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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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 이단비 작가의 [발레 리뷰]
모나코-몬테카를로발레단,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로미오와 줄리엣>
"단 5일간의 사랑, 강렬한 역설의 美를 보여줬다"
모나코-몬테카를로발레단,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로미오와 줄리엣>
"단 5일간의 사랑, 강렬한 역설의 美를 보여줬다"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83330.1.jpg)
그 질문 안에서 우리는 ‘역설’이란 단어를 읽는다. 일상의 감각 안에서는 전혀 연결될 수 없는 지점이 예술 안에서 경이로운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내한한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작 <로미오와 줄리엣>도 온통 아름다운 역설이 가득한 무대였다.
기술이냐 표현이냐, 예술가들의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숙제를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완전한 합일을 통해 풀어낸다. 이 지점에서 역설의 미를 읽어내는 건, 마이요 스스로 “제 작품들은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피력했지만 이런 말이 무색하게 기술적인 역량에서 어느 무용수도 제외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작품의 주변인물로 밀어내지 않고 각자의 감정과 캐릭터를 살려낸 점은 특별했다.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83332.1.jpg)
정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죽음의 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가장 큰 역설이다. 티볼트의 죽음의 순간은 어떤가. 긴박하고 숨 막히는 그 순간의 역동성을 슬로우비디오처럼 연출해서 무거운 침묵으로 이끌어낸다. 관객은 입을 틀어막고 타악기의 강한 타건 안에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맞추게 된다.
이 장면뿐 아니라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영화적 기법을 적용했다. 각각의 장면을 로렌스 신부의 회상과 시각을 통해 이끌어 가는 점은 특히 그렇다. 몬테규가와 캐퓰릿가의 갈등과 다툼,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어긋한 신호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 장면은 로렌스 신부가 통탄과 울음 안에서 과거를 되짚어보는 상황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장면은 한 장의 그림처럼 멈춰 서는데, 그때 고전과 현대의 미를 조화시킨 제롬 카플랑의 의상은 그림 같은 미장센을 완성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83333.1.jpg)
몬테카를로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이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강력한 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안무가들이 자신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면서도 음악만큼은 절대 바꾸지 않는 건 그 음악이 갖는 미적 매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발레음악에 애정이 깊었던 프로코피예프가 이 곡을 작곡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었지만 그 수고로움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이 음악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다. 이 음악에 로렌스 신부의 회상을 ‘움직이는 내레이션’으로 덧입힘으로써 몬테카롤로만의, 마이요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번 무대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연주가 함께 했다. 이 지점에서 언론사가 시대의 문화예술을 이끌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몬테카를로발레단과 합을 맞추는 현장을 관객에게 선사한 것은 신선한 감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몬테규와 캐퓰릿 두 가문이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과연 이 작품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결말이다. 그동안 <로미오와 줄리엣>은 안무가마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마무리를 보여줬다.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83331.1.jpg)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그 자체가 가장 큰 역설이다. 5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은 완전무결의 사랑으로 보이지만 세월의 녹을 먹지 않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죽음까지 불사한 건 단 5일이어서 가능한 사건이란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2막 6장에서 로렌스 신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게 사랑을 절제하라. 긴 사랑이 되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의 단 5일 간의 사랑에 우리가 이토록 오랜 세월 열광하고 곱씹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잃어버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순수했던 감정과 열정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에서 읽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래저래 거부할 수 없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마이요는 춤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 감정과 기억을 상기시키고, 하나로 묶었다.
![죽음조차 아름다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객석까지 지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1.3478333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