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백의 민족이 아니다…무미건조한 백색이 아니라 消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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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한복은 우리 옷이다. 우리 옷이란 우리나라의 기후와 산하 지형의 특성 나아가 그에 적응해 온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와 미감에 맞는 옷이라는 뜻이다.
시대별로 한복의 외형은 변천하였지만, 한복에는 선인들이 시대,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미에 대한 안목과 감각이 집약된 조형미가 있다. 한복의 특징으로 꼽는 단정한 직선, 부드러운 곡선, 겹쳐 입되 부하지 않은 형태와 구조의 아름다움, 나아가 입는 사람을 우선하여 생각하는 타자성은 한복뿐 아니라 우리 건축, 조경, 공예품에서도 두루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굳이 우리 옷이라 강조하지 않아도 한복은 아름답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혼사 등 중요한 일로 나들이하실 때면, 전날 본인의 치마, 저고리를 꺼내 손질하여 안방 벽에 걸어두셨다. 우윳빛 신부 면사포 같던 단속곳과 적삼 그리고 광택이 나는 양단 저고리, 치마 모두 어찌나 고급스럽고 매혹적이던지 방문턱에 앉아 어른 눈치 보며 한복에 다가가 겉을 손끝으로 한번 훑어볼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여름 출타할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등나무 토시 소매에 끼고 즐겨 입으시던 소색(消色) 세모시 두루마기는 어찌 그리 잠자리 고운 날개처럼 가볍고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하던지. 한복은 옷걸이에 걸어두었을 때보다 사람이 입었을 때 자태가 살아나는 옷이다. 한복을 제대로 입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잣물로 풀 먹이고 새하얀 동정을 고쳐 달고, 고름을 맨 후 살짝 겨드랑이와 어깨선을 제 자리에 오도록 매 다듬어 한복 선을 다잡아 입는다. 서양의 복식은 억지로 단단한 지지대를 몸에 매고 옥죄어 인위적인 부피감과 잘록한 선을 만든다.
그와 달리, 한복은 얇은 옷을 여러 겹을 덧입어 형태와 부피, 멋을 낸다. 단순히 같은 형태를 여러 겹 입는다면, 옷매무새가 둔탁해지고 입는 사람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복을 입은 사람마다 생각보다 허리, 가슴 옥죄는 곳 없이 편안하다고 입 모아 이야기한다.
한복 짓는 이의 아이디어와 솜씨, 사람의 몸과 움직임을 읽는 감각 덕분에 한복을 입는 사람은 불편함은 잊는다. 몸을 타고 흐르는 이지한 직선과 유연한 곡선을 아우르며 넉넉한 품과 움직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어깨선을 고쳐 달아 옷의 폭과 길이를 달리할 여지가 있고 살이 찌거나 세월이 흘러 체형과 유행이 변하여도 넉넉한 치마폭을 줄이거나 늘려 입을 수 있다. 한복은 포용과 변용의 폭이 크다.
한복은 우리 것을 지키려는 수호의 마음으로 디자인으로만 입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한복의 맵시는 형태만큼이나 색과 질감이 중요하다. 명나라 사신의 기록이나 서양 사람들의 기록에는 '조선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역시 한국민을‘백(白)의 민족’이라 하였다.
하지만 실제 우리 한복의 색, 질감은 다채롭다. 우리 색은 무미건조한 백색이 아니라 재료의 본색에서 얻은 소색(消色)이 기본이다. 원색이라도 원색 기준 색상과 명도가 1-2도씩 낮다. 중간색은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한복에서 노랑은 치자로 물들여 얻고, 빨강색이나 분홍색은 앵두나 홍화, 진달래에서 얻는다. 초록은 황련으로, 보라색이나 파랑색은 쪽에서, 갈색은 설익은 감에서 얻어 염(染)한다.
