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조금씩 외롭고, 쓸쓸하다... 바야흐로 브람스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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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문득 버석한 공기에 스며든 찬바람을 느끼면 절로 떠오르는 작곡가가 있다. 바로 브람스다. 요하네스 브람스, 왠지 이름에서도 풍겨오는 어딘지 모를 고독함이 브람스 음악의 주된 정서이기 때문일까. 봄,여름, 싱그럽게 움텄던 잎새들이 서서히 말라가 낙엽져 바닥에 뒹구는 이 계절, 모두가 조금씩은 외롭고 조금씩은 쓸쓸하다. 브람스 ‘쿨타임'이 돌아왔다.
가을에 자주 한국을 찾는 해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곡 목록에서도 브람스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작년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 독일 클래식 음악의 ‘적장자' 크리스티안 틸레만, ‘솔리스트같은 콘서트마스터' 이지윤과 함께 클덕의 심장을 뜨겁게 했던 곡도 바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빈 필하모닉과 투간 소키에프도 서울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고 키릴 페트렌코와 함께 서울을 찾는 베를린 필하모닉도 연주곡에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올렸다. 바야흐로 브람스의 계절이다.
브람스는 교향곡을 단 네 개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모든 곡들이 거를 타선 없이 음악적 매력으로 가득차 있다.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우람무쌍하고 극적인 1번·4번이 한국인의 취향을 좀더 저격하는 듯 하지만 2번·3번도 못지않게 아름답고 구슬프며 찬란하게 글썽인다. 아름다운데 어떻게 구슬프고, 글썽거리는데 어떻게 찬란할 수 있느냐면 그것이 바로 브람스 음악의 매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별다른 배경 설명이나 제목, 줄거리 없이 음악만으로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분명한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절대음악' (순수 기악곡)을 추구하던 브람스가 증명해보였다. 제철을 맞은 만큼 지휘자마다, 악단마다 각자의 개성을 브람스에 투영한다. 현시점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 조련사인 동시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올해에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과거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브레멘을 이끌고 챔버 오케스트라라는 스펙(!)으로도 아연실색할 만큼 전위적이고 역동적인 베토벤을 구현해 한국 관객들의 갈채를 받은 바 있다. 이후 내한 연주를 할 때마다 호평 일색인 그의 레퍼토리는 베토벤, 슈만, 브람스, 말러, 드보르작 등 꽤나 안전한(?) 편이지만 곡 해석에 있어 늘 어느 정도는 파격을 추구해 왔다. 역시나 그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팀파니가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며 시작하는 서주는 흔히 ‘거인의 발자국 소리'에 비교되곤 하는데 대체로 곡 초반을 지배하는 짙은 어둠과 심연을 보여주듯 심각하고 유장하게 연출되곤 한다. 그러나 예르비의 해석은 달랐다. 기존의 발자국이 고뇌에 찬 신중한 발걸음이라면 예르비의 발자국은 질주하는듯 거침없었다. 클래식 고인물(!)에게 “절대음악의 대가 브람스 선생께서 서주에 구체적인 템포를 적어두지 아니하였건만 무슨 문제라도?” 라며 되묻는듯했다. 악보대로(?) 알레그로, 빠르게 빠르게 내달리며 파도타듯 1악장을 씹어먹었다.
이어진 2악장은 구슬픈 오보에 솔로가 등장하는 핵심 파트가 있는데 오보에 수석을 비롯한 목관의 드라마틱한 연주와 현악기의 기민한 대응이 교차로 등장하며 굉장히 정교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피치카토가 지나가고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와 플루트 파트가 튀지 않고 어우러졌고 이어진 3악장에서도 첼로의 유연한 피치카토와 클라리넷의 다듬어진 음색이 이어져 잘 설계된 건축물을 ‘보는듯’ 했다.
대망의 4악장도 역시 놀라운 빠르기로 돌파해 나갔는데 과연 어떻게 대비감을 부여해 환희를 만들지 자못 기대되었지만 그의 답은 간단했다. 곡의 구성이 환희와 승리 그 자체인데 굳이 드라마를 더해야 하냐는 듯 아주 튼실한 금관과 깊이감 넘치는 사운드의 현악기를 깔아버려(?) 승리의 환희를 표현했다.
파보 예르비가 제시한 충격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충실한 뒷받침으로 설득력을 만들었다. 이들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이라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다면체, 혹은 구조물 같았다. 1바이올린 오른쪽에 첼로, 그 뒤에 더블베이스가 앉은 오케스트라 배치는 현악기 섹션간 음색의 차이를 거의 두지 않은 절묘한 블렌딩을 만들었고 금관악기도, 목관악기도 최대의 사운드를 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앙상블이 모두 받쳐주어 거대한 스케일의 음악을 빈틈없이 완성했다. 파격적인 템포로 다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해석을 절묘한 앙상블로 설득해 나가는 모습이 파보 예르비의 진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문구로도 유명한 브람스지만 파보 예르비는 이를 살짝 비틀어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가을밤을 선사했다. 한국을 찾은 명문 오케스트라들의 명연으로 수놓아질 브람스의 계절이 자못 기대된다.
