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구도자 박서보의 '홍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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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등장한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의미가 재조명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 전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노크롬 회화 대신 ‘단색화’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Dansaekhwa’라는 영어 명칭이 정착한 것도 이때였다. 한국 단색화에는 서구의 모노크롬과 다른 특징이 있다. ‘캔버스 위에서 반복적인 신체 행위를 통해 세계와 자아, 물질계와 정신계가 합일되는 직관적 깨달음의 장을 펼쳐 보인다는 것’(권영진 미술사학자)이다.
지난 14일 타계한 박서보 화백은 이를 “주문을 외듯, 참선을 하듯, 한없이 반복한다는 것은 탈아(脫我)의 경지에 들어서는, 또는 나를 비우는 행위의 반복”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마다 선택한 한지, 면포, 삼베 등의 재료에 무한 반복의 수작업으로 물성(物性) 화면을 드러내는 것도 단색화의 특징이다.
박 화백은 자타공인 수행자요 구도자였다. 연필로 무한반복의 선을 긋는 1970년대 초기 ‘묘법(描法)’부터 덧바른 한지 위를 막대기나 자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밀어내는 2000년대 이후의 색채묘법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았다. 색채묘법에선 밀려난 한지의 결로 촉각의 화면을 만들고 색을 입혔다. 목적 없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는 정신성이 작업의 과정이자 메시지였다. 자나 깨나 ‘이뭣고’와 같은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수행승처럼.
특히 팔순 이후에 선보인 말년의 화려한 색채묘법은 단일한 색조인데도 딱히 무슨 색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경험한 자연에서 포착한 색감을 화폭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2021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온갖 색의 작품이 가득했다. 저건 무슨 색일까 갸우뚱하던 주황색 작품이 ‘홍시색’임을 안 순간, 무릎을 쳤다. 지난달 21일 개인전이 열리는 부산을 방문해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했던 박 화백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지난 14일 타계한 박서보 화백은 이를 “주문을 외듯, 참선을 하듯, 한없이 반복한다는 것은 탈아(脫我)의 경지에 들어서는, 또는 나를 비우는 행위의 반복”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마다 선택한 한지, 면포, 삼베 등의 재료에 무한 반복의 수작업으로 물성(物性) 화면을 드러내는 것도 단색화의 특징이다.
박 화백은 자타공인 수행자요 구도자였다. 연필로 무한반복의 선을 긋는 1970년대 초기 ‘묘법(描法)’부터 덧바른 한지 위를 막대기나 자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밀어내는 2000년대 이후의 색채묘법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았다. 색채묘법에선 밀려난 한지의 결로 촉각의 화면을 만들고 색을 입혔다. 목적 없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는 정신성이 작업의 과정이자 메시지였다. 자나 깨나 ‘이뭣고’와 같은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수행승처럼.
특히 팔순 이후에 선보인 말년의 화려한 색채묘법은 단일한 색조인데도 딱히 무슨 색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경험한 자연에서 포착한 색감을 화폭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2021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온갖 색의 작품이 가득했다. 저건 무슨 색일까 갸우뚱하던 주황색 작품이 ‘홍시색’임을 안 순간, 무릎을 쳤다. 지난달 21일 개인전이 열리는 부산을 방문해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했던 박 화백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