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e스포츠·품새가 던진 질문…'스포츠'가 되는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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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은 예술·품새는 수련…신체 단련 없는 e스포츠도 스포츠?
"내게 브레이킹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자 예술을 창조하는 거죠."
일본의 '비걸' 유아사 아미(활동명 Ami)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여자부 은메달리스트다.
아시안게임 '초대' 은메달리스트다.
브레이킹이 이번 항저우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류칭이(671)에게 져 금메달을 놓친 유아사는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브레이킹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예술에 더 가깝다.
'스포츠 종목' 브레이킹의 예술성을 우리나라 대표 비보이 김홍열(Hong10), 김헌우(Wing)도 대회 중 거듭 강조했다.
남자부 은메달리스트이자 '전설의 비보이'로 불리는 김홍열은 결승 직후 "스포츠와 예술이 섞여서 하나가 된 게 브레이킹"이라고 했다.
박성주 국민대 교수에게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
그가 이끄는 국민대 스포츠윤리연구소는 이번 대회에서 정식 종목이 된 브레이킹, e스포츠에 대한 연구를 몇 년간 수행해왔다.
박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 연구소 조사에서 브레이킹 쪽 응답자의 98%가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자신을 아티스트, 댄서로 인식했다.
e스포츠 쪽도 97%가 '게이머'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시안게임·올림픽에 남아 있는 '전통적 스포츠'와 두 종목은 근간이 되는 가치가 조금은 다르다.
박 교수는 "브레이킹은 예술 측면에서 (춤의) 아름다움, 스포츠 측면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본다"며 "예술성이냐, 스포츠답게 기술적 가치냐 어디에 중점을 둘지 논쟁이 뜨겁다.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브레이킹이 스포츠로 인정받는 핵심 요소는 '경쟁 구도'다.
1970년대 힙합의 일부로 태어난 브레이킹의 시원은 '길거리 댄스 배틀'이다.
이같이 동일한 규정에 따라 상대방과 겨루는 제도가 확립돼 있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대회에도 쉽게 이식됐다.
박 교수는 브레이킹이 공유하는 스포츠다운 면모를 두고 "승패를 가리는 경쟁이 있고, 규칙에 따른다.
또 이기려고 다양한 기술·집중력·신체 통제력·지구력·전략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e스포츠도 마찬가지다.
e스포츠를 극히 단순하게 보면, 기계 장치 안에 마련된 가상 세계의 아바타를 손가락으로 조종해 '겨루는' 활동이다.
다만 타 종목과 달리 신체를 연마하는 과정이 없어 스포츠가 아니라는 비판이 잦다.
박 교수는 e스포츠의 '신체적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특성에 주목했다.
바로 광범한 지지층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스포츠의 본질이 '게임'이라는 게 학계의 고전적 주장인데, 이 게임을 공유하고 이에 열광하는 지지층이 주요 전제조건이 된다.
e스포츠는 이런 측면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어느 종목보다도 스포츠다운 면모를 뽐냈다.
입장권이 가장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종목이 e스포츠였다.
400위안(약 7만4천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가격에도 많은 팬이 입장권을 구하려 해 대회 종목 중 유일하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최고 스타도 바로 '페이커' 이상혁이라 할 만했다.
지난달 22일 그가 입국한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은 중국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인기 종목 간판다운 위상을 실감케 했다.
박 교수는 e스포츠를 받아들일지 논쟁에 스포츠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짚었다.
그는 "비디오 게임으로 토너먼트를 조직한다는 개념은 20세기 마지막 시기 산물인데, 현대 스포츠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태어났다"며 "19세기에 뿌리를 둔 관습을 판단하는 틀을 20세기 후반 현상에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스포츠인지를 판단할 주요 기준으로 여겨지는 건 올림픽 종목 여부다.
실제로 브레이킹도 2024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반면 e스포츠는 아직 올림픽 종목은 아니다.