한국의 염은 식물염이다. 식물염은 빨래를 할 때마다, 색이 점점 빠지면서 경박함과 화려함이 사라지고 세월 묵은 물건에서 느낄 법한 청아함과 편안함이 남는다. 섬유 역시 자연에서 얻어 직조한 것이므로 정제되지 않는 다채로운 질감이 있다. 이 재료의 본색과 질감이 자연염과 만나 형성된 색이니 형언하기 어려운 색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요즘은 편리함과 실용을 앞세워 서양 의복이 일상복이 되었기에, 특별한 날에나 한복 입는다. 수년간 한복을 일상복으로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한복주간을 정하고, 개량 한복, 한복을 응용한 교복, 단체복 등의 아이디어를 내어 상용화, 대중화를 도모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제대로 제작된 한복을 보기도, 제대로 한복을 갖춰 입은 이를 보기도 어렵다. 이러다 멋들어진, 제대로 된 우리 한복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한복의 현대화, 대중화를 현대 디자인의 관점에서 시도하는 이들은 도대체 우리 전통 한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묻기도 한다.
새로운 한복을 짓기 위해 옛 한복의 외형이나 방법, 재료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복의 미는 보이는 것, 유물과 글에 있지 않다. 직선과 유연한 곡선을 아우르며 조화로운 미를 구현하고, 화학 염료의 경박함보다는 전통식물 염료의 자연성을 추구하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우선해온 것이 우리 옷의 본색(本色)이다. 당대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감과 필요는 늘 생물처럼 움직이고 변화한다. 요즘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 나가보면,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복을 상점에서 대여해 차려입고 고궁과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려한 옷매무새, 머리 장식, 핸드백, 부채까지 들고 한껏 설레하는 밝은 표정을 보고있노라니, 문화적 장벽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K컬처의 확대로 젊은 MZ세대와 외국인들까지 자발적으로 한복을 입고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격세지감이고 반갑다.
그러나 재료의 질감과 색채의 조화로움에서 풍부한 시각적 조화를, 자연 재료의 염색에서 차분한 감성을, 겹쳐 입어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드는 우리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고, 서양 드레스를 흉내 낸 디자인과 화려한 배색과 조잡한 장식이 한복으로 소비되고 알려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한복인들 뿐 아니라 우리의 고민이자 숙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우리 시대 한복의 문화다. 한복은 시대를 거듭해 달라져 왔듯이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 사람들의 취향이나 생활관, 시대 문화와 발맞춰 새로운 형태로 나가야 한다. 한복은 의무감이나 애국심으로 입는 옷, 한복을 박물관의 박제나 전시물, 의례 자리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옷이 아니라, 세대불문 우리 몸과 생활문화, 미감에 가장 걸맞고 편해서 고민 없이 즐겨 입는‘지금의 옷’이어야 한다.
시대별로 한복의 외형은 변천하였지만, 한복에는 선인들이 시대,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미에 대한 안목과 감각이 집약된 조형미가 있다. 한복의 특징으로 꼽는 단정한 직선, 부드러운 곡선, 겹쳐 입되 부하지 않은 형태와 구조의 아름다움, 나아가 입는 사람을 우선하여 생각하는 타자성은 한복뿐 아니라 우리 건축, 조경, 공예품에서도 두루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굳이 우리 옷이라 강조하지 않아도 한복은 아름답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혼사 등 중요한 일로 나들이하실 때면, 전날 본인의 치마, 저고리를 꺼내 손질하여 안방 벽에 걸어두셨다. 우윳빛 신부 면사포 같던 단속곳과 적삼 그리고 광택이 나는 양단 저고리, 치마 모두 어찌나 고급스럽고 매혹적이던지 방문턱에 앉아 어른 눈치 보며 한복에 다가가 겉을 손끝으로 한번 훑어볼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여름 출타할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등나무 토시 소매에 끼고 즐겨 입으시던 소색(消色) 세모시 두루마기는 어찌 그리 잠자리 고운 날개처럼 가볍고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하던지. 한복은 옷걸이에 걸어두었을 때보다 사람이 입었을 때 자태가 살아나는 옷이다. 한복을 제대로 입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잣물로 풀 먹이고 새하얀 동정을 고쳐 달고, 고름을 맨 후 살짝 겨드랑이와 어깨선을 제 자리에 오도록 매 다듬어 한복 선을 다잡아 입는다. 서양의 복식은 억지로 단단한 지지대를 몸에 매고 옥죄어 인위적인 부피감과 잘록한 선을 만든다.
그와 달리, 한복은 얇은 옷을 여러 겹을 덧입어 형태와 부피, 멋을 낸다. 단순히 같은 형태를 여러 겹 입는다면, 옷매무새가 둔탁해지고 입는 사람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복을 입은 사람마다 생각보다 허리, 가슴 옥죄는 곳 없이 편안하다고 입 모아 이야기한다.
