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닥치면 주요 은행 자산의 42%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경고했다. IMF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GFSR)’에는 세계 29개국, 약 900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담겼다. 기존엔 정기적인 테스트 결과로 간주됐지만 최근 글로벌 경제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거대 변수가 나타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15개 은행 자본 취약해져

IMF의 경고…"스태그플레이션땐 은행 자산 42% 위험"
반기별로 발표되는 IMF GFSR의 스트레스테스트는 세계 29개국의 약 900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시행됐다. 이번 테스트에 따르면 세계 주요 은행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되면 215개 은행의 보통주 자본비율(CET1)이 규제 기준인 7% 아래로 내려가거나 -5%포인트의 변동폭을 보일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은행의 자산은 전체 글로벌 은행의 42%를 차지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CET1은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위기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손실흡수 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스테스트에서 세계 금융회사들의 CET1 비율은 지난해 12.6%에서 내년 10.1%로 낮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이 가장 큰 하락폭(-3.9%포인트)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유럽(-3.4%포인트)과 미국(-1.6%포인트)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IMF는 실업률이 높아지고 금리가 2%포인트 오르는 가운데 세계 경제가 2% 역성장하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내년에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5%다.

은행들의 자본 상황이 취약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자본 조달 여건 악화와 개인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이었다. 원금과 이자 상환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부실기업과 가계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토비아스 아드리안 IMF 통화자본시장부문 책임자는 “우리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금융 안정 리스크가 상당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글로벌 성장에 대한 위험도 하방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진단했다.

IMF는 최근 업데이트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작년 3.5%에서 올해 3.0%, 내년 2.9%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전망은 가장 최근인 지난 7월 예측한 3.0%보다 0.1%포인트 낮췄다.

IMF는 하지만 통화긴축 정책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은행부문의 위험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금융부문 규제와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아드리안 책임자는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까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강한 경제, 다른 국가에 부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사진)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지난 14일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 운명의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미 노동시장과 소비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면서 다른 국가의 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 Fed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 경제가 받쳐주는 까닭에 달러 강세도 장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이 미국과 금리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덩달아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경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유가 상승을 부추겨 추가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 가자지구의 분쟁에 대해 무고한 민간인이 공격받은 “비극”이며 세계 경제 전망에 불확실성을 더했다고 지적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