이 기준에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때 달리기·창 던지기 등 종목은 현대 올림픽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전차·보병 경주 등은 그렇지 않다"며 "줄다리기 등 초기 (현대) 올림픽에 있던 종목이 또 지금은 없다.
시대에 따라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까지 스포츠가 아니었던 종목들이 지금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인정받기 위해, 기존 스포츠 관습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박 교수는 브레이킹·e스포츠 등이 탈 없이 스포츠가 되려면 '판'이 커져야 한다고 짚었다.
한 종목으로서 안정적 제도 기반을 갖춰야만 오래 스포츠로 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이 종목들과 관련된 교육·훈련·코칭이 있어야 하고, 연구·개발·전문가 비평도 따라와야 한다.
(선수의) 개인 기록, 통계 자료의 수집·보관 등이 충족돼야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성이 있는 스포츠가 된다"고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금메달리스트 차예은(경희대)은 우리나라에서 품새의 판이 커지길 원한다.
공격·방어의 기본 동작을 모아 둔 '가상의 겨루기' 품새는 유구히 이어져 온 태권도라는 무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동작을 정교하게 연마해 '자기 수련'을 목표로 하는 품새도 브레이킹처럼 승자를 가리는 스포츠의 경쟁적 요소와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런 품새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고, 차예은은 이번 항저우 대회 여자부에 출전해 금메달을 가져왔다.
지난 14일 열린 제104회 전국체전 여대부 경기에서도 우승한 차예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품새는 수련이다.
구체적으로는 내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보완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차예은은 본래 송판을 깨는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약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친 2021년 어머니의 권유로 길을 바꿨고, 결국 품새에 빠져들었다.
처음에 품새가 지루하다는 생각에 거절했다는 차예은은 이제는 독립 종목으로 자리 잡아 계속 '품새인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품새는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 전국체전에서도 정식 종목은 아니다.
시범 종목이다.
당장 국제 대회에서는 안착했으나, 스포츠로 오래 살아남기에는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셈이다.
차예은은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되는 게 최우선이다.
그래야만 실업팀도 늘어난다.
지금은 전국에 몇 없다"며 "나도 선수 경력이 끝나면 지도자로 품새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자 예술을 창조하는 거죠."
일본의 '비걸' 유아사 아미(활동명 Ami)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여자부 은메달리스트다.
아시안게임 '초대' 은메달리스트다.
브레이킹이 이번 항저우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류칭이(671)에게 져 금메달을 놓친 유아사는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브레이킹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예술에 더 가깝다.
'스포츠 종목' 브레이킹의 예술성을 우리나라 대표 비보이 김홍열(Hong10), 김헌우(Wing)도 대회 중 거듭 강조했다.
남자부 은메달리스트이자 '전설의 비보이'로 불리는 김홍열은 결승 직후 "스포츠와 예술이 섞여서 하나가 된 게 브레이킹"이라고 했다.
박성주 국민대 교수에게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
그가 이끄는 국민대 스포츠윤리연구소는 이번 대회에서 정식 종목이 된 브레이킹, e스포츠에 대한 연구를 몇 년간 수행해왔다.
박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 연구소 조사에서 브레이킹 쪽 응답자의 98%가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자신을 아티스트, 댄서로 인식했다.
e스포츠 쪽도 97%가 '게이머'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시안게임·올림픽에 남아 있는 '전통적 스포츠'와 두 종목은 근간이 되는 가치가 조금은 다르다.
박 교수는 "브레이킹은 예술 측면에서 (춤의) 아름다움, 스포츠 측면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본다"며 "예술성이냐, 스포츠답게 기술적 가치냐 어디에 중점을 둘지 논쟁이 뜨겁다.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브레이킹이 스포츠로 인정받는 핵심 요소는 '경쟁 구도'다.
1970년대 힙합의 일부로 태어난 브레이킹의 시원은 '길거리 댄스 배틀'이다.
이같이 동일한 규정에 따라 상대방과 겨루는 제도가 확립돼 있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대회에도 쉽게 이식됐다.
