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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는 한국 포스코와 아주 인연이 깊은 도시입니다. 원래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발달했지만 포스코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망한 도시가 됐거든요. 폐허가 된 이 도시를 세계적 관광명소로 되살린 건 단 하나의 건축물입니다.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과 직결되는 이유입니다."(이명식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
세계적 건축사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은 빌바오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200만명에 불과한 이 도시에 구겐하임미술관을 찾는 관광객만 매년 100만~150만명에 이른다. 폐허가 됐던 이 도시를 세계적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킨 건 단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건축가들은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창의적이고 다양한 건축물을 짓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 ‘구원투수’로
스페인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는 철강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도시다. 1980년대 철강산업이 쇠락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청년이 도시를 떠났다. 한때 실업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도시는 급속도로 쇠락했다. 그때 유치한 건축물이 구겐하임미술관이었다. 미국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이 설립한 근현대 미술관 분관이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구원투수로 등판해 물결을 치는 듯한 신비로운 외관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설계했다. 건축설계비만 500억원에 이르는 모험이었지만, 1997년 개관 첫해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며 대성공을 거뒀다. 티타늄 3만3000장으로 만든 미술관 외벽이 반짝이는 모습은 전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건축물 하나가 스페인의 쇠락한 도시 빌바오를 문화관광 도시로 부활시킨 것이다.해외에선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처럼 하나의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크게 높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의 오페라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시드니 최고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면서 매년 4억 호주달러(3400억여원)의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년 400만명이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하고 3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보유하고 있다. 건설비용으로는 1억200만달러가 쓰였지만 현재 가치는 13억달러에 이른다.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에서 건축서비스는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요구되는 연구, 조사, 자문, 지도, 기획, 계획, 분석, 개발, 설계, 감리, 안전성 검토, 건설관리, 유지관리, 감정 등의 행위"를 말한다. 설계, 개발, 감리, 감정평가, 건설관리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내 건축서비스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토목, 산업설비, 조경 등 다른 사업에 비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건축공사 총수주액은 242조원으로, 2019년(214조원) 대비 13% 증가했다. 10년 전인 2010년보다 1.8배 규모로 성장했다. 고용유발계수(10억원의 재화를 산출할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8.6명으로, 제조업(2.4명) 건설업(6.3명) 등 다른 사업에 비해 높다. 건축물의 품질을 결정하는 기획 및 설계 단계도 향후 더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건축업계에선 한국도 도시 경쟁력을 높일 만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선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100년 전부터 건축을 문화산업의 핵심 축이라고 보고 건축서비스산업을 체계적으로 진흥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한국도 2014년 6월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을 시행하면서 '설계공모 활성화' '설계 의도 구현'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사 업무 대가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설계비는 2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독일은 건축사협회를 통해 건축설계 대가를 산출하기 위한 자료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축 프로젝트에서 건축설계 대가를 공개적으로 공고한다. 일본은 건축설계의 종류(주거, 상업, 문화 등)와 크기(면적, 층수 등)에 따라 설계비 요율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도 건축물의 크기, 사용 용도, 위치, 형태 등에 따라 건축설계 대가표를 기준으로 대가를 산정한다. 싱가포르는 건축설계비를 시간당 요율과 고정금액을 조합해서 책정한다. 프로젝트 규모, 복잡도, 건축물 사용자 수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대가를 산정한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