 중퇴
26세 삼남매 아버지…도박에 빠져 방황
1937년 중·일 전쟁에…첫 사업 실패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재기…삼성의 모태
경남 의령군 출신…日 와세다대 중퇴
26세 삼남매 아버지…도박에 빠져 방황
1937년 중·일 전쟁에…첫 사업 실패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재기…삼성의 모태
![호암 이병철 청년 시절 (오른쪽)](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77302.1.jpg)
1926년. 당시 19세인 박두을 여사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과 결혼했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박 여사는 연하남인 17세 이 회장에 대한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경남 의령 '천석지기 가문' 출신인 이 회장을 향한 기대가 컸던 탓이다. 박 여사의 평가는 박씨 문중에서 구전으로 전해진다. 박 여사는 평생 이병철 회장을 내조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일구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K기업가정신 시리즈] 경남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에 위치한 호암 이병철 생가. /최혁 기자](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77267.1.jpg)
그때부터 방황의 시절이 시작됐다. 복귀한 직후 2년 동안 서울에 머물며 사업 기회를 찾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의령으로 복귀한 뒤 동네 친구들과 골패를 비롯한 도박에 빠져 지냈다.
1936년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안방을 둘러봤다. 박두을 여사와 세 남매가 잠자리에 든 모습에 깊은 상념에 빠졌다. 당시 잠자리에 든 세 남매는 장녀인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장남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었다.
![1938년 대구 삼성상회.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세운 무역회사로 삼성그룹의 모태가 됐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77325.1.jpg)
이 회장은 정미업으로 번 현금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다. 경남 김해의 논·밭을 사들이기 위해 옛 조선식산은행에서 상당한 차입금을 조달했다. 661만㎡(200만평) 규모의 부지를 사들였다. 기세를 몰아 부산, 대구에 땅도 사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사업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중국의 만주국을 수립하고 화북지역을 장악한 일본이 그해 7월 중국을 침공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서막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땅값은 폭락했다. 여기에 일본은 비상조치를 선언하고 당시 조선의 모든 은행의 대출을 막았다. 차입금으로 땅을 사들인 이병철 회장은 도래하는 대출금을 막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사들인 땅을 전부 헐값에 매각하고 큰 손실을 봤다. 그의 나이 27세에 겪은 첫 사업 실패다.
이 회장은 사업을 모두 청산하고 서울 대구 평양 등 전국을 돌아다닌다. 이 과정에서 무역업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는다. 과일과 건어물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주변 지역의 과일을 수집하기 좋은 대구 수성구에 200평 남짓한 점포를 마련했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의 시작이었다. 삼성상회는 매출이 급증하면서 이익을 냈고, 조선양조를 인수하며 사세를 불렸다. 삼성상회로 재기한 이 회장은 곧 위기를 맞는다.
→2화에서 계속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