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까지 챙기는 디자인이 명품 가전의 조건"
“디자인을 안 해도 되는 부분은 없어요. 냉장고 옆면에 튀어나온 나사와 세탁기 문을 연결하는 힌지도 마찬가지죠.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소비자에겐 전체적인 인상으로 느껴지거든요. 이런 디테일을 잡아야 ‘명품 디자인’이 나옵니다.”

최근 서울 양재동 LG전자 서초R&D캠퍼스에서 만난 황성걸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사진)은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마이크로 디테일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모토로라, 구글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디자인을 맡았던 그는 2020년 LG전자 고객경험(CX) 랩 전무로 합류했다. CX 랩에서 소비자의 ‘페인 포인트’(불편 지점)를 파악한 뒤 지난해부터는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생활가전 디자인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전략은 ‘세심한 디자인’이다. 가전제품 모서리, 힌지, 분할선, 나사 등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다듬어 디자인 완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힘을 쏟는다. 황 센터장은 “포르쉐, 애플, 에르메스와 같이 명품 이미지를 구축한 브랜드는 반드시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는 이런 디테일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지’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 센터장은 “소비자는 명품 가방이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며 “구체적으로 박음질이 촘촘하다든지, 안감의 광택이 좋다든지 등을 알아채지 못해도 전체 이미지로 고급스러움을 파악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인지 품질’을 높이려면 세심한 디자인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IFA 2023’에서 공개한 ‘LG전자 시그니처 세탁건조기’에 이 전략이 처음 적용됐다. 그는 “향후 출시되는 모든 냉장고, 오븐, 에어컨 등 가전에 순차적으로 이런 디자인을 적용할 것”이라며 “제품 자체의 제조뿐 아니라 포장과 운송, 사용자환경(UI) 등 소비자가 제품을 접하는 모든 과정에 적용되는 디자인도 전면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명품화 전략을 앞세워 포화한 가전 시장에서 새로운 교체 수요를 끌어내겠다는 전략도 소개했다. 그는 “신세대 고객이 소비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은 물건을 계속 소유할지 여부”라며 “두고두고 쓸 물건이라면 비싸도 좋은 물건을 사고, 어느 정도 쓰다가 처분할 물건은 저렴한 것을 산다”고 설명했다. 이어 “LG전자 가전은 ‘오래도록 집에 두고 쓰고 싶은 물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