한복 짓는 이의 아이디어와 솜씨, 사람의 몸과 움직임을 읽는 감각 덕분에 한복을 입는 사람은 불편함은 잊는다. 몸을 타고 흐르는 이지한 직선과 유연한 곡선을 아우르며 넉넉한 품과 움직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어깨선을 고쳐 달아 옷의 폭과 길이를 달리할 여지가 있고 살이 찌거나 세월이 흘러 체형과 유행이 변하여도 넉넉한 치마폭을 줄이거나 늘려 입을 수 있다. 한복은 포용과 변용의 폭이 크다.
한복은 우리 것을 지키려는 수호의 마음으로 디자인으로만 입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한복의 맵시는 형태만큼이나 색과 질감이 중요하다. 명나라 사신의 기록이나 서양 사람들의 기록에는 '조선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역시 한국민을‘백(白)의 민족’이라 하였다.
하지만 실제 우리 한복의 색, 질감은 다채롭다. 우리 색은 무미건조한 백색이 아니라 재료의 본색에서 얻은 소색(消色)이 기본이다. 원색이라도 원색 기준 색상과 명도가 1-2도씩 낮다. 중간색은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한복에서 노랑은 치자로 물들여 얻고, 빨강색이나 분홍색은 앵두나 홍화, 진달래에서 얻는다. 초록은 황련으로, 보라색이나 파랑색은 쪽에서, 갈색은 설익은 감에서 얻어 염(染)한다.
한국의 염은 식물염이다. 식물염은 빨래를 할 때마다, 색이 점점 빠지면서 경박함과 화려함이 사라지고 세월 묵은 물건에서 느낄 법한 청아함과 편안함이 남는다. 섬유 역시 자연에서 얻어 직조한 것이므로 정제되지 않는 다채로운 질감이 있다. 이 재료의 본색과 질감이 자연염과 만나 형성된 색이니 형언하기 어려운 색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요즘은 편리함과 실용을 앞세워 서양 의복이 일상복이 되었기에, 특별한 날에나 한복 입는다. 수년간 한복을 일상복으로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한복주간을 정하고, 개량 한복, 한복을 응용한 교복, 단체복 등의 아이디어를 내어 상용화, 대중화를 도모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제대로 제작된 한복을 보기도, 제대로 한복을 갖춰 입은 이를 보기도 어렵다. 이러다 멋들어진, 제대로 된 우리 한복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한복의 현대화, 대중화를 현대 디자인의 관점에서 시도하는 이들은 도대체 우리 전통 한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묻기도 한다.
새로운 한복을 짓기 위해 옛 한복의 외형이나 방법, 재료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복의 미는 보이는 것, 유물과 글에 있지 않다. 직선과 유연한 곡선을 아우르며 조화로운 미를 구현하고, 화학 염료의 경박함보다는 전통식물 염료의 자연성을 추구하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우선해온 것이 우리 옷의 본색(本色)이다. 당대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감과 필요는 늘 생물처럼 움직이고 변화한다. 요즘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 나가보면,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복을 상점에서 대여해 차려입고 고궁과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려한 옷매무새, 머리 장식, 핸드백, 부채까지 들고 한껏 설레하는 밝은 표정을 보고있노라니, 문화적 장벽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K컬처의 확대로 젊은 MZ세대와 외국인들까지 자발적으로 한복을 입고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격세지감이고 반갑다.
그러나 재료의 질감과 색채의 조화로움에서 풍부한 시각적 조화를, 자연 재료의 염색에서 차분한 감성을, 겹쳐 입어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드는 우리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고, 서양 드레스를 흉내 낸 디자인과 화려한 배색과 조잡한 장식이 한복으로 소비되고 알려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한복인들 뿐 아니라 우리의 고민이자 숙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우리 시대 한복의 문화다. 한복은 시대를 거듭해 달라져 왔듯이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 사람들의 취향이나 생활관, 시대 문화와 발맞춰 새로운 형태로 나가야 한다. 한복은 의무감이나 애국심으로 입는 옷, 한복을 박물관의 박제나 전시물, 의례 자리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옷이 아니라, 세대불문 우리 몸과 생활문화, 미감에 가장 걸맞고 편해서 고민 없이 즐겨 입는‘지금의 옷’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