가을에 자주 한국을 찾는 해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곡 목록에서도 브람스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작년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 독일 클래식 음악의 ‘적장자' 크리스티안 틸레만, ‘솔리스트같은 콘서트마스터' 이지윤과 함께 클덕의 심장을 뜨겁게 했던 곡도 바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빈 필하모닉과 투간 소키에프도 서울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고 키릴 페트렌코와 함께 서울을 찾는 베를린 필하모닉도 연주곡에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올렸다. 바야흐로 브람스의 계절이다.
브람스는 교향곡을 단 네 개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모든 곡들이 거를 타선 없이 음악적 매력으로 가득차 있다.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우람무쌍하고 극적인 1번·4번이 한국인의 취향을 좀더 저격하는 듯 하지만 2번·3번도 못지않게 아름답고 구슬프며 찬란하게 글썽인다. 아름다운데 어떻게 구슬프고, 글썽거리는데 어떻게 찬란할 수 있느냐면 그것이 바로 브람스 음악의 매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별다른 배경 설명이나 제목, 줄거리 없이 음악만으로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분명한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절대음악' (순수 기악곡)을 추구하던 브람스가 증명해보였다. 제철을 맞은 만큼 지휘자마다, 악단마다 각자의 개성을 브람스에 투영한다. 현시점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 조련사인 동시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올해에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는 과거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브레멘을 이끌고 챔버 오케스트라라는 스펙(!)으로도 아연실색할 만큼 전위적이고 역동적인 베토벤을 구현해 한국 관객들의 갈채를 받은 바 있다. 이후 내한 연주를 할 때마다 호평 일색인 그의 레퍼토리는 베토벤, 슈만, 브람스, 말러, 드보르작 등 꽤나 안전한(?) 편이지만 곡 해석에 있어 늘 어느 정도는 파격을 추구해 왔다. 역시나 그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팀파니가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며 시작하는 서주는 흔히 ‘거인의 발자국 소리'에 비교되곤 하는데 대체로 곡 초반을 지배하는 짙은 어둠과 심연을 보여주듯 심각하고 유장하게 연출되곤 한다. 그러나 예르비의 해석은 달랐다. 기존의 발자국이 고뇌에 찬 신중한 발걸음이라면 예르비의 발자국은 질주하는듯 거침없었다. 클래식 고인물(!)에게 “절대음악의 대가 브람스 선생께서 서주에 구체적인 템포를 적어두지 아니하였건만 무슨 문제라도?” 라며 되묻는듯했다. 악보대로(?) 알레그로, 빠르게 빠르게 내달리며 파도타듯 1악장을 씹어먹었다.
이어진 2악장은 구슬픈 오보에 솔로가 등장하는 핵심 파트가 있는데 오보에 수석을 비롯한 목관의 드라마틱한 연주와 현악기의 기민한 대응이 교차로 등장하며 굉장히 정교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피치카토가 지나가고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와 플루트 파트가 튀지 않고 어우러졌고 이어진 3악장에서도 첼로의 유연한 피치카토와 클라리넷의 다듬어진 음색이 이어져 잘 설계된 건축물을 ‘보는듯’ 했다.
대망의 4악장도 역시 놀라운 빠르기로 돌파해 나갔는데 과연 어떻게 대비감을 부여해 환희를 만들지 자못 기대되었지만 그의 답은 간단했다. 곡의 구성이 환희와 승리 그 자체인데 굳이 드라마를 더해야 하냐는 듯 아주 튼실한 금관과 깊이감 넘치는 사운드의 현악기를 깔아버려(?) 승리의 환희를 표현했다.
파보 예르비가 제시한 충격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충실한 뒷받침으로 설득력을 만들었다. 이들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이라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다면체, 혹은 구조물 같았다. 1바이올린 오른쪽에 첼로, 그 뒤에 더블베이스가 앉은 오케스트라 배치는 현악기 섹션간 음색의 차이를 거의 두지 않은 절묘한 블렌딩을 만들었고 금관악기도, 목관악기도 최대의 사운드를 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앙상블이 모두 받쳐주어 거대한 스케일의 음악을 빈틈없이 완성했다. 파격적인 템포로 다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해석을 절묘한 앙상블로 설득해 나가는 모습이 파보 예르비의 진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문구로도 유명한 브람스지만 파보 예르비는 이를 살짝 비틀어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가을밤을 선사했다. 한국을 찾은 명문 오케스트라들의 명연으로 수놓아질 브람스의 계절이 자못 기대된다.