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한 '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 1656년. 벨라스케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한 '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 1656년. 벨라스케스
<보고, 쉬고, 간직하다>는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하기 위한 안내서다. 1990년부터 33년째 이곳에서 일한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이 그간의 경험을 이야기하듯 풀어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박물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과정부터 무대 뒤편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이들의 고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을 모았다.

소장한 유물의 수만큼 관람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150만점, 상설 전시 유물만 1만점이 넘는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국보급 문화유산' 위주로 눈도장을 찍어도 좋다. 안내자료를 꼼꼼히 읽거나 음성 설명을 따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고, 쉬고, 간직하다> (이현주 지음, 아트레이크)
<보고, 쉬고, 간직하다> (이현주 지음, 아트레이크)
저자는 보다 깊이 있게 전시를 즐기고 싶은 관람객들한테 디자인과 조명 등 주변 환경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장 곳곳에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갑옷 공간에는 신성로마제국 궁정악장 필리프 드몽테의 미사곡이 울려 퍼졌다. 루벤스의 작품은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간은 하이든의 교향곡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어떤 전시장엔 향기가 감돌기도 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은 기획 단계에서 '손님을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기(茶器)가 놓인 응접실 공간엔 은은한 차 향기를 내보냈다.
합스부르크 전시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2023.3.15. 김범준 기자
합스부르크 전시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2023.3.15. 김범준 기자
책은 박물관이 소장품을 간직하기까지 힘을 보탠 이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외규장각 의궤를 국내로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한 고(故) 박병선 박사, 평생 수집한 문화재를 선뜻 기증한 고 이홍근 선생, 2만여점의 컬렉션을 기증한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이다.

단지 '보고 간직하는' 데서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책의 제목처럼 '쉬는' 공간이다. 10월 말이면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단풍이 한창이다. 저자는 그 사이사이 노란 꽃송이를 내민 산국(山菊)을 으뜸으로 꼽았다. 자작나무길, 이팝나무길 등 숨겨진 쉼터를 소개하는 대목은 당장 이번 주말에라도 박물관 나들이를 떠나고 싶게 만든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