박 교수는 브레이킹이 공유하는 스포츠다운 면모를 두고 "승패를 가리는 경쟁이 있고, 규칙에 따른다.
또 이기려고 다양한 기술·집중력·신체 통제력·지구력·전략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e스포츠도 마찬가지다.
e스포츠를 극히 단순하게 보면, 기계 장치 안에 마련된 가상 세계의 아바타를 손가락으로 조종해 '겨루는' 활동이다.
다만 타 종목과 달리 신체를 연마하는 과정이 없어 스포츠가 아니라는 비판이 잦다.
박 교수는 e스포츠의 '신체적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특성에 주목했다.
바로 광범한 지지층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스포츠의 본질이 '게임'이라는 게 학계의 고전적 주장인데, 이 게임을 공유하고 이에 열광하는 지지층이 주요 전제조건이 된다.
e스포츠는 이런 측면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어느 종목보다도 스포츠다운 면모를 뽐냈다.
입장권이 가장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종목이 e스포츠였다.
400위안(약 7만4천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가격에도 많은 팬이 입장권을 구하려 해 대회 종목 중 유일하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최고 스타도 바로 '페이커' 이상혁이라 할 만했다.
지난달 22일 그가 입국한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은 중국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인기 종목 간판다운 위상을 실감케 했다.
박 교수는 e스포츠를 받아들일지 논쟁에 스포츠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짚었다.
그는 "비디오 게임으로 토너먼트를 조직한다는 개념은 20세기 마지막 시기 산물인데, 현대 스포츠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태어났다"며 "19세기에 뿌리를 둔 관습을 판단하는 틀을 20세기 후반 현상에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스포츠인지를 판단할 주요 기준으로 여겨지는 건 올림픽 종목 여부다.
실제로 브레이킹도 2024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반면 e스포츠는 아직 올림픽 종목은 아니다.
이 기준에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때 달리기·창 던지기 등 종목은 현대 올림픽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전차·보병 경주 등은 그렇지 않다"며 "줄다리기 등 초기 (현대) 올림픽에 있던 종목이 또 지금은 없다.
시대에 따라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까지 스포츠가 아니었던 종목들이 지금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인정받기 위해, 기존 스포츠 관습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박 교수는 브레이킹·e스포츠 등이 탈 없이 스포츠가 되려면 '판'이 커져야 한다고 짚었다.
한 종목으로서 안정적 제도 기반을 갖춰야만 오래 스포츠로 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이 종목들과 관련된 교육·훈련·코칭이 있어야 하고, 연구·개발·전문가 비평도 따라와야 한다.
(선수의) 개인 기록, 통계 자료의 수집·보관 등이 충족돼야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성이 있는 스포츠가 된다"고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금메달리스트 차예은(경희대)은 우리나라에서 품새의 판이 커지길 원한다.
공격·방어의 기본 동작을 모아 둔 '가상의 겨루기' 품새는 유구히 이어져 온 태권도라는 무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동작을 정교하게 연마해 '자기 수련'을 목표로 하는 품새도 브레이킹처럼 승자를 가리는 스포츠의 경쟁적 요소와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런 품새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고, 차예은은 이번 항저우 대회 여자부에 출전해 금메달을 가져왔다.
지난 14일 열린 제104회 전국체전 여대부 경기에서도 우승한 차예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품새는 수련이다.
구체적으로는 내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보완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차예은은 본래 송판을 깨는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약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친 2021년 어머니의 권유로 길을 바꿨고, 결국 품새에 빠져들었다.
처음에 품새가 지루하다는 생각에 거절했다는 차예은은 이제는 독립 종목으로 자리 잡아 계속 '품새인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품새는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 전국체전에서도 정식 종목은 아니다.
시범 종목이다.
당장 국제 대회에서는 안착했으나, 스포츠로 오래 살아남기에는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셈이다.
차예은은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되는 게 최우선이다.
그래야만 실업팀도 늘어난다.
지금은 전국에 몇 없다"며 "나도 선수 경력이 끝나면 지도자로 품새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